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된 C급 헌터 [책이 된 웹소설: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과거로 돌아간 헌터
시대물과 헌터물의 조합
'헌터물'은 판타지 장르 중 하나로, 초자연적 존재나 괴물을 사냥하는 헌터가 등장하는 소설을 의미한다. 이른바 '헌터'인 주인공이 초능력이나 무기를 사용해 괴물들과 싸워 성장한다는 이야기가 핵심이다. 강력한 적에게 맞서는 긴장감, 박진감 넘치는 전투, 직관적인 성장 요소 등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대다수 헌터물은 현대 내지는 근미래 한국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이 판타지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닌, 판타지 세계를 주인공이 살아가는 한국에 펼쳐놓는다. 이로써 헌터물은 독자들에게 익숙한 환경에서 비현실적 사건이 발생하는 반전을 제공한다. 독자들은 일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비범한 사건에 휘말리는 주인공을 통해 더 큰 대리만족을 느낀다.
한국이 배경이라는 설정은 헌터물 최대 강점이면서 한계이기도 하다. 독자들에게 익숙한 환경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강점이지만, 동시에 작품의 신선함이 떨어지고 변화를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를 깨고 독창적인 시도를 한 작품 중 하나가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다.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는 작품 배경을 현대가 아닌 일제강점기로 설정하며 기존 작품들과 차별화한 매력을 선사했다.
작품은 근미래 한국의 헌터였던 주인공이 괴물과 싸우던 중 목숨을 잃으며 시작한다. 평범한 C급 헌터인 그는 죽기 직전 '신이 있다면 자신을 과거로 보내 달라'는 소원을 빈다. '헌터 아카데미'를 나와 좋은 교육을 받았다면 지금과 다른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는 미련 때문이다. 다시 깨어난 주인공은 1939년 경성에서 살아가는 소년 '백철연'의 몸이 돼 있었다.
백철연은 친일파 가문 출신으로, 가문의 압박과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을 시도했던 인물이다. 새롭게 주어진 삶 속에서 주인공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다시 헌터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이때 일제강점기 경성이라는 배경은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작가는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고자 여러 면에서 노력했다. 일본어와 서울 사투리를 혼용하거나 시대적 특성을 잘 살린 캐릭터들이 상호작용하면서 경성이라는 배경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나는 섬돌 위에 올려진 구두를 신으며, 마당의 여자애―아마 이 하숙집의 딸―에게 물었다.
"저기, 학생. 혹시 이 근처에 서점 있니?"
"학생 아니래니깐요, 아까부터 참……."
그렇지. 지금 시대는 어려보인다고 다 학생인 것은 아닌 시절이었다. 중등교육 진학률조차 낮은 시대였으니까. (중략)
"서점이라면 요 근처에는 없는데요, 저쪽 큰길루 내려가서요, 명륜정 방향으로 쭉 가면 레코드빠 옆에 후루혼야가 하나 있겠지요. 오며가며 보셨을 텐데……."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중
일본어 간판이 내걸린 종로 거리를 배경으로 인력거와 노면전차가 오간다. 이런 경성에서 괴물을 퇴치하는 헌터의 이야기는 낯설고 새롭다. 일본 화족華族(귀족 계층)의 아가씨, 나라 잃은 울분을 감춘 사회주의자, 일본인이 되길 바라는 조선인, 조선인 정체성을 유지하는 양반 계층 등 등장인물의 면면도 시대적 배경을 더 그럴듯하게 만든다.
그와 동시에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는 역사적 무게감을 최대한 덜어냈다.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작품은 자칫하면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을 소년소녀로 설정하고 아카데미라는 공간에 밀어 넣음으로써 이를 해결해냈다.
헌터물의 전형적인 배경에서도 탈피해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낸다. 작가는 경성의 시대적 분위기를 재현하면서 다양한 인물이 얽히고설키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신선한 매력을 선사한다. 헌터물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 시도로 평가할 만하다.
김상훈 더스쿠프 문학전문기자
ksh@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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