[영상] “겨우 31평 땅에 4층 건물을 올렸다고?” 당인리 삼각뿔 건물의 기적[건축맛집]
일조권 사선제한 등 한계 깬 신선한 작업물 선보여
건축면적 31평 규모 ‘소슴당인’…동네 랜드마크로
땅 지형과 자연과의 관계 극대화한 ‘옥인단 단단’
폐공장을 힙한 문화시설로 바꾼 리모델링 작업도
[영상=윤병찬PD]
[헤럴드경제=고은결 기자] 서울 마포구 토정로에 있는 어느 좁은 골목길을 걷다보면, 나지막한 주택들 사이에서 돌연 뾰족하게 튀어나온 한 건물을 만날 수 있다. 저층 주택 사이에 우뚝 솟아난 삼각뿔 형태의 이 건물은 폭 5.6m, 길이 17m 규모의 비좁은 대지 위에 올려졌다. 그전까지는 비좁고 사업성이 좋지 않아 어떤 건축물도 짓지 못했던 공간이다. 독특한 모양은 건축법에 의해 설정된 정북 방향 일조권 사선제한(주변 건축물 일조권 확보를 위해 건물 신축 시 지상층의 높이를 제한하는 것) 조건을 적극 수용하되 개성을 품도록 고심했다. 주변 건물과 키맞춤은 했지만 솟아오른 형태로 독보적인 분위기를 뿜어낸다. 그러면서도 골목길을 향한 열린 입면을 적용해, 넓은 창이 적용되며 한층 밝은 가로 환경 조성에 기여한다.
이곳은 에스엠엘(SML)건축사사무소의 임승모 대표 건축사가 설계한 ‘소슴당인’ 건물이다. 104㎡(약 31평) 규모의 대지면적 위에 지상 4층 높이, 건축면적 54.5㎡(약 16.5평) 규모의 꼬마 건물이다. 임승모 건축사의 아들은 5세 때 이 건물을 처음 보자마자 대번 “아빠, 솟아라 빌딩이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에 ‘솟음’의 뜻을 곱씹던 임 건축사는 실제 건물의 입면이 ‘ㅅ’과 ‘ㅁ’ 형태를 닮았단 점도 떠올려, ‘소슴’이란 단어를 건축주에게 말했다. 이를 마음에 들어한 건축주는 지역명(당인)보다도 소슴을 앞으로 빼내 ‘소슴당인’이란 이름을 확정했다. 임 건축사는 “아들은 아직도 (작명 아이디어를 준 데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웃었다.
소슴당인은 ‘형태는 가능성을 따른다’는 모토를 가진 에스엠엘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작업물 중 하나다. 아이디어로 한계를 돌파하고 동네의 랜드마크가 된 점이 ‘콜럼버스의 달걀’과 비슷하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주어진 조건에서 고정된 생각 없이 가능성을 찾고, 구축 이후에 담길 가능성을 세심하게 구현하며 대안을 제시하거나 극적 반전을 꾀하겠다는 게 에스엠엘의 관점이다.
서울 종로구 옥인동에 위치한 단독주택 ‘옥인단 단단’도 정북 방향의 일조권 사선제한을 고려해 한층씩 단이 지면서 만들어진 형태다. 건축면적 61.4㎡, 지하 1층~지상 3층 높이로 하나의 집이지만 각 층에서 가족들이 독립적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이 지어진 대지는 서쪽 산에서부터 이어지는 능선의 끝에 있다. 건물 남쪽, 동쪽, 북쪽에서 보면 우뚝 솟은 것처럼 보인다. 집은 하나의 큰 기단과 단, 단이 쌓여 있는 형태다.
임 건축사는 옥인단 단단을 설명하기 앞서 진흙으로 도자기를 빚는 사진 한장을 보여주며, 이곳도 땅의 특성에 기반해 자연의 흐름을 빚어가듯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건물을 처음 봤을 때 북한산 배경과 북쪽의 산세가 정말 아름다웠다”며 “산의 기운을 그대로 받고 있다고 생각해, 건물을 설계할 때 땅이 빚어낸 흐름이 연속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존 땅의 형상과 건축법에 영향을 받은 선형을 전체적인 건물 형태에 입혔다는 것이다.
땅과 산 등 주변 자연과의 관계를 고려하며 가족들을 품는 듯한 둥그런 옹기 같은 곡선을 적용했다. 그러면서도 사계절 자연을 즐길 수 있도록 각층에는 테라스를 마련하고 큰 창을 적용해 남쪽으로는 남산, 북으로는 북악산과 청와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탁트인 경관이 완성됐다. 이에 남측에서 보면 단단한 성벽처럼 보이며, 동측에서는 ‘단’이 쌓여 있는 형태가, 북쪽에서 보면 큼지막한 유리창들 덕에 굉장히 열려 있는 듯한 건물로 보여진다. 또한 이 땅에 오래 전부터 있던 주택처럼 느껴지도록 초콜렛 빛의 벽돌과 같은 톤의 창틀을 적용했다.
인천에 위치한 ‘코스모40’, 수원에 있는 ‘111CM(일일일커뮤니티)’는 기존 건축물 리모델링 작업은 다른 건축사가 진행하고, 임 건축사가 내부 공간을 활성화하는 작업을 맡았다. 두 곳 모두 과거 폐공장이었지만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코스모40은 옛 코스모화학 공장단지의 40동 건물을 리모델링한 곳이다. 1단계 개조에 이어 2단계 리모델링으로 이어지는데, 2단계 작업을 맡은 임 건축사는 작업 콘셉트를 이른바 ‘팔림프세스트(palimpsest)’로 잡았다. 이는 글이 쓰인 양피지 위로 또 다른 글을 덧씌운다는 의미다. 새로운 공간 요소를 기존 공간 위로 덧대며 중첩되고 병치되는 방식으로 활기를 불어넣었다. 임 건축사는 “1차 리모델링을 거쳐 공장이 문화 공간으로 바뀌고, 2차 작업으로 한번 더 새로운 것을 덧입혀 이 공간이 또 한 번 변신할 수 있게 했다”며 “화석을 발굴하듯 공장의 흔적, 철골들을 긁어냈지만 기존 바닥 패턴을 유지하는 등 기존 선형은 이어가며 과거의 기억들을 남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코스모40에 재기발랄함을 더해주는 요소는 청록과 오렌지 색상의 ‘코스모 폴리’다. 내부 곳곳에 배치된 코스모 폴리는 조형물이면서도 기능을 품었다. 공간을 연결을 시각화하고, 장식과 배경이 되기도 한다. 가령 3층과 4층을 연결하는 청록색의 계단은 3층과 4층을 잇는 독특한 오브제 역할을 하고, 과거 장비가 놓여 있던 4층 공간은 무대 같은 역할을 한다. 이외에도 폴리는 쉴 수 있는 벤치, 사진 촬영을 할만한 분위기를 만드는 요소로 쓰일 수 있다. 이 공간만의 독특한 분위기에 의류 브랜드의 광고 촬영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111CM도 과거 ‘담배공장’으로 불린 연초제조창에서 지역예술인을 지원하고 다양한 전시를 하는 용도로 탈바꿈한 곳이다. 이곳은 먼저 공장의 규격화된 공간과 오래된 콘크리트 기둥 및 보를 최대한 살려 리모델링했다. 이어 임 건축사는 준공 두 달 전쯤 공간 계획에 참여, 이곳만의 특성을 부여했다. 공간 개방이 임박한 시점에 전기 설비, 스피커, 기타 전시를 위한 다른 시설 등을 조성했다. 또한 수평수직 형태의 직선이 두드러지는 기존 공간과 어우러지도록 내부 인프라 공간을 계획했다.
이렇게 완성된 내부 공간은 전시 및 대규모 강의가 이뤄지는 대공간, 뒤쪽의 교육 공간으로 완성됐다. 임 건축사는 “작업 이후에는 기획자나 이용자에 의해 공간이 채워지고 해석에 따라 변경될 수 있는 여지도 남겨놨다”며 “공간 계획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그렇게 사용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즐거움과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리모델링 작업 참여에 대해 임 건축사는 “사실 리모델링은 신축보다도 프로젝트 진행이나 비용적 측면에서 더 까다로운 지점도 있다”면서도 “다만 기존 도시의 기억을 쌓아간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며, 해체와 건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임 건축사는 건축 작업에서 공간의 잠재성을 탐구하며, 건축물이 들어서면 담길 가능성에 가장 초점을 맞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학교에 다닐 때부터 건축적으로 다양한 방향성을 가진 분들께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결국 건축을 하는 데 있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단 생각을 갖게 됐다”며 “‘형태는 가능성을 따른다’는 모토를 세운 것도 형태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공간에 따라 건물은 분명히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자연과 교감하며 여백, 여유를 느낄 수 있는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있다. 임 건축사는 “아직 준공 전이지만 리조트, 숙박시설 계획도 진행해왔다”며 “그런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도심지를 벗어나 육체와 정신이 쉴 수 있는 ‘쉼의 공간’을 만들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건축과 조경 등 모든 게 어우러져 무르익고, 자연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그런 느낌이 좋다”고 전했다.
k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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