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에 뭐 읽지] 2조원어치 미술품, 돈 때문이 아니라 감상하려 훔쳤다
예술도둑
마이클 핀클 지음| 염지선 옮김| 생각의 힘|17800원|304쪽
이 도둑은, 유럽의 미술관을 돌며 2조원어치 미술품 300여점을 훔쳤지만 한 점도 팔지 않았다. 그의 목표는 돈이 아니었다. 향유(享有)였다. 그는 훔친 미술품을 자신의 다락방에 걸어놓고 하염없이 바라봤다. “나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예술품을 훔쳤다. 아름다움에 둘러싸여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
미국 저널리스트가 쓴 이 논픽션은 역사상 가장 많은 미술품을 훔친 것으로 알려진 ‘예술 도둑’ 스테판 브라이트비저를 추적한다. 프랑스인인 브라이트비저는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여자친구 앤 캐서린 클레이늘라우스와 함께 유럽 전역에서 200여 회에 걸쳐 박물관·미술품 소장품을 훔쳤다. 크라나흐, 브뤼헐, 부셰, 와토, 뒤러 등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들의 작품이 그의 손아귀로 들어왔다. 코르네이유 드 리옹의 1536년작 회화 ‘프랑스 왕녀 마들렌’이 대표적이다.
절도는 분명 범죄이고 그 중 공공의 소유라 할 수 있는 미술관 소장품을 개인의 즐거움을 위해 훔치는 일은 특히 죄질이 나쁘다 할 수 있겠지만,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브라이트비저의 내면에 동화되며 그를 이해하게 된다.
브라이트비저는 10대 때부터 우울불안증을 앓았다. 도벽은 그 병에 부수적으로 따라왔는데, 부모는 불쌍하다며 그를 방치했다. 마음 속 공허를 채우기 위해 브라이트비저는 아름다움을 탐했다. ‘잘 훔치기’ 위해 미술에 대한 각종 서적을 탐독하며 끊임없이 공부했다. 브라이트비저가 살던 집 다락방의 텅 빈 벽이 마음 속 허전함과 등치되고, 그 벽을 메우기 위한 몸부림이 아름다움을 훔치는 일로 이어지는 지점이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브라이트비저와 대면 및 서면 인터뷰를 하고, 그에 대한 언론 인터뷰 기사를 분석하는 등 10년의 세월을 기울여 이 책을 썼다.
결국 이 책이 짚고 있는 주제는 ‘미(美)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그리고 아름다움과 인간과의 관계다. 훔치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것을 만난 적이 있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물론, 그렇다고 해서 훔쳐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원제 The Art Thief: A True Story of Love, Crime, and a Dangerous Obs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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