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조정장치 뭐길래···“삭감장치”vs“도입 불가피”[뒷북경제]
“급여 삭감” 비판 속 “결국 가야 할 길” 지적도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안을 공식 발표하면서 연금 개혁이 다시 화두에 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정부가 도입 시점을 세 가지로 나눠 제안한 ‘자동조정장치’를 두고 논란이 뜨겁습니다. 소득 보장 강화를 주장하는 측은 “정부가 연금 삭감 장치를 도입하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재정 안정을 중시하는 전문가들은 언젠가는 결국 도입해야 할 장치라며 연금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장치 중 하나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연금 제도를 고치는 것은 상당히 복잡합니다.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라면 오랜 기간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결론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급격한 인구 변화나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자동조정장치입니다. 자동조정장치는 특정 거시변수에 맞춰 연금 보험료나 급여액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제도입니다. 상황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미리 손을 써두는 것입니다. 나라마다 처한 여건과 염두에 둔 상황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자동조정장치의 내용과 효과도 천차만별입니다.
정부가 이번에 제안한 자동조정장치는 일본의 ‘거시경제슬라이드’를 차용한 것입니다. 이 장치는 ‘가입자 수 감소’와 ‘기대여명 증가’를 고려해 ‘연금 급여액’을 조절합니다. 가입자 수가 예상보다 크게 감소하면 연금 수입이 줄어듭니다. 반면 기대여명이 당초 추계보다 길어지면 지출해야 할 연금은 더 늘어납니다. 저출생 고령화가 예상보다 강하게 진행될 경우 연금 재정의 부담이 늘어나는 셈입니다. 거시경제슬라이드를 적용하면 가입자 수 감소율과 기대여명 증가율에 맞춰 연금 급여가 삭감돼 재정 안정성이 높아집니다. 우리나라 역시 일본 못지않게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를 앞두고 있기에 여기에 초점을 맞춘 제도를 차용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연금 급여액이 100만 원인 가입자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물가상승률이 5%라면 이 가입자의 내년도 연금액은 105만 원이 됩니다. 연금의 실질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물가상승률에 연동해 급여액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일본식 거시경제슬라이드를 차용하면 상승 폭이 조금 낮아집니다. 가입자 수 감소(a, 최근 3년간 가입자 수 평균 감소율)와 기대여명 증가율(b, 고정계수 적용)을 더한 만큼 연금 상승률이 제한됩니다. a가 0.2, b가 0.1이라면 거시경제슬라이드는 이 둘을 합한 0.3이 됩니다. 연금 급여액 상승률은 물가상승률에서 거시경제슬라이드를 뺀 0.2(0.5-0.3)가 됩니다. 따라서 이 가입자의 내년 연금은 105만 원이 아니라 102만 원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거시경제슬라이드(a+b)가 물가상승률보다 더 커지는 경우입니다. 산식을 그대로 적용하면 내년 연금 급여액이 올해보다 줄어들 겁니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거시경제슬라이드가 물가보다 클 경우 연금 급여액은 동결하는 선에서 멈춥니다.
정부가 자동조정장치를 두고 “전년보다 연금액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명목 연금액은 유지되거나 늘어나도록 설계돼있다는 설명입니다.
다만 연금 급여의 실질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자동조정장치가 발동되면 연금 급여 증가율이 물가상승률보다 낮아지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소득 보장론 측은 연금연구원에서 발간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일본식 거시경제 슬라이드를 적용할 경우 연금 급여액이 17% 감소한다”고 주장합니다. 2050년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가입자의 생애 총연금 급여를 기준으로 추계한 결과입니다.
이들은 현재 국민연금 평균 급여액과 소득대체율이 충분히 성숙한 수준이 아니라는 점도 우려합니다. 선진국들이 연금 삭감 가능성에 합의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연금 제도가 충분히 정착했기 때문인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5월 기준 국민연금 월평균 급여는 65만 163원으로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선정 기준(1인 가구 71만 3102원)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노인빈곤율 역시 여전히 40%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재정 안정론 측은 현시점의 노인 빈곤이 심각하다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소득보장론이 주장하는 자동조정장치의 효과가 과장됐다고 지적합니다. 우선 급여 삭감 폭은 17%보다 훨씬 낮을 가능성이 큽니다. 연금연구원의 보고서는 당장 내년부터 거시경제슬라이드를 작동한다고 가정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정부는 △보험료 수지전환 시점(2036년) △기금 고갈 5년 전(2049년) △기금 고갈 시점(2054년)으로 나눠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고갈 시점부터 자동조정장치를 발동할 경우 위 보고서에서 가정한 2050년 신규 수급자는 수급 시점에는 연금이 전혀 삭감되지 않습니다.
국회 논의를 통해 구체적인 제도 적용 방식을 바꿀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기대여명 증가율이나 가입자 수 감소율의 절반만큼만 거시경제슬라이드에 반영하는 식입니다. 정책적 개입을 통해 삭감 폭을 더 줄일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급여 삭감이 불 보듯 뻔한데도 대다수 선진국 수급자들이 자동조정장치를 수용했다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할 지점입니다. 인구 구조가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경제 활동을 하고 있는 가입자들의 보험료 인상 여력이 한계에 봉착했다면 연금을 일정 부분 깎아서라도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의미입니다.
정부가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제시한 시기(2036~2054년)가 되면 어떻게든 재정 안정성 확보를 위한 추가 개혁 논의가 불거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연금 개혁에서 정부는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올리자고 제안했지만 전문가들은 위 시기가 되면 결국 보험료율을15~18%까지 올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초고령사회에서 공적 연금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보험료율을 20%수준까지 끌어올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도 재정 지속가능성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결국 급여액을 일부 깎는 방법만 남습니다. 정부의 이번 자동조정장치 제안은 ‘예견된 미래’를 공론장에 조금 앞당겨 온 것 뿐이라는 이야깁니다.
세종=주재현 기자 joojh@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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