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엄마 돈 안 주려다…" 35억 상속 포기한 자녀 '날벼락' [더 머니이스트-김상훈의 상속비밀노트]
재력가 A씨는 B씨와 결혼해 슬하에 아들 C씨와 딸 D씨를 뒀습니다. B씨와 사별한 A씨는 이후 E씨를 만나 재혼했으나 불과 3년 만에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사망했습니다. A씨가 상속정리를 미처 하지 못한 상황에서 남긴 재산은 부동산과 금융재산을 합해 35억 원가량이었습니다. 아들 C씨는 결혼해 자녀 둘(갑, 을)을 뒀고, 딸 D씨도 결혼해 자녀 둘(병, 정)을 뒀습니다. C씨와 D씨는 새어머니인 E씨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E씨가 아버지와 재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버지의 상속재산을 많이 받아 가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인터넷과 유튜브 등을 통해 자녀가 상속을 포기하면 손자녀에게 상속이 넘어간다는 얘기를 듣고 그렇게 되면 E씨의 상속분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해 C씨와 D씨는 상속을 포기했습니다. 과연 C씨와 D씨는 원하는 대로 새어머니인 E씨의 상속분을 줄일 수 있을까요?
위 사례는 실제로 제가 법률상담을 하면서 경험한 내용입니다. C씨와 D씨가 의도했던 바는 이렇습니다. 우리 민법상 1순위 상속인은 배우자와 직계비속(자녀 또는 손자녀)입니다. 상속분은 직계비속 간에는 동일하고, 배우자의 경우에는 직계비속보다 0.5를 가산해줍니다. 그러니까 위 사례처럼 자녀가 C씨와 D씨 두 명인 경우에는 배우자인 E씨의 상속분은 7분의 3이고, C씨와 D씨의 상속분은 각각 7분의 2씩이 됩니다. A씨의 상속재산이 총 35억원이므로 E씨가 15억원을, C씨와 D씨가 각각 10억원씩을 상속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속인이 상속을 포기하게 되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닌 것처럼 취급됩니다(이것을 ‘포기의 소급효’라 합니다. 민법 제1042조). 따라서 만약 자녀가 상속을 포기하게 되면 그 자녀의 자녀, 즉 손자녀가 직계비속으로서 1순위 상속인이 됩니다. C씨와 D씨가 의도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상속포기제도를 이용해 직계비속의 숫자를 늘려 배우자인 E씨의 상속분을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면 이렇습니다. C씨와 D씨가 상속을 포기하면 C씨와 D씨의 자녀들인 갑 을 병 정이 직계비속으로 상속인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E씨의 상속분은 11분의 3이 되고, 갑 을 병 정의 상속분은 각각 11분의 2씩이 돼 E씨의 상속분이 크게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이에 따르면 E씨가 상속받게 되는 재산은 약 9억5500만원이 됩니다). 그리고 이 방법을 사용하면 C씨와 D씨가 상속받은 다음에 갑, 을, 병, 정에게 다시 상속이나 증여를 해줄 때, 또다시 상속세나 증여세를 내야 하는 세금상의 불리함을 피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종래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이와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어 C씨와 D씨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대법원 2015. 5. 14. 선고 2013다48852 판결, 이하 ‘종래 판례’라 합니다). 종래 판례에서는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하면 배우자와 손자녀가 공동상속인이 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C씨와 D씨는 이 종래 판례에 관한 유튜브나 인터넷상의 글을 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에는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된다고 하면서 종래 판례를 완전히 변경했습니다(대법원 2023. 3. 23.자 2020그42 전원합의체 결정). 그 근거는 민법 제1043조입니다. 민법 제1043조는 “상속인이 수인인 경우에 어느 상속인이 상속을 포기한 때에는 그 상속분은 다른 상속인의 상속분의 비율로 그 상속인에게 귀속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여기서 말하는 ‘다른 상속인’에는 배우자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C씨와 D씨는 상속을 포기하는 바람에 아버지의 재산 전부를 단독상속인이 된 E씨에게 줘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상속을 포기하면 설사 3개월의 포기 기간이 아직 지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를 취소(철회)하지 못하는 것이 원칙입니다(민법 제1024조). 섣불리 인터넷상에 떠도는 이야기나 유튜브에서 얘기하는 것만 믿고 중대한 법률적인 결정을 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법률전문가의 조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사례였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김상훈 법무법인 트리니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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