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교실서 쓰는데... 'AI 교과서는 교과서인가' 법적 지위 논쟁
시행령 아닌 법률 개정 통한 교과서 지위 부여 주장
"의무 사용 교과서 대신 교육자료 형태로 우선 도입을"
교육부 "위임 규정 교과서 정의 개정해 지위 확보" 반박
내년 초·중·고교 수업 도입을 앞둔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가 '교과서'로서 법적 근거와 지위를 갖췄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최근 국회 측은 AI 교과서를 서책형 교과서와 완전히 독립적인 교과서로 볼 만한 법적 근거가 충분치 않다며, 우선은 '교육 자료' 형태로 도입한 뒤 법령 정비와 사회적 논의를 거치자고 제안했다. 정부는 교과서 범위 설정이 위임된 대통령령을 개정해 AI 교과서에 교과서 지위를 적법하게 부여했다고 맞서고 있다.
17일 교육계에 따르면,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달 말 'AI 디지털교과서의 법적 성격과 입법 과제: 어떻게 교과용 도서가 되었나'(김범주 조사관·교육학 박사)라는 제목의 현안분석 보고서를 발간했다. '교과용 도서'는 교과서와 지도서를 통칭하는 말로, 정부가 검정·인정을 거쳐 학교에 사용 의무를 부과한다는 면에서 학교가 사용 재량권을 갖는 교육 자료와 구분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정부가 도입하려는 AI 교과서의 법적 근거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주장에 방점을 찍었다. "헌법의 '교과서제도 법률주의' 원칙에 비춰 (AI 교과서가) 대통령령 개정으로 (교과용 도서로서) 충분한 법적 근거를 확보했다고 볼 수 있을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것. 정부는 지난해 10월 교과용도서규정(대통령령) 개정으로 교과서의 정의에 '지능 정보화 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를 포함하면서 AI 교과서의 법적 지위 확보 절차를 마쳤다고 밝혔는데, 여기에 정면으로 반론을 제기한 셈이다.
교과서는 헌법상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중요한 수단이므로 중요 변경 사항은 대통령령이 아닌 법률에 명확히 규정될 필요가 있다는 게 보고서의 핵심 요지다. AI 교과서 정책은 서책형 중심 교과용 도서 체제보다 많은 교육자원 투입이 예상될뿐더러, 개인정보 침해 요인 평가 대상이 되는 등 학생의 헌법상 교육기본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21대 국회에서 교과용 도서의 정의 규정을 법률로 정하도록 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된 적이 있다.
AI 교과서의 도입 절차에 대해 보고서는 "먼저 교과용 도서가 아닌 교육 자료로 도입되도록 하고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친 뒤 현장에 안착할 수 있게 중장기 대안이 강구돼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보고서는 이미 교육 현장에서 AI 기반 코스웨어(학습·교수 지원 소프트웨어)가 교육 자료로서 학교 재량에 따라 수업에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AI 코스웨어와 비슷한 AI 교과서에 교과용 도서 지위를 부여해 의무 사용 대상 반열에 올리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고도 지적했다.
교육부는 이 같은 주장을 정면 반박한다. 헌법재판소가 1992년 11월 "교육법이 교과서 제도에 관해 상세히 규정하는데, (중략) 교과용 도서의 검·인정 등에 관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설시한 부분을 반박 근거로 꼽는다. 이 판결은 '교과용 도서의 검정·인정 등에 관한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한 옛 교육법(157조 2항)과 교과용도서규정이 자유로운 교과서 저작·출판을 불가능하게 해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국어교사가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비롯했다. 해당 법률 조항은 현재 초·중등교육법(29조 2항)에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1997년 교육법 개정으로 교과용 도서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됐고 이에 따른 교과용도서규정의 개정 사유도 '학교 교육에 필요한 다양한 학습자료를 제공하고자 범위를 확대한다'는 것이었다. 교과용 도서를 종이 형태 인쇄물에 국한하지 않고 음반·영상 등으로 확장한다는 취지인 만큼 AI 교과서도 이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AI 교과서 역시 개정된 교과용 도서 정의에 따라 교과서제도 법률주의에 근거한 법적 지위를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내년 3월부터 초등 3·4학년, 중 1학년, 고 1학년을 상대로 수학·영어·정보 교과에 AI 교과서를 도입하고 단계별로 확대할 계획이다. AI 교과서는 막바지 개발이 진행 중이며, 검·인정을 거쳐 올해 11월 말 공개될 예정이다. 일부 학부모와 야권은 디지털기기 오남용에 따른 부작용 우려를 표하며 속도 조절을 촉구하는 가운데, 정부는 AI 교과서 활용으로 학생 수준별 일대일 맞춤형 학습·교수가 가능해지고 '잠자는 교실'을 극복할 수업 혁신이 일어날 거라 기대하고 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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