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 게임만 하던 '퍼플'에서 경쟁사 소니 게임도 파는 까닭은
엔씨소프트가 자체 게임 서비스용으로 활용했던 유통망 '퍼플'에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SIE)의 PC 게임을 입점시키며 개인용 컴퓨터(PC) 게임 배급 사업에 진출했다.
16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엔씨소프트는 최근 '퍼플'을 통해 소니의 PC 게임 4종을 일주일 간격으로 차례로 선보인다는 계획을 알렸다. 10일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 컴플리트 에디션'이 첫선을 보인데 이어 '라쳇 앤 클랭크: 리프트 어파트'와 '스파이더맨' 시리즈 2종을 차례로 공개한다. 출시를 기념해 각 게임별로 출시 직후 2주간은 정가의 20∼40% 할인 판매도 진행한다.
엔씨는 앞서 2023년 11월 소니와 전략적 협업 관계를 맺었는데 이번 유통은 이 협업이 구체화한 첫 사례다. 엔씨소프트는 "다양한 타이틀을 퍼플에서 즐길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며 "추가 타이틀 라인업과 출시 일정은 나중에 공개한다"고 밝혔다.
자사 게임 '런처'에서 외부 게임도 파는 장터로
현재 게임은 오프라인 상점에서 '패키지'로 구매하던 과거와 달리 온라인으로 결제하고 파일을 다운로드하는 방식으로 유통된 지 오래됐다. 최근에는 소비자 접근성을 확대하기 위해 대규모 인터넷 소프트웨어 유통망(ESD)을 통해 게임을 출시하는 게 일반적이다. 미국 밸브사가 운영하는 세계 최대 유통 플랫폼 '스팀'은 이 영역의 시장 지배적 사업자다. 크래프톤의 '배틀그라운드' 같은 한국 게임이 세계 각지에서 흥행한 것도 스팀을 통해 공급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내외 유명 게임사들은 이용자를 묶어 두는 록인(lock-in) 효과와 업데이트 편의성 등을 이유로 자체 유통망을 유지하고 있다. 퍼플도 이런 사례 중 하나로, 엔씨의 게임을 PC 환경에서 서비스하는 실행기(런처) 용도로 주로 쓰여 왔다.
이번 소니 게임 출시는 퍼플이 자체 유통을 넘어 스팀과 같은 유통 플랫폼으로 첫발을 뗀다는 의미다. 엔씨는 퍼플을 △자사 게임을 전 세계를 대상으로 유통하는 경로로 활용하는 한편 △소니를 포함해 다양한 파트너사의 게임을 들여와 퍼플을 통해 구매하고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한다고 밝혔다. 게임 유통 사업으로 수익을 거둘 통로를 늘리는 한편, 퍼플 자체의 이용자 수를 증가시켜 결국 자사 게임에 대한 접근성도 확대하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퍼플 입점 소니 4종, 국내서만 플레이 가능
엔씨는 1분기(1~3월) 실적발표 때부터 퍼플을 유통 플랫폼으로 변화시키면서 '트리플A급' 외부 게임을 수혈하겠다고 예고해 왔다. 트리플A급이란 많은 개발비가 들어가 큰 흥행이 기대되는 '대작' 게임을 말한다. 이름값만 놓고 보면 이 약속은 지켜졌다.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는 플레이스테이션(PS)판으로 2022년 출시돼 약 1년 동안 840만 장이 팔렸다. 2020년 출시작인 '스파이더맨: 마일즈 모랄레스'도 2023년 기준 1,440만 장의 누적 판매량을 기록한 성공작이다.
다만 당장 이것만으로 스팀이나 에픽게임즈 스토어 등 기존 대형 ESD와 어깨를 나란히 할 '글로벌 ESD'라는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퍼플을 통해 출시된 소니 게임들은 한국 내에서만 배급권을 인정받았다. 즉 해외 퍼플 이용자는 이들 게임을 구매하거나 이용할 수 없다. 한국 시장 내로 봐도, 이들 게임은 이미 스팀에서 PC판 출시까지 마치고 장기간 유통돼 왔다. 각 게임의 정가도 스팀과 차이가 없으며 할인은 기간이 한정돼 있다.
엔씨는 퍼플을 ESD로 안착시키기 위해 다른 경쟁 유통망과 구별되는 퍼플만의 차별화 요소를 선보이는 과제를 안게 됐다. 스마일게이트의 게임 유통 플랫폼 '스토브'도 트리플A급 게임을 들여오는 경우는 드물지만, 일부 타이틀의 국내 독점 출시와 인디 게임 지원 프로그램 등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퍼플은 PC와 모바일 게임을 동시 유통하고 있는데 이를 활용해 파트너사의 모바일 게임에도 '크로스플레이' 기능을 제공하는 등 차별화를 시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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