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 주도 지방소멸대책, 이득 챙기는 집단은 따로 있다
지방소멸 핵심은 청년 유출…토호 배불린 대책 되레 ‘독’
[주간경향] “그나마 남성은 제조업 일자리라도 있어서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데, 여성은 딱히 없다. 코로나19 요인도 있는 것 같다. 코로나19 시기 불황기에 청년층의 이동속도가 확 증가했다. 키워드는 불안이다. 청년들 스스로 자기 전망에 대한 냉정한 판단으로 떠나는 선택을 한 것이다.”
지난 9월 4일 충북 음성에 자리 잡은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만난 이상호 연구위원의 말이다.
이상호 위원 등이 지난해 낸 ‘지방소멸위험지역의 최근 현황과 특징’ 리포트를 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의 20~39세 ‘청년인구 순유입률’은 대부분 ‘마이너스’다. 소멸위험지역은 -12.7%이고, 고위험지역은 -27.3%에 달한다. 해당지역 청년인구 4분의 1 이상이 떠났다는 의미다. 소멸위험지역이 아닌 ‘정상지역’의 순유입률은 12.3%다.
한국은 이민을 통한 인구 유입이 쉬운 나라가 아니다.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다. ‘정상지역’의 순유입률 12.3%를 기록한 인구는 거의 모두 소멸위험지역에서 이동한 것이다.
리포트를 보다 보면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소멸위험지역 중 4곳에서는 지난 5년 사이 청년인구 순유입률이 플러스를 기록했다. 경북 예천군은 22.8%를 기록했고, 전남 나주시는 8.0%다. 경북 예천에 청년인구 유입이 급증한 것은 2016년에 경북도청이 이전하면서 안동시 풍천면, 예천군 호명읍 일대에 ‘경북도청이전신도시’가 지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남 나주도 빛가람동에 자리 잡은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의 영향으로 보인다.
반면 순유입률이 -42.0%, -40.1%를 기록한 곳도 있다. 경남 하동군과 충북 영동군이다.
“5년 새 청년인구 40% 증발” 미스터리
사실 5년간 청년인구의 40%가 사라졌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청년 10명 중 4명이 지난 5년 사이에 지역을 떠났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지역 청년 네트워크가 사실상 붕괴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왜일까. 의외로 언론 보도나 연구는 없었다.
하동군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지방소멸과 인구절벽, 저출생 문제가 쟁점이 된 이래 특히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발표된 시·군·구는 인구정책을 핵심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인구정책과 관련 하동군은 2022년 ‘국제 슬로시티 우수사례’로 선정됐다는 보도자료가 눈에 띈다. 지난해 9월에 출범한 인구감소지역 89개 지자체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에서 하동군수가 부회장으로 선출됐다는 보도도 나온다. 하동군의 올해 인구감소지역 대응시행계획안을 보면 4개 전략 27개 사업에 총사업비 1284억원이 편성돼 있다.
영동군은 군청 홈페이지에 ‘인구이동보고서’와 영동군 인구증가정책이 별도 카테고리로 등록돼 있다. 그러나 ‘지난 5년간 청년인구의 40%가 급감한 이유가 뭔지’는 찾을 수 없었다. 각 군의 인구정책담당관과 통화했다.
“42%가 빠져나갔다고 하는데 전국적으로 인구소멸지역은 다 비슷한 상황 아닐까. 특히 군 지역은 더 그럴 것이다. 관내 대학교도 없고 큰 기업도 없으니 아무래도 인근 진주시나 창원시로 많이 유출되는 것으로 보인다.”(하동군 인구정책담당관)
“우리가 41%로 사실상 꼴찌가 된 이유가 뭐냐는 문의인 것 같다. 두 지역만 거론했지만 다른 지역도 별반 차이 없는 도토리 키재기 상황일 것으로 본다. 그만큼 청년인구 유출이 심각하다는 뜻인데 누가 꼴찌를 했는지는 큰 의미가 없지 않을까.”(영동군 인구정책담당관)
의외로 군 인구정책담당관도 해당 통계발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해당 리포트를 찾아 읽은 뒤 다시 기자와 통화한 영동군 관계자의 말이다.
“…지역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하지 않고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라고 본다. 현재 영동에는 용산면에 산업단지가 있는데 황간 물류단지에 일반산업단지도 추가로 조성할 예정이다. 2024년도 지방소멸 대응 기금은 스마트팜 쪽으로 하고 있다. 대학교는 올해, 고등학교는 내년에 스마트팜학과가 생긴다. 특성화고와 대학 인프라를 활용해 스마트팜 농업 쪽으로 청년인구 유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두 지역 인구정책담당관이 내놓은 이유와 대책은 일반론이다. 이 설명만으로는 왜 청년인구의 40%가 지난 5년간 급격하게 지역을 떠났는지 설명할 수 없다. 정확한 진단이 나와야 대응책 수립도 가능하다. 영동군 인구정책담당관의 항변이다.
“안 될 거로 생각하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지 않나. 일자리 산출에서 산단을 만드는 것이 소규모의 사업보다는 잘만 운영하면 유입 효과가 크지 않나. 기자님이 말씀하신 것을 짚고 가는 것은 맞지만 다 연결된 문제이니 눈에 잘 보이기도 어렵고 한 가지만 집중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자기 지역이 소멸하기 바라는 지역은 없다.”
‘지방소멸 팔이’가 지방 망친다?
2016년 1월 주간경향은 저출생 문제가 일으키는 인구절벽 후 사회변화 과정에서 마스다 히로야 전 일본 총무상이 주도한 민간싱크탱크 일본창성회의가 발표한 <지방소멸>을 인용했다.
출생률 저하로 인한 인구 감소는 전 지역에서 고루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인구이동을 동반한다. 지방에서 대도시로 인구가 빠져나가 ‘극점사회’가 만들어진다. 수도권·대도시의 인구는 일시적으로 증가하지만 지방기초자치단체 시스템은 붕괴한다.
지방소멸이라는 개념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다. 박진도 충북대 명예교수는 올해 펴낸 책 <강요된 소멸>에서 인구가 감소한다고 지방자치단체가 소멸할 이유는 없고, 설령 행정통합으로 지자체가 소멸한다고 하더라도 지방이 소멸할 이유는 없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지난 9월 10일 기자와 통화에서 “사람이 살고 땅이 있는 것이다. 설령 사람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고 해서 땅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지방이라는 것은 수도권 이외의 지역을 말하는 건데 일본에 적용한다면 도쿄만 남고 나머지는 없어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지방소멸 팔이’라고 말했다.
“‘팔이들’은 누구인가. 첫째로는 국회의원 등 정치인이다. 자기 지역구 돈을 더 끌어오는 것이 목표다. ‘우리 동네 지역소멸하는데 돈을 더 줘’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언론사들, 단체장들, 학자들도 숟가락을 얹고 재미를 보는 것이다.”
그는 지방예산 확보 목적으로 지방소멸 대응이 오히려 지방을 망친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지방에 예산을 더 주세요’라는 말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예산이 들어오면 지역을 망친다. 난개발로 지역을 오히려 망가뜨렸다. 돈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악화한다. 돈이 들어가는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주민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지방소멸 대응 기금 같은 돈의 집행처를 보면 80~90%가 하드웨어 산업이다. 100억~200억원씩 들여 건물 짓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전국에 비일비재하다. 산업단지가 들어와 환경은 파괴하고 이런 일이 벌어지니 지방소멸 팔아서 재미 보는 사람은 따로 있고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려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핵심은 중앙정부 주도의 지역 살리기는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이미 어려워졌다.”
2003년부터 지방분권 운동을 벌여온 이형용 거버넌스센터 이사장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지방소멸 대응 기금과 유사한 형태의 균형 발전 예산집행은 김영삼 정부 때부터 시작해 꾸준히 이어져 왔다.
“이름은 달랐지만 김대중 정부나 FTA 체결 이후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농촌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120조원 정도의 예산이 투여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제 다 합치면 200조원 이상이 이미 들어갔지만 실효성이 없다. 지금 지방소멸 대응 기금은 10년간 10조원, 1년간 1조원의 예산을 투입한다는 계획인데 그 전과 대비해보면 큰 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은 중앙행정기관이 나눠준다는 것이다. 돈 쓰는 것을 보면 실제로 힘센 사람이 가져가는 경향이 있다. 힘센 사람이 가져가 주로 눈에 보이는 사업 위주다.”
그는 그나마 정책이 효과를 가지려면 ‘지역사회 거버넌스’, 즉 사업의 파트너가 돼야 할 민간의 역량이 성숙해야 하는데 문제는 중앙이 전체를 설계하고 지방에 내리 먹이는 식이 되면서 지역혁신 기반조차 사라지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방소멸 논의에서 빠진 지역사회지배구조
2016년 주간경향이 인구절벽·지방소멸이 일으킬 한국사회 변화 문제를 제기했을 때 지방소멸은 막 나온 개념이라 생소했다. 8년이 지난 지금은 상식이 됐다.
지금 시점에서 당시 기사를 읽어보면 그 후 한국사회의 지방소멸 논의에서 빠진 것이 있다.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 문제다. 청년인구가 빠져나간 지방소멸 고위험 지역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문제 제기다. ‘장로(長老)지배정’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이 제론토크라시 문제는 지역 청년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새로 유입된 청년이나 여성 등 사회적 약자가 채우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토호나 지역 기득권 세력이 자원과 기회를 독점하지 않겠냐는 우려다.
실제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지역사회에서 과두세력의 자원독점 현상을 지목한 일본 사회학자 오구라 에이지의 연구에 빗대 이원재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당시 주간경향에 “지방소멸 이후의 지역사회의 모습은 한국형 제론토크라시가 출현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8년이 지난 지금 그는 어떻게 말할까.
“예전부터 지방자치를 강화하는 것이 지방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를 강화하고 기득권을 강화하지 않겠냐는 문제의식이 있었는데 그때보다 그 경향은 더욱 뚜렷해진 것 같다.”
이 문제의식을 담은 책 <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를 펴내기도 했던 그는 이후 정당 창당, 경기도 정책보좌관 등 다양한 현장경험을 쌓았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지역에서 강의하거나 지역 공무원들을 만나면 조금 묘하다고 생각했다. 지자체 공무원들은 지역에서 안정된 직장을 가진 분들인데 지역예산을 매개로 시민사회 제어 권한도 생긴 것 같다. 또 하나 점점 더 많이 그 지역에 안 산다. 팀장급이나 과장급의 경우 인근 대도시에 가서 사는 사람이 많다. 예컨대 전남 장성이라면 광주광역시에서 출퇴근하고 강원도면 원주에 살면서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씩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난다. 제론토크라시가 지역의 주인이라면 그 지역을 살려내야 한다. 지역이 망하면 자기도 망하니까. 지금은 공무원이 주인이나 마찬가지인데 주인의식이 없다. 자기도 거기에 안 사니.”
지난해 12월 수도권 초집중과 지방몰락을 다룬 책 <대한민국 소멸보고서>를 낸 김기홍 부산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지방에서는 중앙에 있는 지방소멸예산담당관을 초청해 예산을 많이 따내기 위한 특강 연수를 받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한다.
“역설적으로 지방소멸대책이 중앙과 지방의 토착 권력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 도시라고 예외가 아니다. 예컨대 부산 도시재생사업의 본래 취지는 낙후된 원도심을 개발해서 활성화하는 구조를 만든다는 것이지만 추진되는 과정이나 결과를 보면 중앙과 지방의 토호에게 그 결실은 다 가고 원주민은 쫓겨나는 양상을 보인다.”
그는 저출생 문제와 지방소멸이 동전의 양면처럼 쌍생아(雙生兒)적 관계이며 저출생 문제의 해법도 지방소멸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한 저출생 문제의 가장 큰 문제는 역설적으로 지방소멸 문제다. 예컨대 저출생 문제를 없애기 위해 대한민국의 모든 성인이 결혼해 애를 셋씩 낳으면 지방소멸이 해결될까. 아무리 인구가 늘어나더라도 지금과 같은 사회정치경제 구조·문화 시스템에서는 그 늘어난 인구가 지방으로 안 가고 서울·수도권으로 다 간다. 인구소멸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지방소멸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내 입장이다.”
합계출산율 늘면 지방소멸 극복될까
이상호 연구위원의 리포트를 보면 특이한 점이 하나 더 있다. 소멸위험이 큰 지역일수록 합계출산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위원의 말이다.
“소멸고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는 전남 해남 지역이 합계출산율이 높게 나온다고 지방소멸에서 벗어날 반등이 일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해남의 합계출산율이 높은 것은 역인과관계 때문이다. 소멸위험지역에 누가 남아 있는가. 자녀를 거기서 키우고 낳을 수 있는 직장을 가진 최소한의 그런 선택받은 사람만 남아 있는 것이다. 당연히 그런 분만 남아 있으니 합계출산율은 높게 나오는 것이다.”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 등의 저서를 통해 지방소멸 문제를 다뤄온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지자체별로 지방소멸지수와 행복지수를 비교한 그래프를 놓고 보면 완전히 정반대의 결과를 보인다고 말한다. 마 교수의 말이다.
“외국의 연구자들에게 도시행복역설(urban happiness paradox)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문제인데 행복한 지역에서 더 불행한 지역으로 청년들이 이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한국은 이게 너무 빠르고 급속하게 일어나는 것이 문제다. 이주하는 청년으로서는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떠나면 불안하지만 그만큼 지역사회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지방소멸 대응 기금 등 소멸 대응 정책들이 인프라나 하드웨어에 집중되면서 엇나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 “지역의 역량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기금 등 대책이 사용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추진과정에서 엄청난 실패가 나올 수도 있는데 실패도 지자체에는 필요한 것이다. 중앙정부 주도의 공모사업과는 결이 달라야 한다. 중앙정부는 하나로 성공사례가 발생하면 다른 지자에와 공유·전파하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해야 한다.”
지방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 다른 정책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편 기사 마감후 하동군 측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청년예산은 0원이었는데 반해 민선 8기 출범 직후 “청년이 원하는 대로”라는 정책방향을 세워 청년 설문 조사에 따라 청년 주거비·청년통장·유급 청년마을 협력가 등 청년을 직접 타깃으로 한 정책에 예산을 사용하는 등 청년들의 필요성을 반영해 꼭 필요한 곳에 집중하고 있다”라며 “그 결과 2020년 988명에 달하던 청년유출 인구가 2023년엔 325명으로 줄어드는 등 상당한 호전을 보이고 있다”고 밝혀왔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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