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삭제 센터 첩첩산중…예산 깎이고 지우라면 "너희 누구?"
설치근거법 부재에 인력난까지
삭제 비용 전부 가해자 대신 내
접근 어려운 텔레그램으로 유통
"위장수사 확대해 검거·처벌해야"
[서울=뉴시스]권신혁 기자 = 최근 미성년자 딥페이크(기존 사진이나 영상을 다른 사진이나 영상에 겹쳐서 실제처럼 만들어 내는 인공지능 기반 이미지합성기술) 성범죄 피해가 속출하며 범정부적 대응이 한창이다. 이중 여성가족부는 피해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정작 피해자 영상물 삭제 관련 예산은 삭감되거나 제자리 걸음 중이다.
또 법제도의 공백도 메우지 못해 주무부처로서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여가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따르면, 진흥원에 설치된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의 올해 1월부터 지난달 25일까지 딥페이크 삭제 지원 건수는 502건이다. 지난해 298건에 비해 68.4% 증가한 것이다. 특히 미성년 피해자의 경우 올해 238건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디성센터가 삭제지원을 한 딥페이크 영상물은 총 5685건이다.
딥페이크 범죄 관련 예산 오히려 줄어
여성인권진흥원에 따르면 디성센터에 편성된 내년도 예산은 32억6900만원으로 올해 34억7500만원 대비 6.3%(2억600만원) 줄었다. 디성센터는 딥페이크 영상을 삭제하고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피해자 보호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와 관련해 여가부는 센터 보안을 위한 서버 이중화 작업이 완료돼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디성센터의 애로사항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디성센터는 딥페이크, 불법촬영물 등을 감시하는 자체 시스템을 고도화하기 위해 올해 여가부를 통해 기재부에 예산을 30억원 가량 증액해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현재 센터는 확보한 불법영상물의 URL 수천개를 모두 복사해 온라인 사업자에게 이메일 등의 창구로 일일이 전송해 삭제를 요청하고 있다. 또 유포된 딥페이크 영상 및 사진에서 피해자의 얼굴을 인식하고 매칭하는 기술은 아직 초보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상황에도 딥페이크 삭제를 지원하는 센터에겐 약 2억원이 줄어든 예산만이 남았다.
아울러 김남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여가부로부터 제출받은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센터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예산은 제자리 걸음 중이다.
워크숍, 전문교육 등을 포함한 내년도 '디성센터 전문성 강화' 예산은 1억8500만원으로 올해와 동일하게 편성됐다. 딥페이크 등 여성폭력에 초기 대응하는 1366 센터도 3000만원으로 올해와 같았다. 이 밖에도 여가부의 디지털성범죄 피해 대응 예산은 8억4100만원으로 3억8700만원 줄었다.
이 같이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도 여가부는 삭제지원에 드는 비용 전부를 가해자 대신 세금을 들여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여성가족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디성센터 설립연도인 2018년 4월30일부터 지난해 12월31일까지 구상권 청구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설치근거법 없고 인력도 부족한 디성센터
현행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엔 디성센터가 삭제를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정작 센터의 설치근거를 규정한 조항은 없다. 법적 권한이 미미하다는 의미다.
이 같은 공백은 딥페이크 사진 혹은 영상이 해외에 서버를 둔 플랫폼에서 유통될 때 문제가 된다. 최근 적발된 '겹지방(공통 지인의 사진을 합성해 제작한 음란물을 공유하는 방)'의 경우, 그 소굴이 해외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으로 지목됐다.
박성혜 센터 삭제지원팀장은 이와 관련해 "해외 사이트 등에 삭제를 요청하면 '너희가 누군데'라며 불응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에 여가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국제협력 부분을 신설했으나 법적 권한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매년 제기되는 센터의 인력난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올해 기준 삭제지원팀의 인원은 15명~20명이다. 지난해 처리한 삭제지원건수가 24만건인 점을 고려하면 직원 1명이 1만2000건~1만6000건을 맡은 셈이다.
여가부는 지난 9일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내년 정규직 2명이 증원돼 총 41명으로 운영된다"고 밝혔으나, 삭제 지원 업무를 맡을 지는 미지수다. 관계자는 "새 인력의 업무 등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정규직 인력 증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텔레그램 속 딥페이크…"위장수사 확대해야"
이에 국회입법조사처는 기존 오프라인 기반 범죄에 대응하는 방식과 다른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봤다.
특히 조사처는 '딥페이크 성범죄 수사 처벌 개선방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위장수사'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행법상 경찰은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신분을 위장해 텔레그램 등의 보안메신저에서 피의자를 검거할 수 있다. 실제로 해당 수사법은 검거의 효과적인 수단으로 평가 받고 있다.
다만 성인 대상 디지털 성범죄는 배제된다. 이에 조사처는 "현행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의 수사특례를 성인 대상 디지털 성범죄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딥페이크 성범죄와 관련해 여성학 전문가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미성년자 피해자 및 가해자에 중점을 뒀다.
허 조사관은 "특히 10대 가해자에 대해서 전 부처가 강경한 기조로 임해야 한다"며 "보호 처분에 그친 소년범들에 실질적인 제재를 하도록 처벌을 강화할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소년범 관련 개정이 당장 힘들다면 학적부에 기록을 남겨 입시에 불리하게 하는 등 미래에 지장을 주는 수준의 조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0대 피해자와 관련해서는 "여가부가 예산과 인력을 충분히 확보해야 하는 문제"라며 "여가부는 교육부와 긴밀히 협력해 학생들에게 여가부의 피해자 상담, 삭제 지원 등의 업무를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innovati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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