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일상 관찰…문형태 개인전 ‘Perfect Picture’

김신성 2024. 9. 1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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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 이야기 전하듯 상상적 내러티브 함축
흙물을 들인 캔버스, 은은하고 따스한 기운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상반된 감정 어우러져
‘관계 코드’ 1 자신, 2 관계, 3 가족, 4 사회, 5 고독
다양한 관계가 만들어내는 삶의 희로애락에 집중
문형태 개인전 ‘Perfect Picture’(완벽한 그림)
10월9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관계’는 작가 문형태가 오랜 시간 천착해 온 주제다. 가족, 연인, 친구 등 자신과 관계된 주변 사람들을 그리며 삶의 본질을 탐구한다. 그는 일상의 것들을 일상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관계에서 오는 양면적인 감정들과 삶의 이중성을 재치 있게 풀어낸다.

문형태의 회화는 내면의 감정이 표출된 듯 해체된 인물 묘사와 화려하면서도 묵직한 색채 그리고 거친 선이 특징이다. 밀도 높게 구성된 화면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포개어지거나 중첩되면서 인물 간의 거리가 좁아지고 결국에는 사라진다. 대신 인물 각각의 상황에 초점을 맞춰, 인물이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Self Portrait’(자화상).
그의 작업 근간은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 삶의 내밀한 순간들을 포착해 화면에 견고한 서사로 재구성한다. 일상적인 소재나 경험이 담긴 그의 작품 속 이야기에서는 삶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며, 동화 속 이야기를 전하는 듯한 상상적 내러티브를 함축하고 있다.

“제 작업을 동화와 연결한다면 ‘動’(움직일 동)과 ‘畫’(그림 화)를 사용하고 싶습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이라면 어떤 수식어도 좋을 것 같네요.”

작업의 밑재료는 ‘흙’이다.

“흙은 일상을 시작하는 곳과 마무리하는 곳, 생성과 소멸이라는 뜻을 품고 있어요.”

자신이 살았거나 머물렀던 곳에서 가져온 흙으로 삶의 흔적을 작품에 담고자 한다. 그는 캔버스에 황토와 물을 섞어 바른 다음 표면에서 건조된 흙을 걷어낸 후, 노랗게 흙물이 든 캔버스 위에 오일이나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린다. 화면 위에서 은은한 황토색이 만들어내는 따스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는 흙물을 사용한 작업 방식 덕분이다. 모든 존재가 흙으로 회귀한다는 깨달음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등 상반된 감정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최근작 ‘Merry-go-Round’(회전목마·2024)는 회전목마를 타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지만, 빙글빙글 돌아가는 목마는 계속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끝없는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우리 삶을 표현하고 있다. ‘Diamond’(다이아몬드·2024)에는 가족이 된 두 남녀의 행복한 모습과 함께 반짝이는 다이아몬드가 보인다. 반짝이는 것들은 대개 날카로우며 그 날카로움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가족이나 연인 모두 행복을 주는 존재지만 상황에 따라 상처를 주기도 하는 양면성을 지닌 관계임을 말하고 있다.
‘Chinese Fried Rice’(볶음밥).
‘Chinese Fried Rice’(볶음밥·2024)는 그의 개인적 경험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생활이 어렵던 때, 중국음식점의 볶음밥을 배달주문했다. 밥, 짜장 소스, 짬뽕 국물을 따로 먹을 수 있어서 밥만 지어두면 세 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볶음밥을 먹었는데도 여전히 좋아하는 건 볶음밥이다. 수입이 나아졌지만 작가의 일상이나 고단함, 노동의 시간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형태에게 볶음밥이란, 그 시간을 기억하게 하는 매개체로 꾸준함 혹은 희망을 상징한다.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숫자는 관계 코드다. 1은 자신, 2는 관계, 3은 가족, 4는 사회, 5는 고독을 의미한다. 이같이 독특한 표현 방식은 유년시절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됐다. 외조부는 자신이 빌려준 돈을 달력 뒷면에 기록해 두었는데, 이를 보고 인간의 생전 기억이 숫자로 단순화되어 각인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문형태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기억의 코드화라는 독자적 방식을 통해 다양한 관계를 시각화했다. 그 관계가 만들어 내는 희노애락에 집중했다.

일상 속 평범한 소재에 따뜻한 감정과 동화적 해학을 깃들여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문형태의 개인전이 ‘Perfect Picture’(퍼펙트 픽처)라는 문패를 달고 13일부터 10월 9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작가는 인간이 살아가며 맺는 다양한 ‘관계’를 관찰하고, 삶의 궤적을 따라 쌓여진 경험과 생각의 결과물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화면에 구현한다. 신작 50여점을 공개한다.
‘Echo’(울림).
‘Missile’(미사일).
‘Merry-go-Round’(회전목마).
전시 제목 ‘Perfect Picture’(완벽한 그림)는 잘 그려진 그림이라는 뜻이 아니다.

“하루가 모여 생이 완성되듯 기쁜 순간, 상실의 순간, 고통이나 추악한 순간들도 생의 완성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때문에 그 모든 순간들은 항상 연결되어 있어야 했어요.”

삶의 크고 작은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큰 틀을 이루는 것처럼, 작품 속에서도 여러 요소들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Perfect Picture’라고 명명했다.

그의 작업은 ‘하나의 작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이 작품에서 저 작품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이야기’다.

“오늘 마감한 그림은 평생 완성해야 할 큰 그림의 붓질 한 번에 지나지 않습니다. 작품을 만드는 기능인이 아니라 작업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그런 의미로 실패한 그림과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도 큰 그림의 재료가 됩니다. ··· 어렵다면 어려울 수 있는 게 그림 속 이야기지만, 거창한 해석보다는 그저 보이는 그 순간의 감정에 몰입해 봐주세요. 감정에 정해져 있는 답은 없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겪는 많은 일들과 거기서 탄생하는 수많은 감정, 그것을 함께 나누길 바랍니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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