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서울 살았는데…생이별 남매가 다시 만나는데 걸린 시간 61년
1962년 뿔뿔이 흩어졌던 남매, 3년간 서울경찰청 실종 수사 끝에 상봉
"살아있어줘서 고맙다" 한참을 울었던 그들…추석 앞두고 아직 못찾은 막내 생각
[편집자주] 머니투데이 사회부 사건팀은 지난 4개월간 전국 각지에서 실종 가족들을 만났다. '2024 실종리포트-다섯가족 이야기'는 한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실종 가족들에 대한 기록이자 오늘날 가족의 의미를 찾으려는 우리의 이야기다.
새어머니는 종석이 아버지한테 자녀가 없는 줄 알고 재혼했다. 얼마 후 사별한 전처가 낳은 종석이와 동생 종순, 종자가 서울로 아버지를 찾아왔다. 하루 아침에 자식 셋이 생긴 새어머니는 "보따리 싸서 나가겠다"고 했다.
종석이는 가족들이 함께 있는 단칸방이 싫어 자주 집을 비웠다. 어느날 집에 돌아와 보니 두 동생이 없었다.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61년이 흘렀다.
종석은 1954년 충북 중원군 상모면 화천리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집안은 지역 유지였다. 그 당시 아버지는 일본 유학을 다녀왔다. 집에 있는 5단 짜리 '단스'(옷장을 뜻하는 일본어)를 열면 지폐가 가득했다.
종석이가 5살 때 가족은 충북에서 서울 성동구 사근동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 때쯤 어머니에게 병이 생겼다. 병명도 몰랐다. 어머니는 "죽더라도 고향에서 죽고 싶다"며 종석이와 동생 둘을 데리고 충북 중원군 상모면 고향 마을로 내려왔다.
"엄마가 뒤에서 갈게 종순이 먼저 가."
종석의 둘째 동생 종순(1956년생)은 시골길을 걸으면서도 자꾸 뒤쳐지는 엄마가 신경쓰였다. 이모네 간다고만 들었다. 막내 동생 종자(1959년생)는 엄마품에 안겨 있다. 종순이 "왜 자꾸 뒤로 쳐져요?"라고 물을 때마다 어머니는 "먼저 가"라고만 했다. 종순이가 이모집에 도착했을 땐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종순은 이모집에서 지냈다. 이모집에는 버스 차장으로 일하던 '춘분이 언니'가 살았다. 얼마 후 춘분이 언니와 사람들이 종순에게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삼남매는 상모면 일대 당숙모집, 이모집 등에 한명씩 맡겨졌다. 1년쯤 후 어떤 친척이 서울에 사는 아버지를 찾았다며 흩어졌던 삼남매를 데리고 용산구 보광동 단칸방으로 향했다. 가세는 기울어져 있었다.
서울에 오니 아버지는 새어머니와 살고 있었다. 아버지한테 자식이 없는 줄 알았던 새어머니는 삼남매가 아버지를 찾아오자 마음이 편할리 없었다. 어느날 종석이가 단칸방으로 돌아왔을 때 두 동생은 없었다.
종석 동생 종순이는 6~7살때쯤 이모가 자신을 장충동 한 부잣집에 식모로 맡겼다고 어렴풋이 기억한다. 종석은 종순이를 찾아간 적이 있다. 까치발을 하니 담장 넘어 종순이가 보였다. 종순은 오빠를 알아봤다. "오빠 배고프지"라며 누룽지를 가져다줬다.
"지금 찾고 있는 분이 계세요. 아버지와 오빠 성함 기억하세요?"
오빠와 헤어진 지 60여년 후. 2023년 7월 어느날 종순씨는 경찰 전화를 받았다. 서울경찰청 실종수사팀이라고 했다. 처음엔 보이스피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와 오빠의 이름이 머릿속을 스쳤다.
종순씨는 오빠 이름을 종식이라고 잘못 답했다. 경찰관이 "종석씨 아닌지"라고 다시 묻자 그제야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오빠가 찾고 있다며 만나고 싶은지 물었다. 몸이 떨리고 눈물이 흘렀다. 전화를 끊은 종순씨는 꼬박 밤을 샜다.
종석씨가 2020년 11월 경찰에 실종 사건을 접수하면서 시작된 수사가 3년만에 결실을 맺었다. 서울청 실종수사팀 소속 함명호 팀장과 전세희 경사는 자기 일처럼 수사했다. 먹고 살기 바빴던 우리의 60년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가족들 중 일부라도 꼭 찾아주고 싶었다.
어머니와 이모의 호적을 확인하려고 했지만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 서울기록원 협조를 받아 사라진 아동보호시설의 입소자 기록을 며칠간 모두 들여다봤다. 종순씨의 송죽원 입소기록을 찾아냈고 오빠와 동생의 DNA를 검사해 모계가 일치한다는 결과를 받았다.
동생 종순씨도 61년간 오빠와 가족을 잊은 적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은 짙어졌다. 연인이 생길 때면 유독 그랬다. 결혼 이야기가 오가면 종순은 불안해졌다. 자신의 사연을 들으면 상대 가족이 반대할 수 있다는 걱정이 있었다.
1980년대초 경찰청을 찾아가 가족들을 찾아달라고 했다. 1983년부터 진행된 '이산가족찾기 특별생방송'을 보고 방송국도 찾아갔지만 '전쟁 고아가 아니라 안 된다'는 답을 들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손자까지 봤지만 마음 한켠엔 늘 오빠와 여동생이 있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가족 생각이 깊어지는 데 찾고 싶어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더라도… 꼭 다시 만나서 같이 살고 싶었습니다"
종순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61년만이었다. 지난해 8월 종석씨와 종순씨는 부둥켜안고 울었다.
오빠는 매제를, 동생은 올케를 처음 만났다. 동생은 손주도 있었다. 종석씨는 "살아있어줘서 고맙다"며 눈물을 터트렸다. 눈물을 삼켰던 60여년의 세월이 떠올랐다.
동생은 마포구에 산다고 했다. 종석씨 집은 강서구다. 버스 한번 타면 되는 거리인데 다시 보는 데 61년이 걸렸다. 종순씨는 눈물을 훔치며 "버스나 지하철에서 마주쳤을라나"라며 미소 지었다. 상봉 후 이들 남매는 일주일에 한 두번은 꼭 서로를 찾는다.
성인이 된 종순씨는 올해 오빠와 두번째 추석을 지낸다. 명절이면 오빠 가족과 한곳에 모여 밥을 먹고 사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 문득 막내 종자씨 생각을 한다. 아직 찾지 못한 막내 동생과 추석을 함께 보내는 상상을 한다. 종석씨는 "막내가 살아 있을지 모르겠다"며 "살아 있으면 꼭 한 한번 보고 싶다"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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