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사치다" 골프장 개소세는 합헌···국민 절반 보유한 자동차는?
"사치성 소비 희석됐다 보기 어려워"
6월말 기준 車 등록대수 2613만대
국민 2명 중 1명 보유한 대중 소비재
47년째 보석과 같은 사치품으로 분류
작년 국세수입 2.6%···"폐지 쉽지 않아"
“골프장 이용료나 회원권 가격 등 비용과 이용 접근성, 일반국민의 인측 측면에서 대중적인 소비 행위로 자리잡았다고 보기 어렵다”
지난달 29일 헌법재판소가 골프장에 입장 때 부과되는 개별소비세에 대해 재판관 6대3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리며 한 말이다.
사연은 이렇다. 현재 골프장은 개별소비세 1조3항4호에 따라 1회 입장에 1명당 1만2000원의 개별소비세를 부과하고 있다. 경기 가평군에서 회원제 골프장을 운영하는 A법인은 2018년 4월 관할 세무서인 남양주세무서에 1분기 골프장 입장 행위에 관한 개별소비세 등 약 9300만원을 냈다. A법인은 같은해 11월 남양주세무서에 개별소비세 근거 법률 조항이 위헌이라며 경정청구를 했지만 거부당했다. 경정청구란 기존에 세금을 더 냈거나 잘못 납부한 경우 이를 돌려달라고 세정 당국에 요구하는 제도다. A사는 남양주세무서의 거부 처분에 관한 취소 청구 소송을 내고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했지만 기각당하자 헌재에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남양주세무서의 손을 들어줬다. 헌재는 "골프 인구가 늘어나고 골프장이 증설됐다"면서도 "여전히 비용과 이용 접근성, 일반 국민 인식 측면에서 골프장 이용 행위가 사치성 소비로서의 성격이 완전히 희석됐다거나 대중적 소비 행위로 자리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13년 전에도 같은 내용의 옛 개별소비세법 조항에 대해 "사치성 소비의 담세력에 상응하는 조세 부과를 통해 과세의 형평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며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헌재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선례와 달리 판단해야 할 사정 변경이나 필요성은 인정되지 않는다'며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여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으며, 조세평등주의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골프는 여전히 사치’라는 헌재의 판결을 계기로 다른 영역의 사치세가 주목받고 있다. 47년째 ‘사치품’이란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동차(승용차) 개소세다. 현재 배기량이 1000㏄를 넘는 차량엔 5%의 개소세가 붇는다. 출고 가격이 4000만원 이상인 국산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경우 200만원 안팎의 개소세를 내야한다.
자동차에 붙은 개소세는 시대착오적인 세제라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올 6월 말 기준 자동차 누적 등록 대수는 2613만대를 넘었다. 국민 2명 중 1명은 자동차를 보유한 셈이다. 주변에 자동차를 2대 이상 보유한 가정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개소세가 처음 만들어진 1997년과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당시엔 국민 130명 당 자동차 1대를 보유했다. 자동차 구입을 사치성 소비 행위로 볼만했다. 하지만 이후 경제성장에 따른 국민소득 증가로 같은 사치재였던 TV·냉장고 등이 개소세 대상에서 빠졌다. 자동차만 47년째 개소세의 굴레에 갇혀 있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우리나라처럼 자동차 보급률이 높은 국가들은 개소세 과세 대상에서 자동차를 제외하고 있다.
업계에선 자동차 개소세 부과에 대해 완성차 업계나 소비자가 헌법소원을 내면 합헌 불일치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본다. 브랜드와 차종에 따라 배기량과 가격이 천차만별인 자동차에 대해 47년째 사치세를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것은 과잉금칙원칙에 반할 수 있어서다. 게다가 헌재가 골프장의 개별소비세 부과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근거 중 하나인 “대중적 소비 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자동차엔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기재부가 매년 세법개정안 발표를 앞두고 업계와 국민들로부터 받은 세재개선 건의에 자동차개소세 폐지가 단골 메뉴로 등장한지도 오래다.
정부 입장에선 자동차 개소세를 없애는 것이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개소세수는 8조8000억원으로 총 국세수입(344조1000억원)의 2.6%에 달한다. 자동차 보급대수가 늘어나면서 자동차 개소세는 안정적으로 세금이 걷히는 세목을 자리잡았다. 업계에선 배기량에 따라 환경세를 부과하는 방향으로 개소세를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매년 세수 결손에 시달리는 정부가 자동차 개소세를 먼저 손질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조사에서 우리나라는 67개국 중 20위로 지난해보다 8단계 뛰어올랐지만 조세 경쟁력은 26위에서 8단계 떨어졌다”며 “경쟁력을 떨어 뜨리고 있는 자동차 개소세와 같은 시대 착오적인 세제를 속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민우 기자 ingaghi@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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