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이제그만] ① 아동수당 유흥비에 '펑펑' 써도 속수무책
전문가 "관리·감독 체계 개선·공권력 강화를 위한 법적 개선 필요"
[※편집자 주 = 지난 4월 강원 강릉에서 8세 자녀가 신장 질환을 앓는 사실을 알고도 장기간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부모가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들은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수백만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받아 유흥비 등으로 탕진하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지난해 국내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4만8천여건에 달합니다. 특히 작년 아동학대로 인해 숨진 아동은 44명에 이릅니다. 연합뉴스는 반복되는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해법을 모색하고자 세 편의 기획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강릉=연합뉴스) 강태현 기자 = "보조금 지급 후에는 수급자가 어떻게 썼는지 아무도 몰라요. 그렇다고 가계부 확인하듯이 들여다볼 수도 없고요. 근본적 대안은 회수해야 하는 거겠지만 법적 근거도 모호해요."
지난 4월 강릉 아동학대 사건을 통해 부모가 보조금을 유흥비 등에 탕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보조금 관리·감독 체계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지 당국은 사생활 보호 등 개인정보 문제로 인해 보조금 사용 내역을 일일이 들여다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주위 신고나 행정기관의 적극적인 감시 없이는 이 같은 행태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고, 수급 관리 체계가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지급의 본래 취지가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아동학대로 의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피 혐의자가 확정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보조금 지급이 지속되는 탓에 관련 법 개정을 통해 악용을 막자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아이 위해 쓰라고 준 돈인데 부모가 흥청망청…회수 어려워
문제의 핵심은 수급자가 돈을 '목적대로' 쓰지 않는 데 있다.
17일 복지 당국에 따르면 아동학대처벌법상 아동학대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A(36)씨와 B(34)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생계·의료·교육·주거 급여 혜택을 받아왔다.
여기에 숨진 C(8)군 등 자녀 7명 중 만 8세 미만 자녀들에게 지급되는 지자체의 육아 기본수당과 정부의 아동수당 등 지원금은 월평균 450만원으로 꼬박꼬박 통장에 입금됐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난방도 되지 않고 쓰레기와 곰팡이가 즐비한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자녀들을 양육했다.
집에 세탁기조차 없어 자녀들이 세탁한 옷을 입지 못했음에도 집에서 담배와 술을 즐겼고, 보조금 대부분을 유흥비에 썼다.
부모 등 피고인들의 이 같은 보조금 악용 행태는 아동학대죄로 수사를 받게 되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이밖에 강원 도내에서는 보조금을 받고도 자녀 4명이 아사 상태가 될 때까지 방치해두거나 정신질환이 있는 자녀 10명에 제대로 된 치료를 지원하지 않은 가정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가정은 복지 당국의 가정 관리 대상에 올랐지만, 이미 사용된 보조금은 다시 돌려받을 수 없었다.
현행 아동수당법상 아동수당을 받거나 관리하는 보호자가 아동학대 범죄를 저질러 피해 아동 보호명령이 내려지는 경우 등 아동수당을 관리하기에 부적절한 때에는 지방자치단체장이 다른 보호자에게 아동수당을 지급하거나 관리하게 할 수 있다.
다만 아동학대 범죄가 발생한 경우 그에 따른 법적 조치가 있어야만 아동수당 관리자 변경이 가능하다. 즉 아동학대죄로 확정판결을 받기 전까지 아동수당이 지속해서 지급된다.
강원도에서 지급하는 육아기본수당은 아동학대 사례로 판정되면 수급권을 빼앗고 지급을 중단할 수 있지만, 그간 악용된 보조금을 회수할 수는 없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은 아동수당을 지급받거나 관리하는 보호자가 아동학대 행위자로 의심되어 신고된 경우 등에 대해서 아동수당의 지급을 정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아동수당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최근 대표로 발의했다.
돈 허투루 써도 알 길 없어…내역 확인 시 사생활 침해 우려도
이처럼 수급자가 돈을 허투루 써도 지급 주체는 알 길이 없다.
복지 당국은 특정 사건이 터져야만 사후 조치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에 보조금 악용을 예방하기 위해 내역과 절차를 투명하게 살피고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사용 내역을 일일이 들여다보기란 현재 복지 담당 인력으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사생활 보호 등 개인정보보호 문제가 얽혀 있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도내 한 지자체 복지 담당자는 "수급자의 보조금 사용 내역은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수령 이후에는 대상자가 사실상 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며 "정부 예산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다 간섭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지급된 보조금이 본래 목적대로 사용될 수 있도록 관리·감독할 필요성은 있다고 진단하면서도 수급자의 사생활과 존엄성을 지키는 방향으로 대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조금 수급이 적절히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내역을 일일이 확인하는 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박명숙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수급비를 주고 가계부를 확인하듯이 감독하는 건 불가능하고 올바른 방향도 아니다"며 "다만 수급비를 목적에 맞게 썼는지 관리하는 방식을 개선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고 진단했다.
악용 예방하려면 적극 개입 필요…"관리·감독 권한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사후적 조치보다는 악용 예방을 위한 사전 관리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담당 공무원 등 관계자들의 재량과 권한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법적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견해다.
강릉 아동학대 사건도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의 행색에 이웃 주민들이 인근 행정복지센터에 방임이 의심된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부모가 먼저 행정복지센터로 찾아와 해명하면서 담당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어려웠다.
시 관계자는 "수급 대상자라고 해서 집을 수시로 찾아가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집안을 둘러보는 게 싫다고 하면 강제적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정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친권을 우선하기 때문에 사생활을 이유로 집안이나 아이를 보여줄 수 없다고 하면 넘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적어도 아이들의 상태는 확인할 수 있도록 현장 담당자들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보완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박 교수도 "제일 중요한 건 아이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라며 "아동의 진술을 듣고 상황을 확인하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매뉴얼은 있지만, 이를 강제할 수는 없어 현장에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회적인 힘에 의해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체계가 작동한다는 걸 부모 등 양육자가 인식할 수 있도록 공권력 강화 등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taet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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