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밀리면 끝난다”...정치권부터 산은까지 조단위로 자금 투입하는 이 전쟁 뭐길래 [위클리 반도체]
[성승훈 기자의 위클리반도체 - 9월 둘째주]
한국이 반도체 패권 전쟁에서 반격의 서막을 열고 있습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반도체 기업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이같은 내용이 담긴 반도체지원특별법을 당론으로 추진합니다. 더불어민주당도 우회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는 법안을 검토 중입니다.
은행들도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지난 10일에는 KDB산업은행이 국내 반도체기업 22곳에 1조1000억원대 대출을 내줬습니다. 대출 대상에는 SK하이닉스도 포함됐다고 하는데요. SK하이닉스 대출 금액은 수천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주 위클리반도체에선 한국의 반도체 산업 진흥책을 톺아보겠습니다.
핵심은 직접 보조금이죠. 고동진·박수영·송석준 의원안에는 모두 정부의 보조금 지급 조항이 명시돼 있습니다. 다만 윤석열정부에선 직접 보조금 지급에는 난색을 표했던 바 있어요. 건전 재정을 추구하고 있는 데다 다른 산업과 형평성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국민의힘은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다”는 임의 규정을 법안에 담을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을 도울 길을 열어두면서도 정부 부담을 줄여주는 겁니다. 국민의힘에선 직접 보조금을 통해 미국·일본 등과 동등한 경쟁을 펼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도 만들어질 전망입니다. 대통령 직속 반도체산업특별위원회를 설치하며 산업통상자원부에 반도체산업본부를 설치하도록 했기 때문이죠. 아울러 국민의힘은 세액공제 이월공제 기간을 10년에서 30년으로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도 반도체 산업 진흥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경제·민생을 책임지는 정당이라는 면모를 확실히 해서 재집권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겁니다. 최근에는 김태년 민주당 의원이 우회적으로 반도체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 카드를 꺼내 들었죠.
법안 골자는 세액공제권 거래 시장을 조성하도록 돕겠다는 겁니다. 미국 기업들이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보조금을 거래하듯이 한국 반도체 기업들도 세액공제권을 미리 사고팔아 현금을 마련할 길을 터주겠다는 법안이죠.
직접 보조금 지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세액공제권 거래를 통해 현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반도체기업이 투자와 연구개발(R&D)을 크게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죠. 앞서 김태년 의원은 반도체 종합투자세액·연구개발 세액공제율을 현행보다 10%포인트 높이는 K칩스법도 발의한 바 있습니다.
정부는 “지원 의지가 약한 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실제 발언을 살펴보면 보조금 지급에 대해선 적극적이진 않은 걸로 보입니다. 지난 11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보조금이든 세제 지원이든 검토한다”면서도“반도체 산업이 갖고 있는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재정 보조금이나 직접 보조금을 받아서 생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기 때문이죠.
한발 더 나아가 KDB산업은행은 수권자본금 증액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현행 30조원에서 50조원으로 수권자본금을 늘려서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신사업 대출·보증 여력을 키우겠다는 생각입니다. 수권자본금이 50조원으로 늘어나면 최대 200조원까지 대출·보증 여력이 생길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KDB산업은행 자본금은 26조원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0년간 수권자본금이 30조원에 묶여있었는데요. 정부가 반도체 보조금 지급에 미온적인 상황인 만큼 국책은행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었습니다. 이에 산은법 개정을 추진하고 나선거죠.
야당에서도 자본금 증액에 대해선 긍정적입니다. 민주당판 K칩스법을 주도하고 있는 김태년 의원이 다시 나섰어요. 김 의원은 지난 7월에 KDB산업은행 수권자본금을 30조원에서 40조원으로 10조원 늘리는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습니다.
밀러 교수는 매일경제가 주최한 제25회 세계지식포럼에서 “최첨단 반도체에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적 미래도 담보된다는 것을 알게 된 정부들이 패권 전투에 나서고 있다”며 “정보통신(IT)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간 경쟁이 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어요.
경제·산업이라면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정치적 미래가 담보된다고 하니 흥미롭습니다. 밀러 교수 발언을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미래 군사력은 함대가 몇 개인지와 같은 전통적 기준에 끝나지 않고 AI 기반 군사력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첨단 반도체·AI가 군사력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죠.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증명됐듯이 AI 자율주행이 군사 체계에 결합되면 실제 작전에도 미칠 영향력이 막대할 것이라 봤습니다. 그리고 AI 자율주행 밑바탕에는 첨단 반도체가 있죠.
때마침 미국 상무부는 대중(對中) 수출통제 조치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는 미국과 동맹국을 위해 개발·생산돼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죠. 한국에 계속 압박을 가하고 있는 셈입니다. 반도체업계에선 “중국 수출 물량은 거의 없다”면서 영향은 적다지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죠.
단순히 정부·당국이 보조금을 풀고, 금융·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반도체 전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미국·중국 틈에 있는 한국으로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한 순간이죠. 지난주에 전해드렸던 일본 반도체 산업의 몰락에서 반면교사를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일본 기업이 경쟁력 약화뿐 아니라 미·일 플라자합의와 반도체협정 등 정치적 이슈로 위기를 겪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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