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 아너' 박세현, 결국 보석이 될 원석 [한복인터뷰]

김종은 기자 2024. 9. 1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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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현

[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이야기를 듣는 내내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에 그가 오랜 시간 치열하게 기울였을 고민들과 노력들이 그대로 보였기 때문. 이제 보석이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끝없이 스스로를 다듬고 가공한 덕에 마침내 희미한 빛을 내뿜기 시작한 원석 박세현이다.

최근 종영한 지니TV 오리지널 '유어 아너'(극본 김재환·연출 유종선)는 자식을 위해 괴물이 되기로 한 두 아버지의 부성 본능 대치극. 극 중 박세현은 김강헌(김명민)의 막내딸이자 그의 유일한 약점인 김은 역으로 활약했다.

박세현이 '유어 아너'에 합류하기까지의 과정은 치열했다. 높은 경쟁률의 오디션을 거친 뒤에야 막차로 '유어 아너'라는 열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고.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그가 김은 역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박세현만의 특별한 노력이 있었다.

박세현은 "감독님이 오디션 과정에서 날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셨다고 들어서 이유를 물어보니 내가 준비해 온 은이에 대한 연설과 분석이 흥미로우셨다 하더라. '은이가 내면이 굉장히 복잡한 캐릭터인데 이런 배우라면 설득력 있게 인물을 그려나갈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라고 하셨다"라며, "대본을 통해 이 아이가 김강헌 회장의 유일한 약점이라는 건 알 수 있지 않냐. 과연 무소불위의 권력자에게 가장 아픈 손가락이 되려면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거기서부터 고민을 시작했다"라고 김은 역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들려줬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인위적이지 않게 은이의 연약함을 표현하는 것이었어요. 보통 부모님에겐 고민을 털어놓는 자식보단 그 고민이 보이는데도 홀로 견디려는 자식의 모습이 더 가슴 아프게 느껴지잖아요. 어떻게 보면 은이라는 아이도 이와 비슷하다 생각됐어요. 그런 면에서 홀로 아픔과 힘듦을 견디려는 은이의 모습이 김강헌 회장에겐 더 큰 아픔으로 다가갈 것 같았고, 이 얘기를 들려드리니 감독님이 굉장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라며 좋아하셨던 기억이 있어요."

캐스팅이 된 뒤에도 박세현의 고민은 계속됐다. 조금 더 나은, 조금 더 대본 속 은이의 모습에 가까운 연기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우선 김은이 지난 경계성 지능 장애에 대해 "경계성 지능 장애는 장애라기보단 일상생활이 보통 사람들보단 어려운, 회색 지대 사람들을 지칭한다 생각한다. 남들보다 배움의 속도가 느리고 거짓을 판별하는 능력이 조금 떨어지고, 충격이나 슬픔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일 뿐이다. 경계성 지능 장애라고 해서 마냥 아이처럼 은이를 그려내고 싶진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은이가 하는 모든 행동에 인간적인 당위성을 부여하고 싶었다"는 그는 "최대한 단순한 분석을 피하고 내 안에서 은이의 세계를 조금씩 넓혀가려 했다. 은이의 가장 큰 특징으로 삼은 건 두 가지다. 우선 불안도와 예민도가 높아 큰 소리나 불안정한 상황에 크게 놀란다는 점. 큰 소리가 나면 손을 어루만진다거나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모르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고, 두 번째로는 대화 속도에 특징을 뒀다. 어린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앞서서 차근차근 얘기하지 못하고 호흡이 들뜬 상태로 말하곤 하지 않냐. 이런 특징들을 통해 이 아이가 대화를 하거나 남들을 대하는 과정이 성숙하진 않구나라는 걸 은연중에 표현하려 했다"라고 설명했다.


극 중 김은은 자신이 의지하던 작은오빠 김상현(신예찬)을 잃는 것을 시작으로, 큰오빠 김상혁(허남준)의 추악한 민낯과 자신이 좋아하던 송호영(김도훈)의 비밀까지 알게 되며 감정의 밑바닥까지 추락하게 되는 인물. 이런 설정 탓에 작품에선 우는 장면이 대부분이기도 했다.

아무리 연기지만 슬픔과 절망이란 엉킨 감정을 자신의 속 깊이 집어넣었다 도로 꺼내놓는 건 쉽지 않은 일. 그걸 수십 번 반복한 박세현의 입장에선 더더욱 힘겨웠을 터.

박세현은 "어쩔 수 없이 연기를 하다 보면 캐릭터가 몸에 입혀지는 것 같긴 하다"라고 조심스레 운을 뗀 뒤 "은이의 슬픔을 연기하기 위해 그동안 좋아했던 걸 조금 멀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공연을 보고 산책을 다니며 힐링을 하는 편인데 이번엔 이를 모두 끊어봤다. 가혹하지만 내게서 즐거움을 뺏은 뒤 예민도를 한껏 높여봤다. 그러고 나니 작은 자극에도 쉽사리 감정이 올라오더라. 일상생활 속 작은 슬픔에도 감정이 동요되기 시작했고, 이 이상 가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너무 힘들 것 같아 촬영이 어느정도 지난 뒤엔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 주변 선배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유독 우리 집안에선 파국으로 치닫는 신들이 많이 나왔는데, 촬영 때만 진지하게 하고 쉬는 시간엔 김명민 선배가 장난도 많이 걸어주시고 해서 밸런스를 잘 잡을 수 있었다"라고 은이의 슬픔을 연기하기까지의 과정을 들려줬다.

여러 감정 신 중 가장 힘들었던 신은 무엇이었을까. 박세현은 "마지막 엔딩 신이 가장 힘들었다. 우리끼린 '최후의 만찬' 신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그 신을 찍고 나선 감정이 정리가 안돼 스스로 어지러울 정도로 힘들었다. 평소엔 오열을 하다가도 컷이 나면 빠르게 감정을 갈무리하는 편인데, 처음으로 감정 정리가 쉽지 않았다. 주변 스태프분들이 도와주시고 고요함을 유지해 주셔서 겨우 정신을 잡을 수 있었다"라고 답했다.


이렇듯 오디션 과정부터 촬영이 끝날 때까지, 최고의 김은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구했던 덕일까. '유어 아너'를 마치고 돌아선 박세현의 표정엔 아쉬움이 아닌 개운함만이 남아있었다.

"사실 '유어 아너' 이전엔 배우로서 큰 고민이 있었어요. 예술가들은 다 본인들만의 창작물이 있는데, 배우들은 누군가에게 선택받아야 하고 대본을 통해 연기해야 하잖아요. 그럼 이 사회에서 내가 어떤 예술을 할 수 있을까, 이게 예술은 맞을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때 만난 게 '유어 아너'의 은이였어요. 은이를 준비하며 감독님, 작가님과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대화를 통해 대본에 적혀있지 않은 빈 곳들을 채워나가면서, 신들이 완성되어가면서 나만의 은이가 완성되더라고요. 그때 느꼈어요. 이게 배우인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또 최후의 노력이자 예술이겠다는 걸. 고민과 연구를 정말 많이 한다면 앞으로도 나 밖에 할 수 없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확신이 들었고, 이 덕분에 연기를 시작한 이례 가장 흥미롭게 연기를 할 수 있었어요."

이어 "다만 아직은 어리고 부족함이 많아요. 뿌리도 약하고 이제 막 싹을 틔운 상태라 생각해요"라고 겸손히 덧붙인 박세현은 "어쨌든 작품이라는 건 인간의 삶을 살짝 떠서 잠깐 보여주는 거라 생각하는 데, 그런 면에서 스스로 삶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세계를 넓혀가다 보면 어떤 캐릭터가 와도 나만의 세계를 입혀 표현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때를 위해 앞으로 책도 많이 읽고 공연도 많이 보며 나만의 세계를 넓히고 구체화시키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안성후 기자]

박세현 | 유어 아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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