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더 일하라니"··· 中 '정년 연장'에 청년·노인 모두 반발
저출산고령화 따른 노동력·연금 부족 등 해법
'한 자녀 정책'으로 인구 위기 가속화한 정부에
청년층과 고령층 모두 반발.. 내부 갈등도 심화
중국 정부가 내년부터 세계 최저 수준인 법정 은퇴 연령을 점진적으로 연장하기로 13일 결정했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의 정년 연장안에 따르면 남성 근로자의 법정 퇴직 연령은 내년 1월부터 15년에 걸쳐 기존 60세에서 63세로, 여성 근로자는 기존 50세 및 55세에서 각각 55세 및 58세로 늘어난다. 중국 정부는 급격하게 고령화하고 있는 사회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하지만 하지만 가뜩이나 취업이 어려운 젊은 층은 물론 정년 연장에 따라 연금 수령이 늦춰지게 된 고령자 역시 정부의 결정에 반발하는 모습이다.
신화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에서 정년은 약 70년간 남성 60세, 여성 사무직 근로자 55세, 블루칼라 여성은 50세로 각각 유지돼 왔다. OECD 38개국의 평균 은퇴 연령이 남성 64세, 여성 63세 정도인것과 비교해 세계적으로도 낮은 수준이다. 최근 급격한 저출산 및 노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과 연금 재정 악화를 고민해온 중국 정부가 정년 연장 카드를 빼든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평가다. 이미 7월 열린 5년 주기의 공산당 당대회인 3중전회(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에서 은퇴 연령 변경이 예고됐다. 중국은 2035년께 60세 이상 노인인구가 4억 명을 넘어 전체 인구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등 심각한 노령화 단계에 진입할 전망이다.
급격한 인구 구조의 전환으로 경제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을 반전하기 위한 카드였다는 해석도 나온다. 최근 중국은 부동산 침체 장기화 및 고용 시장 악화에 따라 경제 성장과 내수 소비가 둔화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또 지난해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200만 명 가량 앞지르면서 2년 연속 인구가 줄고 총 인구가 14억 명까지 감소했다. 과거 누렸던 ‘인구 보너스(생산 가능인구 비율이 늘어나는 반면 부양인구는 비교적 덜 늘어나면서 경제 성장이 촉진되는 현상)’에도 기대할 수 없는 셈이다. 중국 보건 및 노인케어그룹 연구소의 장진 소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은퇴 후 지출을 급격히 줄이는 경향이 있다”며 “은퇴를 늦추면 가치를 창출하고 소비를 촉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년 연장은 가뜩이나 부족한 일자리 탓에 치열한 취업 경쟁을 벌이고 있는 젊은 층의 급격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중국은 16~24세 청년 실업률이 지난해 6월 21.3%까지 치솟자 통계 발표를 중단할 정도로 청년 실업난이 심각하다. 최근 다시 실업률을 공개했지만 7월 청년실업률은 17.1%에 달한다. 또 중국의 젊은이들은 노년층을 부양하기 위해 더 오래 일해야 하고, 정작 자신들이 노년이 될 때는 연금이 고갈될 것이라며 불안해 하고 있다. 중국 사회과학원은 중국의 연금 기금이 2035년까지 고갈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고령 근로자들도 불만을 표출했다. 52세 공무원인 첸씨는 FT에 “(이 조치의) 결론은 내 은퇴 시간을 빼앗고 내 주머니에서 돈을 가져가겠다는 것”이라며 “2년 반의 연금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중국은 고용보험 등 사회 안전망이 부족하고 고용주의 연령 차별이 일반화돼 있어 많은 블루칼라(생산직) 근로자들은 일자리도 잃고, 연금도 잃게 되는 건 아닐 지를 걱정하고 있다.
중국 정부도 정년 연장에 대한 광범위한 반대 여론을 알고 있는 듯 보인다. 앞서도 한 차례 정년 연장을 공언했다가 여론 반발에 한번 물러선 적도 있다. 정년이 3년 연장된 점도 기존의 5년보다는 줄어든 수치다. 또 정부는 이번 조치는 강제가 아니라 선택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는데, 일례로 연금 불입기간은 2030년까지 매년 6개월씩 늘어나 현행 15년에서 20년으로 늘어날 전망이지만, 이미 최소 납입기간에 도달한 가입자는 조기 퇴직을 선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연령 차별을 없애고 생산직 근로자에게는 조기 퇴직을 제공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럼에도 중국의 주요 소셜미디어인 웨이보에는 불만의 목소리가 들끓는 중이다. 실제 “앞으로 10년 안에 80세까지 은퇴를 연기하는 법안이 또 나올 것”, “60세인 내가 젊은이들과 일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하나”, “노인들은 은퇴할 수없고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을 수 없다”와 같은 게시글들이 많은 추천을 받았다.
2016년까지 아이 한 명만 낳으라는 ‘한 자녀 정책’을 고수해 인구 통계학적 위기를 심화시켰다고 비판받는 중국 정부의 손바닥 뒤집듯 달라진 정책 기조에 대한 반발도 나온다. 한 웨이보 사용자는 “내가 태어났을 때 사람들은 아이가 너무 많다고 했지만 내가 출산할 때는 너무 적다고 했다. 내가 일하고 싶다고 할 때 너무 늙었다던 사람들이 이제는 은퇴를 하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말한다”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경제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의 조치가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점에 대체로 의견을 모았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줄리언 에반스-프리처드는 “내년에만 중국에서 약 1100만 명의 근로자가 은퇴 기준에 도달할 것”이라며 “이번 개편이 단기적으로 근로자 수를 늘리고 연금 시스템을 보다 지속가능한 기반 위에 올려놓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전 세계은행 중국 담당 국장인 버트 호프먼 역시 “정년 연장이 중국의 경제 생산성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특히 향후 15년간 고학력자들의 은퇴가 예정돼 있는데 이들이 생산성을 계속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일각에서는 너무 늦었다는 지적도 있다. 블룸버그의 경제학자인 에릭 줘는 “장기 성장의 주요 걸림돌인 노동 연령 인구 감소에 대응하는 큰 진전”이라면서도 “은퇴 연령의 증가를 고려한 장기 전망에 따르면 2050년까지 중국의 성장률은 약 1%로 낮아질 것이며 흐름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가 여론 반발을 의식하며 ‘점진적 개편안’을 내놨지만 좀 더 빠르고 과감한 시행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위스콘신-메디슨 대학의 연구원인 리 푸센은 “이런 속도로는 결국 미래 세대에 정치적 시한 폭탄을 던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짚었다.
김경미 기자 kmkim@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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