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숙객 90%가 외국인"…글로벌 사로잡은 부자(父子) 한옥 호텔
국내 첫 한옥 호텔 선봬…외국인·MZ세대 사로잡아
(안동=뉴스1) 윤슬빈 여행전문기자 =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옥'이 유독 인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편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한옥'이 외국인 관광객에게 진정한 한국여행을 즐기는 필수 체험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옥의 인기에 '한옥 스테이'(한옥체험업)는 우후죽순 늘었다. 한국관광협회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한옥체험업 수는 2029개로 전년 대비 162%나 증가했다.
숙박 플랫폼들은 저마다 한옥 콘텐츠에 투자를 마다하지 않고 지자체들은 버려지거나, 오래된 한옥을 대체 숙박시설로 또는 신규 관광 요소로 개발한다. 에어비앤비의 경우 아예 한옥 카테고리를 신설하기도 했다.
이렇듯 한옥이 크게 뜨는 데엔 '락고재'의 안영환·안지원 부자(父子)가 큰 역할을 했다. 옛것을 즐기는 맑고 편안한 마음이 절로 드는 곳이란 뜻의 '락고재'(樂古齋)는 국내 첫 한옥 호텔이다.
락고재 역사는 2003년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오래된 한옥을 호텔로 재탄생한 '락고재 서울 본관'으로 시작한다. 이후 북촌 일대에 '가회동 북촌 빈관', '락고재 컬처 라운지 애가헌'과 안동 하회마을에 '락고재 하회 초가'를 열며 한옥 호텔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그리고 오는 10월 말, 락고재의 야심작 '락고재 하회 한옥호텔'의 개관을 앞두고 있다.
◇ 우연히 만난 한옥, 인생을 건 아버지
1992년, 미국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안영환 회장은 한국으로 돌아와 가업인 부동산 개발 사업을 운영하고 그때 서울 마포의 한 낡은 한옥 부지 개발을 맡게 된다.
집주인은 한옥을 헐고 빌라를 짓길 원했지만, 안 회장이 볼수록 정이 가는 한옥이 아까워 덜컥 임대받아 한정식집 열었다. 130년 된 가옥을 개보수하려고 콘크리트를 제거하고 골조만 남겼는데 그때 한옥의 진면모를 보고 푹 빠지게 된다.
한정식집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면서 안 회장은 한옥의 진정한 가치는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을 몸소 깨닫고서 국내 최초로 '한옥 호텔'이라는 개념을 구성하게 된다.
안 회장은 "락고재는 단순 숙박시설로 기획한 것은 아니다"며 "후대에 한옥이란 문화유산을 계승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플라스틱 지붕, 콘크리트로 짓는 양산형 한옥이 증가하는 추세 속 '군계일학'의 진짜 한옥을 만들겠다는 집요함도 있다. 한옥 대목수를 양성하는 '안동 한옥학원'과 박물관의 설립·운영하는 '락고재 문화재단'을 설립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한옥학원에서 배출한 대목수는 약 80여 명에 달한다.
◇ 외국인·MZ세대를 사로잡은 아들
2018년 부사장으로 아들인 안지원 대표가 합류하면서 락고재는 '힙'한 한옥호텔로 거듭난다. 안 대표는 호텔관광경영학 박사이다. 세계 1위 호텔 경영 대학교로 알려진 스위스 로잔호텔경영학교 출신이다.
안 대표는 한옥의 장점은 유지하되 외국인들이 불편해 하는 요소는 개선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침구와 어메니티다.
그는 "한국의 전통 요를 느끼길 바라서 최고급 비단으로 만든 요를 썼지만, 외국인들이 잠을 자는 데 많이 불편해 했다"며 "지금은 특급 호텔 수준에 맞춰 거위 털로 만든 침구를 쓰고 있다"고 했다.
이어 "투숙객이 한국의 정 '덤'을 느꼈으면 해서 미니바를 100%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며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허니버터 아몬드, 시트 마스크팩, 컵라면을 비치해 뒀는데 반응이 매우 좋다"고 덧붙였다.
실제, 락고재는 내국인보다 외국인 투숙객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 락고재 서울 본관의 경우 외국인이 90% 비중을 차지하는데 코로나 팬데믹 전엔 99%였다.
내국인은 팬데믹 이후 특별한 숙박 경험과 공간을 찾는 수요가 생기면서 늘기 시작했다.
과감한 마케팅도 한몫했다. 코로나 팬데믹 동안 매출이 '0'이었지만, 공간을 비워두기보다 각종 화보나 영상 촬영에 무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최근엔 블랙핑크의 여름휴가를 담은 '블랙핑크스 서머 다이어리'와 디올과 루이 비통 화보에 등장한 후 입소문이 나면서 20~30대 사이에서 뜨는 공간으로도 주목 받는다.
안지원 대표는 공간을 넘어 한옥을 '술'로 표현하기도 했다. 정부가 선정한 '2024 대한민국 관광 공모전 기념품 부문'에서 금상(국무총리상)을 수상한 '코리진'이 바로 그것이다.
안 대표는 "7년간의 실험과 연구 끝에 오랜 기간 한국에서 약재와 술재료로 사용한 노간주 열매를 비롯해 고수씨, 우엉, 유자, 오미자, 구기자 등 10가지 허브로 만들었다"며 "병은 기와색을 입혀 독일에서 특별히 제작하고 있다"고 했다.
◇ 명동 알짜 건물 팔고 세운 '안동 하회 한옥호텔'
오는 10월에 락고재의 야심작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하회마을에 '락고재 하회 한옥호텔'이 개관한다.
기존에 운영 중인 초가집을 복원해 만든 '락고재 하회 초가'를 별관으로 두고 이번에 약 1만6000㎡(약 5000평) 부지에 총 20여 개 기와 호텔을 본관으로 개관해 '락고재 하회 한옥호텔'로 총칭한다.
안 회장이 "필생의 역작"이라고 락고재 하회 한옥호텔을 소개할만큼 그에게 있어 '한옥 문화의 중심' 안동에서 한옥호텔을 연다는 것은 오랜 염원이자, 숙원사업이었다. 공사 기간은 15년, 준비과정까지 더하면 2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국내 최초 문화유산' 내에 자리한 한옥 호텔이라는 점에서도 더욱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다. 안 회장이 락고재를 짓기 전 부지는 문화유산으로 묶이게 되면서 까다로운 건축 허가 절차를 거쳐야 했다.
공사 현장에 흔하게 쓰는 폭약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런 저런 외부 요인으로 완공 기한은 1년, 2년, 5년, 15년까지 미뤄졌다. 넓은 호텔 내엔 안 회장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안 회장은 "가장 전통적이고 고급스러운 한옥을 완성하기 위해 순수 우리의 자재와 건축기법을 고집했다"고 말했다.
목재는 100% 국산 울진 소나무를 석재는 정으로 쪼은 밭돌을 사용했고 기와는 자연스러움을 연출하기 위해 색이 바랜 기와를 일부러 공수했다. 완벽한 차경을 위해 나무 하나도 여러 번 심고 뽑았다.
안 회장이 안동에 이처럼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은 한옥에 대한 그의 사랑과 같은 맥락이다. 안정적인 부동산을 포기하고 한옥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안동에 전격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건설비 조달하기 위해 서울 명동의 알짜 건물은 처분했다.
안영환 락고재 회장은 "K-컬처의 근간엔 한옥을 포함한 한국의 전통문화가 있다"며 "지역의 고령화로 인해 우리 문화 유산의 큰 축이 쇠퇴되는 것은 막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안동에 흔들리지 않을 굳건한 뿌리를 내리겠다"고 했다.
seulb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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