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혁 넘나든' 5共 핵심, 남재희 전 장관 별세

최갑천 2024. 9. 1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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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화국 핵심 정치인였던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지난 15일 오전 8시10분께 서울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이후 1958년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진출해 조선일보 정치부장과 편집부국장, 서울신문 편집국장과 주필을 지냈다.

노동부 장관 당시에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현대중공업 파업 현장에 공권력 투입을 자제해야 한다는 건의를 하기도 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이며, 발인은 19일 오전 5시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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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연합통신(현 연합뉴스)과 단독 회견 당시의 고인.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5공화국 핵심 정치인였던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지난 15일 오전 8시10분께 서울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고인은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청주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그는 서울대 재학 당시 이승만(1875∼1965년) 대통령의 양아들 이강석군(1937∼1960년)의 서울대 법학과 부정 편입학을 규탄하는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이후 1958년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진출해 조선일보 정치부장과 편집부국장, 서울신문 편집국장과 주필을 지냈다. 관훈클럽 총무를 맡기도 했다.

1979년 민주공화당 후보로 서울 강서구에서 제10대 국회의원이 된 것을 시작으로 13대까지 강서구에서 4선을 역임했다. 1980년 민주정의당 창당에 참여해 정책위의장을 역임하는 등 전두환 정권의 핵심 정치인으로 활약했다. 김영삼 정부에선 노동부 장관을 지낸 바 있다. 고인은 보수 정권의 핵심 인물이지만 진보와의 교류에도 애를 썼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고인의 회고에 따르면 1990년 국회에서 임수경씨의 방북과 관련, "방북자 구속 문제는 범죄에 대한 처벌 차원이 아니라 트래픽 컨트롤 즉, 교통 정리적 차원"이라고 발언했다. 노동부 장관 당시에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현대중공업 파업 현장에 공권력 투입을 자제해야 한다는 건의를 하기도 했다.

유족은 부인 변문규씨와 4녀(남화숙 미국 워싱턴주립대 명예교수·남영숙·남관숙·남상숙)와 사위 예종영(전 가톨릭대 교수)·김동석씨(KDI 국제정치대학원 교수) 등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이며, 발인은 19일 오전 5시20분. 장지는 청주시 미원 선영.

cgapc@fnnews.com 최갑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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