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옥토끼가 살던 곳은 마그마 바다였다

곽노필 기자 2024. 9. 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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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필의 미래창
45억년전 지구-테이아 충돌해 생긴 달
충돌 고에너지로 마그마가 표면 뒤덮어
마그마바다로 뒤덮인 달을 묘사한 그림. 과학자들은 달이 형성된 후 달 표면은 수백만~수천만년 동안 마그마바다로 덮여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동아시아 사람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에서 달은 옥토끼가 방아를 찧는 곳이다. 중국과 한국에선 계수나무도 등장한다. ‘바다’로 불리는 달 앞면의 넓은 검은색 평원지대의 모양이 그런 모습을 닮았다고 한다.

토끼의 발 아래 쪽이 달 남극이다. 지난해 8월 인도의 무인 달 탐사선 찬드라얀 3호가 사상 처음으로 남위 69도의 남극 지역에 착륙했다.

인도 연구진이 찬드라얀 3호가 보내온 달 남극 지역 탐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45억년 전 생겨난 직후의 달은 표면 전체가 ‘마그마바다’로 뒤덮인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착륙선 비크람에서 빠져나온 로봇탐사차 프라그얀이 10일 동안 주변에 있는 표토의 화학적 구성을 알파 입자 엑스선 분광기(APXS)로 분석한 것을 토대로 했다.

연구진은 프라그얀이 수집한 23개 표본을 통해 적도와 중위도 지역에서 많이 보았던 저밀도의 철 함유 사장암(ferroan anorthosite) 같은 광물이 남극 지역에도 풍부하다는 걸 발견했다. 달 표면 전체에 분포된 표토의 성분이 거의 동일했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찬드라얀 3호의 표본은 아폴로 11호가 달 적도 근처에서 수집한 표본뿐 아니라 인도의 달 궤도선인 찬드라얀 1호와 2호가 관측했던 데이터와도 일치한다”고 말했다.

인도의 찬드라얀 3호 착륙지(노란색)와 표본 수집 분석 지역. DOI: 10.1038/s41586-024-07870-7

적도와 남극의 암석 성분이 일치하는 이유

연구진은 “이는 달 표면은 처음엔 액체 상태의 마그마바다(LMO)였다가 점차 식으면서 지금의 지각으로 굳어졌다는 걸 확인해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표본의 화학적 구성은 1972년 적도 고원지대에서 수집한 아폴로 16호 표본과 루나 20호 표본의 중간 정도에 해당했다. 지질학적으로 달의 고원은 고대의 달 지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찬드라얀 3호와 아폴로 16호, 루나 20호는 모두 고원지역에 착륙했기 때문에 비교가 가능했다.

초기의 달 표면이 마그마바다였을 것이라는 가설은 1969년 아폴로 11호가 수집한 암석을 분석한 후 처음 나왔다.

현재 달의 기원에 관한 유력한 가설은 갓 태어난 지구와 테이아라는 화성 크기의 천체가 부딪힌 충격으로 우주로 튕겨나간 엄청난 양의 물질이 다시 뭉치면서 달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달 암석을 구성하는 물질의 동위원소가 지구와 비슷한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착륙선 비크람에서 빠져 나온 로봇탐사차 프라그얀. 인도우주연구기구 제공

무거운 암석은 가라앉고 가벼운 암석만 남아

마그마바다 가설에 따르면 충격 때 발생한 엄청난 에너지로 인해 달을 만든 물질은 모두 녹아내렸다. 이 가운데 마그네슘 같은 고밀도 암석은 밑으로 가라앉고, 철 함유 사장암(ferroan anorthosite) 같은 가벼운 저밀도 암석은 위로 떠올라 찬드라얀 3호가 방문한 것과 비슷한 고원을 형성했다. 마그마바다는 수백만~수천만년 동안 유지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찬드라얀 3호가 수집한 표본에는 마그네슘이 매우 많이 포함돼 있었다. 깊숙한 곳의 물질이 표토에 섞여 있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찬드라얀 3호의 착륙 지점에서 350km 떨어진 남극 아이켄 충돌분지가 그 이유를 말해준다고 밝혔다. 태양계에서 가장 큰 충돌 분지인 아이켄분지는 폭 2500km에 깊이 8km로 매우 넓고 깊게 패인 곳이다. 이렇게 큰 충돌분지가 형성될 정도의 소행성이 충돌했다면 매우 깊숙한 곳의 물질까지 위로 솟구쳐 올라왔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토끼를 연상시키는 보름달 앞면의 암흑 지형 위치는 시간대에 따라 바뀐다. 동쪽(왼쪽)에서 떠오를 때는 머리가 상대적으로 더 위쪽으로 있다가 서쪽(오른쪽)으로 지면서 머리가 점차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이태형 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장 제공

1억2천만년 전까지도 화산 활동 있었던 듯

땅속의 마그마는 소행성 충돌이나 화산 활동 등으로 다시 분출돼 나오기도 했다.

중국 연구진은 2020년 창어 5호가 가져온 달 앞면 토양 표본을 분석한 결과, 달에서는 1억2천만년 전까지도 화산 활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이는 달의 화산 활동은 20억년 전에 끝났다는 기존 연구를 뒤집는 것이다.

연구진은 창어 5호 표본에 있는 작은 유리구슬을 화산 활동의 증거물로 제시했다. 유리구슬은 광물이 녹았다가 다시 굳어질 때 형성된다. 연구진이 표본 3g에 포함돼 있는 유리구슬 3천개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은 운석 충돌로 인해 생긴 것이나 일부는 유황이 포함된 화산 유리였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그러나 이미 오래 전 식어버린 달에서 어떻게 이 시기에 화산 활동이 일어났는지는 불분명하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화산 유리구슬에 높은 비율로 포함돼 있는 크리프(KREEP=칼륨, 희토류, 인) 원소가 단서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크리프 원소의 방사성 붕괴로 생성된 열이 화산 활동의 에너지원이 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지구 내부 열의 약 절반은 방사성 붕괴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달에서도 방사성 가열이 이론적으로 국부적인 화산 활동의 촉매가 될 수 있다. 향후 과제는 그 정도로 충분한 양의 크리프 물질이 달 맨틀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38/s41586-024-07870-7

Chandrayaan-3 APXS elemental abundance measurements at lunar high latitude.

https://doi.org/10.1126/science.adk6635

Returned samples indicate volcanism on the Moon 120 million years ago.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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