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농산물값 우상향 … 전세계 '식량안보' 빗장

김덕식 기자(dskim2k@mk.co.kr) 2024. 9. 1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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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가뭄에 농산물 작황 부진
올해 코코아 등 먹거리값 최고
2050년까지 50% 더 오를 전망
각국 식량주권 확보에 사활
中 '절대적 자급자족' 목표
인도는 곡물 수출 감축나서

지난달 우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를 기록하며 3년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었지만, 체감 물가는 여전히 높다. 그동안 누적된 물가 상승률이 서민들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본격화한 물가 급등 현상이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자리 잡히면서 세계 각국은 식량주권을 둘러싼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주요 곡물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환경이라는 점에서 먹거리 문제는 안보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성이 커졌다. 지구촌은 이미 식량안보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 한창이다.

오렌지 주스와 올리브유, 코코아 등 주요 먹거리 품목이 올해 들어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밀과 커피, 토마토, 복숭아, 블루베리 등 품목 역시 상승세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글로벌 서민들의 삶이 녹록지 않다. 기후변화가 단시일 내 극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서 각국이 '식량안보'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중국과 일본, 인도 등 주요 국가는 식량안보 담장을 높이 쌓기 위한 제도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세계 최대 농산물 수입국인 중국은 지난 6월부터 '식량안보보장법(식량안보법)' 시행에 들어갔다. 법적 강제성을 동원해 식량안보를 지키기 위한 목적이다. 지난해 12월 공표된 식량안보법은 총 11장 74조로 구성돼 있다. 생산부터 저장, 유통·가공까지 식량 공급의 전 과정을 다루고 있는 식량안보법에 따르면 곡물 가공 사업자는 관련 산업표준을 준수해야 하고 제품 품질과 안전에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농지의 다른 용도 전환 및 음식물 낭비 방지 등과 함께 위반 시 처벌 규정도 포함됐다. 법을 위반한 단체와 개인에게는 2만~200만위안(약 380만~3억80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중국이 이 법을 통해 해외 식량 의존도를 낮춰 '절대적 자급자족'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대부분 분야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양의 농산물을 수입하는 중국 입장에서는 식량안보 담장을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 3월 보고서에서 "식량안보법은 법률적인 강제를 통해서라도 식량안보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분석했다. 중국 관영 농민일보는 이 법안이 중국 식량 분야 최초의 기본법이며, 중국의 식량안보 체계가 더욱 개선되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지난 5월 '농정 헌법'으로도 불리는 '식료·농업·농촌 기본법'이 개정됐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1999년 제정된 이 법이 대폭 개정된 것은 처음이다. 개정된 법은 기후 위기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고려해 기본 이념에 '식량안보 확보'가 추가됐다. 식량안보가 초점인 셈이다.

기후변화가 피부로 와닿으면서 친환경 대책도 강조됐다. 일본 정부는 농약이나 비료를 적정하게 사용하도록 하고, 환경 부담을 줄인 기술을 활용한 생산방식 도입을 촉진하고, 필요한 시책을 마련해야 한다.

식량안보는 '양질의 식량이 합리적인 가격에 안정적으로 제공돼 국민이 이를 입수할 수 있는 상태'로 정의됐다. 또 식량 자급률 향상과 식량안보 확보에 관한 목표를 새롭게 설정해 달성 상황을 적어도 연간 1회 조사하도록 했다. 마이니치신문은 "국내 생산 확대를 기본으로 수입국 다양화, 식량 비축으로 식량의 안정적 공급을 모색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수입 대상국 다변화, 수출 촉진을 위한 농산물 경쟁력 강화, 다양한 형태의 농업 인정 등에 관한 내용도 새 법률에 담겼다.

일본은 법안 개정에 이어 식량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추가 평가지표를 도입할 예정이다. 그동안 식량자급률을 유일한 목표로 삼았지만, 다양한 지표를 도입해 식량안보 정책의 실효성을 담보하겠다는 취지다.

최근 일본 농림수산성은 "자급률 변동 요인과 이에 따라 세워야 할 시책이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식량자급률 수치만으로 정책을 평가하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밀과 대두의 경우 자급률을 높이는 방안은 생산 확대다. 반면 자급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쌀의 경우 소비량 감소를 줄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옥수수와 쌀, 밀 등 다양한 곡물을 세계 시장에 공급하던 인도는 최근 수출량을 대폭 줄였다. 미국 농무부(USDA) 자료에 따르면 인도의 2023∼2024년도 옥수수 수출량이 2020∼2021년 대비 86%나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쌀과 밀이 각각 20%, 90% 감소했다. 인도의 이러한 변화는 기후변화로 인해 자국 곡물 생산의 어려움을 겪어서다.

기후변화협약(1992년)과 교토의정서(1997년), 파리협정(2015년) 등 기후변화의 위험을 막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지속됐으나, 결과는 냉정했다. 이상기후 현상에 따른 각종 농산물 작황 부진으로 먹거리 물가가 상승하는 '기후플레이션'이 두드러지고 있다. 올여름 커피와 초콜릿, 올리브유 가격 상승이 대표 사례다. 인스턴트 커피에 많이 들어가는 로부스타 가격은 올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최근 몇 년간 가뭄과 여러 기상 악화로 올리브 수확량이 줄면서 유럽 전역에선 올리브유 가격이 올랐다. 스페인에서만 지난 4년 동안 가격이 3배 가까이 올라 고품질 엑스트라 버진 오일 1ℓ가 5유로 미만에서 현재는 14유로까지 뛰었다. 이처럼 올리브유 가격이 상승하면서 스페인에서 올리브 도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가디언이 이달 초 보도했다.

기후변화 결과가 글로벌 식량안보 경쟁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독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와 유럽중앙은행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2035년까지 기온 상승으로 매년 전 세계 식품 가격이 0.9~3.2%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보고서를 통해 2050년까지 식량 생산량이 최대 30% 감소할 수 있으며, 식량 가격은 최대 50%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상기후로 인한 물가 상승은 통화정책으로는 한계가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통화정책과 기후의 연결고리'라는 보고서에서 부정적인 기후 환경에서는 통화정책만으로 물가 안정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IMF에 따르면 강수량이 적고 기온이 높은 부정적인 기후 환경에서는 기준금리를 1%포인트 올려도 향후 2년간 물가 상승률은 0.6%포인트 하락한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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