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렬의 금융레이다] "집, 살까말까"…위기의 신혼
영끌. 영혼까지 대출을 끌어다 쓴다는 뜻이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위해 돈을 빌리고 빚을 상환하느라 몸과 마음을 바쳐도 좋다는 개인의 심사숙고한 결과다. 내 집 장만에 앞서 한 번씩 떠오르는 단어다.
젊은 신혼부부가 대표적이다. 주택담보대출로 30년간 3억원을 빌리기로 했다면 대출이자가 연 4%인 경우 한 달에 143만2246만원을 상환(원리금균등 상환 시)해야 한다. 이렇게 매달을 갚는다면 30년간 총 이자는 2억1561만원이다.
10년간 빠르게 상환한다면 이자는 훨씬 저렴하다. 금리와 상환방법 등 같은 조건이라면 매월 303만7354원을 갚아야 한다. 10년간 총 이자는 6448만원이다. 장·단기 대출기간을 막론하고 어떤 경우도 은행의 귀한 고객이 되는 것이다. 공짜는 없다.
그렇다보니 신혼부부들은 결혼 전 절세전략을 따지게 된다. 올해부터는 부모님께 결혼자금으로 3억원(양가 각각 1억5000만원)을 세금 없이 물려받을 수 있다. 차용증이 있다면 부모님께 무상으로 돈을 빌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전략에도 수억원에 달하는 집을 마련한 후 매달 이자를 갚아야하는 상황은 변함없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서울에서 살려면 특히 그렇다. 허리 휘는 건 매한가지인 셈이다.
정부가 정한 중상층은 '소득 7800만원 이하 사람들'이다. 이들의 한 달 월급은 세금을 제하면 520만여원. 집세로 150만원을 지출하면 370만원이 남는다. 꽤 많은 돈으로 보이지만 요새는 턱없이 부족하다. 아이를 키울 사람이 없는 맞벌이 가정이라면 보육시설이나 등·하원 도우미를 써야한다. 괜찮은 시설이나 도우미를 이용하려면 한 달에 300만원이 최소비용이다. 아이가 학교 앞 분식집에서 500원어치 떡볶이를 먹고 집에 오는 시절도 아니다. 요새는 떡볶이나 마라탕을 먹으려면 2만원은 있어야 한다.
자식을 키워냈다면 다음은 노후 자금이 문제다. 매달 쪼들린 생활에 모든 걸 쏟아 붓는다면 여력은 없다. 애초에 딩크(DINK, 아이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족으로 살겠다는 부부들의 선택이 자의(自意, 본인의 뜻)보다 사회적인 분위기로 인한 타의(他意, 다른 사람의 뜻)가 섞인 결정으로 보이기도 한다.
토요일 로또 번호가 발표되기 1~2시간 전이면, 1등을 수차례 배출했다고 입소문을 탄 '로또 맛집'에 사람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얼마 전 동탄 롯데캐슬 청약에도 294만명이 몰렸다. 주변시세보다 수억원 저렴한 예전 가격에 미분양 물건이 올라왔다. 당첨되면 바로 '돈방석'인 것이다. '로또 청약'으로 불렸다. 단번에 재물을 얻는 '일확천금' 없이는 삶의 질을 높이기 어려운 요즘 시대상을 반영한 사례로 보인다.
몇몇 사람들은 살고 있는 집이 오르는 '똘똘한 한 채' 전략으로 활로를 찾는다. 주변에 지하철이 들어서거나 큰 빌딩이 들어오면서 돈을 번 사람이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집값이 오르길 버티고 버텨본다. '야수의 심장'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다만 집값이 떨어지면 이 모든 수고는 물거품이 된다. 바로 빚더미에 앉기 때문이다. 서울 대치동에 사는 영숙이는 '집테크'로 수십억을 벌었지만, 서울 천호동에 사는 철수는 잃을 수 있다는 얘기다.
앞서 가계대출 압박 정책인 스트레스 DSR 2단계 정책을 두 달 미루면서, 7월과 8월에 영끌 물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사람들이 몰린 것이다. 정부도 해법을 찾다가 진땀을 흘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10% 기대 수익이 있는 주담대를 다 잡긴 어렵다"면서 "스트레스 DSR 2단계 정책과 은행권의 자율 대책의 효과를 11월까지 지켜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단 '관망'한다는 것이다.
투자일까? 투기일까? 이런 질문은 답변조차 어렵다. 현재 상황이 버블인지를 묻는 것과 같아서다.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는 버블의 조건을 '돈이 있어도 집을 사지 못할 때'와, '집값이 떨어졌지만 사려는 불나방이 없을 때'라고 말했다. 두 가지 조건은 신혼살림을 차리고 첫째를 낳은 기자의 상황과 같다. 돈이 있어도 빚이 늘어 아이를 키우지 못할까 걱정되고, 오르락내리락 집값을 보면 당최 안정적인 투자인지 헷갈려 호주머니를 열 수 없다. 이런 시대에서 자식을 키우는 건, 무척 난감하다.김경렬기자 iam10@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감기라고 응급환자 안 받아? 당신 진료 거부야" 난동 부려도…이젠 안 먹힌다
- "모이면 싸운다더니"…명절 가정폭력 신고건수 평소보다 30~40% 많아
- 손가락 절단 50대男, 광주 응급실 4곳서 거부당해…90㎞ 떨어진 곳서 치료
- 군산서 35톤급 어선 전복…"8명 전원구조, 3명 의식불명"
- 벌초 갔다가 발견한 옷 반쯤 벗겨진 여성 변사체…가까이 다가가 확인했더니
- 한·영 FTA 3차 개선협상…공급망 등 논의
- [임기반환점 맞은 尹] 4대 개혁 과제 속에 낮은 지지율 걸림돌
- "더는 못버텨" 경매 시장 쏟아지는 `영끌족`의 아파트
- 최태원, 페루 이어 일본·중국行… 글로벌 리더십 `광폭 행보`
- 통신3사, 5G·비통신으로 3분기도 호실적… AI 수익화 `박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