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환자 약 배송 서비스 등장…“비대면진료 약 배송 금지 논리에 균열”
서울성모병원 길 건너의 ‘조달청사약국’ 앞에는 ‘집에서 편하게 약 받으세요’라는 팻말이 서 있다. 지난 7월부터 약 배송 전문 업체가 생기면서 약국에서 복약지도를 받은 뒤 택배로 약을 받아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약국장은 “어르신들이 200㎖ 용량의 ‘엔커버’ 등 경장영양제를 몇 박스씩 처방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전에는 환자가 약을 받은 뒤 직접 우체국에 들고 가서 택배를 부치는 등 번거로움이 많았지만, 이제는 몇 천 원이면 바로 집으로 운송해 줄 수 있게 됐다”면서 “이러한 방식은 비대면 진료에서도 충분히 활용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약 오배송과 변질 등 문제를 이유로 약사회가 비대면 진료를 위한 약 배송을 반대하고 있는 가운데, 대면 진료 환자를 위한 전문 약 배송 서비스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국내 약국 플랫폼 스타트업 디지털알엑스솔루션이 최근 선보인 약국 전용 배송서비스 ‘파미’는 환자가 대면 진료와 복약 지도를 받은 후, 약국에서 약을 환자가 원하는 곳까지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일반 택배 서비스가 아닌 의약품 운송을 위한 전용운송차량을 이용하기 때문에 다른 택배들과 섞이거나 오배송 문제가 없는 게 특징이다. 배송료는 3000원 수준으로 서울과 수도권은 당일배송이 가능하며 전국으로 순차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박정관 디지털알엑스솔루션 대표는 “현재 10곳 정도의 약국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서비스를 신청해 대기 중인 곳은 스무 곳이 넘는다”면서 “비대면 진료를 위한 약 배송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기 때문에 이때를 대비해 대면 진료를 위한 약 배송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대면환자 먼저 약 배송
디지털알엑스솔루션이 대면진료 환자에 한정돼 있지만 약 배송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보건복지부의 유권 해석 때문이다. 약 배송은 지난해 12월부터 비대면 진료 시범 사업 지침으로 인해 섬·벽지 환자나 장애인 등 의료취약계층, 희귀질환 환자로 제한돼 있다. 복지부는 여기에 더해 ‘대면 처방 후 환자에게 약국에서 의약품을 판매한 이후라면 택배 배송이 가능하다’는 해석을 내린 것이다. 디지털알엑스솔루션은 이달부터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로부터 위탁받아 희귀환자를 위한 의약품 배송을 시작하는 등 서비스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비대면 진료 업계에서는 전문 약 배송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약 배송 반대 논리에도 균열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약 배송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오배송 및 변질, 불법 조제약 배송, 약물 오남용 등이다. 전문 약 배송 업체가 자체 물류 시스템을 통해 배송하면 다른 택배들과 뒤섞일 일을 예방할 수 있고, 오배송 등으로 인한 책임도 물류업체가 보험 등으로 해소할 수 있다. 비대면 진료 업계 관계자는 “이미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을 통해 약 배송의 가능성을 증명했다”면서 “온도와 습도 등으로 변질 위험이 있는 약은 애초에 배송을 금지하고 비대면 복약지도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로 나가는 비대면 진료
국내에서 약 배송이 막힌 비대면 진료 업체들은 약 배송이 가능한 글로벌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 업체 닥터나우의 일본 법인 ‘닥터나우 재팬’은 지난 7월부터 야마토운수 등 현지 택배회사들과 함께 약배송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음식배달 플랫폼 우버이츠와 함께 30분 내 처방 약을 배송할 수 있는 서비스망 구축에 나서고 있다. 비대면 의료 플랫폼 ‘아이베브’도 미국 재외국민을 대상으로 연회비 99달러만 내면 횟수에 상관없이 한국 의사로부터 비대면 진료와 약 배송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약 배송이 포함된 비대면 진료 제도화가 시급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제22대 국회 입법·정책 가이드북’을 통해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의사의 52.4%가 ‘약 배송도 허용돼야 한다’라고 답했는데 약을 받으러 나갈 수 있다면 비대면 진료도 받을 필요가 없으므로 비대면 진료의 의미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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