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넘었어" 외부 비판도 즐긴다…한은의 '과감한 목소리' 통하려면

세종=유재희 기자, 김주현 기자 2024. 9.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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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구조개혁 새판짜기:BOK리포트(下)
[편집자주] 남대문이 시끌벅적하다. 서울 남대문로에 위치한 한국은행은 정책금리 조정이라는 전통적 책무 외에 여러 사회 구조개혁 문제에도 목소리를 낸다. 사교육 문제나 최저임금 차등화처럼 중앙은행이 내놓기 어려운 도발적인 정책 제안도 거침없다. 한은의 달라진 행보를 두고는 장기적으로 우리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긍정적 평가와 업무 영역을 넘어선다는 비판이 공존한다. 한은의 변화와 내외부 평가, 정책 실현 가능성까지 종합적으로 살펴본다.
"한은, 전문가는 아니다"…도발적 보고서에 불편한 시선
(서울=뉴스1) 사진공동취재단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2024.8.22/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은행 보고서의 문제의식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시행 방안 등 여러 가지를 고민해야 할 상황"(최상목 경제부총리, 9월 9일)
"(한은이)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농업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6월 19일)

한국은행 보고서의 파격 제안이 화제지만 관가에선 거리를 두는 분위기다. 실제 농산물 물가를 낮추기 위해 수입 비중을 높여야 한단 연구 결과에 대해선 관련 부처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갈린다. 한은이 통화정책 수행을 위해선 부동산·교육·노동 분야 등 거시적 측면에서 연구를 수행해야 한단 의견이 있다. 반대로 통화정책에 대한 시장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이창용 총재 취임 이후의 한은이 변했다는 점이다. 저출생, 지역 균형, 입시경쟁 과열, 돌봄 인력 등 우리 사회의 해묵은 문제들을 정조준하고 있다.

그 통로는 'BOK 이슈노트'라는 이름의 보고서였다. 보고서에는 돌봄노동에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고 외국 인력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 과일·채소의 수입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등 제언들이 담겼다. 최근에는 대학 입시경쟁 과열을 막기 위해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띄우기도 했다.

문제는 정책 입안자들의 반응이 미덥지 않단 점이다. 특히 농산물 물가 관련 연구는 정부와 직접적인 논쟁으로 이어졌다.

한은은 지난 6월 '우리나라 물가수준의 특징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과일·채소의 수입 비중을 높여 농산물 물가 수준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에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농산물 수입과 유통 구조 개선 등 한은이 최근 보고서에서 제안한 것들은 정부가 하고 있는 일들이고 농업 분야의 특수성, 국가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 물가 중심으로만 본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은이 대학 입시에 지역별 학생 수 비율을 반영한 비례선발제를 도입하자는 제안도 관심을 받았다. 사교육 과열과 수도권 인구 집중, 집값 상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었다.

[서울=뉴시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물가 관련 긴급현안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최 부총리, 송명달 해양수산부 차관. (사진=기획재정부 제공) 2024.03.15.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류현주

이 또한 정부는 신중론을 폈다. 최상목 부총리는 "(한은이) 우리 사회에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정책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평가는 갈린다. 먼저 한은이 통화정책을 위해선 중장기적 측면에선 연구를 진행하고 논의를 활성화할 수 있단 입장이 있다.

하준경 한양대 에리카(ERICA) 경제학부 교수는 "집값·교육 등은 중장기적 관점에선 통화정책의 제약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한은은 금융을 안정시키고 정부 정책과의 조화도 도모하는 등 거시경제 전반을 살펴보면서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앙은행이 독립적인 위치로서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기초작업으로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연구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대로 중앙은행의 업무 범위를 벗어난다는 지적도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한은이 보고서를 내놓는 의도가 통화정책(금리인하 기대)에 대한 시장 관심을 돌리려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면서 "굳이 비유하자면 전방의 철책을 지키는 게 급선무인데 대민 지원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준도 다양한 주제 연구"…'한은판 구조개혁' 통하려면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우석경제관에서 열린 '지역균형발전 정책과 교육 정책의 패러다임 변화-행정제도 및 입시제도 개편을 중심으로'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한국은행 공동 심포지엄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2024.08.27. /사진=김선웅

한국은행은 앞으로도 다양한 구조적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이창용 총재가 이끄는 '한은표 구조개혁'이 현실적으로 사회문제 대안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전문가들은 '싱크탱크'로서 한은의 행보가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정치적 논쟁과 갈등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정책 실현 가능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도 의문점이 뒤따른다.

한은이 다루는 여러 구조개혁 중에서도 지역균형개발은 한은이 꾸준히 관심을 두고 연구하는 과제다. 인구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효율적인 균형발전 전략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부터 지역경제 심포지엄도 만들었다.

한은은 저출생·고령화와 지역 격차 등 구조적 문제가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고 지역사회에서 먼저 현실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도권과 그 외 지역간 불균형이 커지면서 지역경제의 성장기반도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응방안을 찾는 것이 한은의 중요한 책임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한은은 역대 정부가 추진한 혁신도시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공공기관을 지역 중소도시로 이전했지만 인구 유입이나 생산성 개선 측면에서 효과가 미미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소수 대도시 중심 투자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한은의 정책 제언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공론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제를 연구하고 발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관계자들의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한은이 물가 관리와 통화정책을 하는데 있어 부동산 가격이나 다른 구조적문제가 걸림돌이 되다보니 관련 연구를 하는 것"이라며 "미국 등 해외 중앙은행도 다양한 주제의 연구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총재가 여러 구조적 문제 해결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보고서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며 "한은의 제언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려면 정부가 여러 의견을 받아들이고 실패한 정책은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한은의 행보가 중앙은행의 업무 영역을 넘어서면서 정책 제안을 하는 건 월권이라는 견해도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이 정책 보고서를 만드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라면서도 "연구자 개인의 연구로 그치지 않고 공식 입장처럼 발표하는 것은 정부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은이 정부 정책에 대해 조언을 하기 시작하면 서로간 지켜야 할 선이 무너지고 통화정책 결정에 있어 한은의 독립성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은 안팎에서는 지속가능성 문제도 나온다. 이 총재의 임기가 끝나더라도 한은이 이같은 행보를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다. 한 한은 관계자는 "이 총재가 오기 전에는 하지 않던 일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한은이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은 있다"며 "내부에서도 총재가 바뀌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이에 이 총재는 사회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이 총재는 지난달 27일 교육 보고서를 발표하는 심포지엄 현장에서 "나쁜 균형에서 빠져나오려면 파격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며 "정부 정책이나 법제도를 손대지 않더라도 서울대·연세대·고려대 교수님들이 결단만 해준다면 큰 파급효과를 일으키고 나쁜 균형에서 벗어나는 단초를 제공하는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유재희 기자 ryuj@mt.co.kr 김주현 기자 nar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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