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파운드리 고객사들의 근황 <끝>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정보기술(IT) 시장에 관심 많으신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추석 아침은 기분 좋게 맞으셨나요? 8월 9일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에서는 삼성 파운드리의 고객사인 일본 프리퍼드 네트웍스(PFN)와 미국 IBM이 8월 열렸던 '핫칩스 2024' 학회에서 발표한 칩 로드맵을 살펴봤죠. 오늘은 삼성 파운드리의 다양한 고객사들이 어떤 칩을 중점적으로 개발하고 있는지를 핫칩스 자료와 업계 동향 등으로 간략히 정리해보겠습니다.
먼저 삼성 파운드리의 가장 중요한 고객입니다.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에서 시스템반도체 설계를 담당하는 시스템LSI사업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이 사업부의 최대 이슈는 '엑시노스 2500'입니다. 엑시노스 2500은 내년 삼성전자 MX(모바일경험)사업부가 출시할 갤럭시 S25에 탑재되는 것이 목표인 핵심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인데요. 이 칩은 회사 내부에서 '솔로몬'이라는 코드명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엑시노스 2500의 개발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게이트올어라운드(GAA)가 처음으로 도입되고, 삼성 파운드리의 최첨단 공정인 3나노(㎚·10억 분의 1m) 공정으로 생산된다는 것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데요.
이 칩은 현재까지 삼성 파운드리의 3나노 공정 수율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한 웨이퍼에서 건져낼 수 있는 칩이 많지 않아서, 현재까지의 AP 원가 경쟁력이 경쟁사 제품보다 크게 낮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년 초 나올 갤럭시 S25에 탑재될 확률은 기적에 가까운 희박한 수준으로 취재됩니다. 2023년에 엑시노스 2300이 갤럭시S23 스마트폰 전량에 탑재되지 못했던 이후 두 세대만에 또 이런 사건이 벌어진 거죠.
삼성 파운드리와 시스템LSI 사업부의 관계는 서로에게 중요합니다. 지난해 갤럭시S24, S24플러스용으로 공급된 엑시노스 2400은 삼성 파운드리의 4나노 공정으로 만들었습니다. 업계에서는 이 칩 생산 이후 "3나노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엑시노스 2400을 보니 삼성 파운드리 4나노는 양산성이 보장된 공정"으로 입소문이 났죠. 따라서 3나노 수준을 끌어올려 TSMC나 거대 팹리스 경쟁사들을 따라잡아야 하는 삼성 입장에선 지금의 상황이 달갑지 않을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말이죠. 엑시노스 2500이 갤럭시 S25에 탑재되지 못한다면 삼성전자 내부의 이슈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엑시노스가 잘되기만을 기대하고 있던 국내 반도체 공급망(SCM)에 균열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예컨대 엑시노스 2500 납기에 맞춰서 미리 돈을 당겨서 설비를 구축하고 있던 테스트·패키징 기업들에 치명타가 될 수 있고요. 엑시노스 스펙에 맞춰서 각종 부품과 소재를 개발하고 있던 크고 작은 기업들의 계획도 중단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국내 반도체 생태계에 여러모로 좋지 않은 영향입니다. 한국 시스템 반도체 SCM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엑시노스 2500이 분전했으면 좋겠습니다.
텐스토렌트는 삼성전자의 전도유망한 고객사입니다. 애플·인텔·테슬라에서 핵심 칩 개발을 진두지휘했던 ‘반도체의 전설’ 짐 켈러가 CEO로 있는 곳이죠.
텐스토렌트는 핫칩스 2024 학회에서 2023년 개발을 끝낸 '블랙홀'이라는 칩을 소개했습니다. 2021년 그레이스컬(Grayskull)→2022년 웜홀(Wormhole)→2023년 블랙홀까지 이어지는 제품인데요.
블랙홀의 경우 TSMC의 6나노 공정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블랙홀의 특이한 점은 회사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AI 연산 코어인 '텐식스(tensix)' 코어를 140개 장착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지금까지 개발한 3개의 AI 칩 중 텐식스 코어의 코어 수가 가장 많습니다. 이 코어들이 모여서 16비트 기준 372테라플롭스의 연산속도를 낸다고 합니다. 또 16개의 CPU 코어를 배치했는데요. 텐식스와 CPU 코어 모두 arm도 아니요, 인텔의 x86 기반도 아닌 ‘RISC-V’ 기반으로 설계됐습니다. 또 엔비디아의 GPU 통신 기술인 인피니밴드(Infiniband)에 대응해 범용성과 확장성이 장점인 이더넷(ethernet)이라는 표준을 적극 채용하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이 칩에는 초당 512GB 대역폭을 8개의 GDDR6 칩이 함께 동작합니다. HBM을 활용하는 경쟁사 제품들보다 전력 소모가 적고 제조 원가가 싸다는 장점을 내세운 듯 합니다.
이외에도 엔비디아의 '쿠다(CUDA)' 소프트웨어에 대항해 TT-메탈리움(Metalium)이라는 프로그램도 소개했습니다. 블랙홀과 소프트웨어·이 칩을 중심으로 구성한 컴퓨팅 시스템인 '갤럭시'까지 풀스택으로 고객사에 제공한다는 목표입니다.
텐스토렌트는 블랙홀까지는 TSMC와 협력했습니다. 블랙홀의 차기작인 퀘이사(Quasar)부터 삼성 파운드리를 활용합니다. 텐스토렌트에 따르면 퀘이사에는 요즘 반도체 업계 최고의 이슈인 '칩렛'을 적용합니다. 칩렛은 여러 개의 칩(다이)을 마치 목욕탕 타일처럼 붙이는 기술입니다. 최근 반도체 미세화가 한계에 다다르면서 이 공정이 급부상하고 있죠. 인텔이나 TSMC 등 삼성전자 라이벌들이 모두 열심히 하고 있는 패키징 기술입니다.
한때 삼성 파운드리와 칩 생산 프로젝트를 한번이라도 같이 진행했다가 TSMC로 건너간 빅테크나 팹리스 스타트업도 핫칩스 2024에서 각자의 기술을 뽐냈습니다. 우선 메타. 메타는 삼성 파운드리와 7나노 XR 칩에 관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이 있죠. 자체 서버용 칩인 'MTIA'는 1세대, 2세대 모두 TSMC를 활용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번에 핫칩스에서 발표한 2세대 MTIA는 TSMC 5나노 공정을 이용했습니다. 23억5000만개의 트렌지스터를 가졌고요, 이 칩 역시 HBM을 활용하지 않고 저전력이 특징인 LPDDR D램과 연동한 게 특징입니다.
메타는 텐스토렌트와 마찬가지로 리스크-파이브(RISC-V)라는 설계 자산을 활용했다고 언급했습니다. RISC-V는 요즘 반도체 설계 업계에서 뜨고 있는 오픈 소스 형태의 설계 자산이죠. 영국 암(arm)과 인텔의 x86에 비해 AI 칩 설계를 위한 원가를 대폭 낮출 수 있고 칩 기능 확장에도 부담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삼성전자도 최근 RISC-V 연구 확장을 위해 미국에서 조직을 신설하고 빅테크에서 인력 영입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메타가 삼성 파운드리를 활용할 가능성은 어느정도일까. 올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한국에서 만난 적 있죠. 이들이 서버용 AI 칩 생산에 대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을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업계 관계자들의 반도체 도파민이 자극됐습니다. 실제 저커버그 CEO는 3월 윤석열 대통령과 만나면서 TSMC에 대해 "지정학적 불안(volatile)이 있는데 의존도가 너무 높고, 삼성과의 협력이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한때 삼성의 고객사였던 토종 반도체 회사 퓨리오사AI도 핫칩스에서 의미있는 발표를 했습니다. 2세대 레니게이드를 처음 공개한 것인데요. 1세대 칩 워보이에서 2세대로 넘어가면서 삼성 14나노→TSMC 5나노·CoWoS 패키징 공정을 활용했습니다. 2개의 HBM이 활용되고요. 엔비디아 A100과 비슷한 선상의 제품인 엔비디아 'L40S' GPU와 비교했을 때 와트당 성능이 60% 높은 전성비 좋은 칩을 내놓았다고 자신했습니다.
지금까지 삼성 파운드리 고객사들의 근황을 살펴봤는데요. 여러 고객사들과 협력 이야기에도 불안한 시장 포지셔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3나노 수율 부진 △빅 커스터머(Big Customer) 고객사 부재 △TSMC와 벌어지는 점유율 격차 등 때문인데요.
삼성 파운드리의 불안함은 실적과 설비 투자 계획에서 드러납니다. 우선 올 2분기 적자를 기록했던 삼성 파운드리는 3분기에도 유의미한 실적 개선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세계 1위 TSMC의 올 3분기 영업이익률 예상치가 42.5~44.5% 안팎으로 점쳐지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아무래도 고객사 수주 부진이 가장 큰 이유겠습니다.
설비 투자 계획도 삼성전자의 기존 계획과는 다르게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최첨단 반도체 생산설비가 모여 있는 평택사업장의 경우 올해에는 더이상 파운드리 라인 투자가 진행되지 않습니다. 최신 공장인 평택 4라인에서 파운드리 라인으로 배정됐던 공간은 메모리 라인으로 쓸 예정이라고 하고요.
미국 테일러 공장에 대한 증설도 이게 참 말처럼 쉽게 되지가 않습니다. 2021년 170억 달러를 투자해 테일러 팹을 짓겠다는 발표 때만 해도, 삼성은 올해 하반기에 첫 설비를 가동한다는 계획이었는데요. 다양한 이유들로 건립 계획이 지연되면서 첫 가동까지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 상황 같습니다. 테일러 가동 지연 또한 고객사 수주 부진이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다만 희망을 걸 수 있는 점은 TSMC에 대적할 수 있는 파운드리가 세상에 몇 개 없다는 점입니다. AI 반도체의 '왕'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TSMC는) 훌륭하다"면서도 "그러나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다른 업체를 이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폭증하는 AI 칩 수요를 TSMC 하나로 감당할 수 없자 다른 파운드리를 활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 건데요. 삼성전자, 인텔만이 이 후보군 안에 들어갑니다. 삼성 파운드리가 시스템LSI사업부, AI 팹리스 스타트업과의 협업으로 '빅 커스터머'와의 대박 협력을 가져갈 수 있을지 기대해보면서 오늘의 하이엔드 테크는 여기서 매듭짓습니다. 풍성하고 멋진 추석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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