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전화 돌려서라도 병원 찾아야죠" 중앙응급상황실 가보니
예초기에 부상, 고라니에 교통사고…"추석연휴 전원요청, 전주 주말보다 늘어"
광역상황실 문열며 '콘트롤타워' 기능 강화 방침이지만…"당직의 구하기 어려워"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환자가 어린이일 때는 정말 가슴이 아파요. 그럴 땐 '전국 모든 병원에 전화를 해서라도 찾겠다'라는 마음이 들죠."
15일 오후 2시께. 기자가 찾은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중앙응급의료상황실로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전북의 한 병원으로 오토바이 사고 환자가 실려 왔으나 응급 처치가 불가한 상황이었던 것.
"심장 쪽부터 간 부근까지 대동맥 벽이 죽 찢어져서 즉시 응급수술, 중환자실 입원이 필요해요. 여기는 작은 병원이라 흉부외과가 안 되는데, 전원할 병원이 없어요."
가장 먼저 전화를 받은 상황요원이 침착하게 물었다. "필요한 처치는요?" "흉부외과에 신경외과, 정형외과 응급수술까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오토바이에 탑승했다가 달려오던 차에 부딪힌 환자는 가장 큰 외상인 대동맥박리 외에도 언제 대량 출혈을 일으킬지 모르는 경막하 뇌출혈이 있었고, 갈비뼈가 다 부러진 데다 요추 손상도 입은 상황이었다. 당장 권역외상센터로 이송이 필요했다.
당직 상황의사가 곧바로 해당 병원서 가장 가까운 순으로 '전원 핫라인'을 통해 권역외상센터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8곳의 병원서 여러 사유로 곤란하다는 답변이 왔다. "흉부외과 전문의는 있지만 신경외과 전문의가 없어 수술이 불가합니다.", "이미 중환자 케어로 병상이 모두 차 추가 환자를 받을 여력이 없어요."
열 번째 전화를 돌리자 인천의 권역외상센터 등 두 곳에서 수용이 가능하다는 답변이 왔다. 전북에서 꽤 거리가 있는 상황. 상황실 시스템에는 이송 병원까지의 최단 거리와 예상 소요시간이 뜨는데, 무려 189분이었다. "아마 명절이라 이것보다 더 걸릴 수도 있을 거예요." 요원들이 우려했다.
근처에서 대기 중이었던 '닥터헬기'가 나섰다. 하늘을 나는 응급실인 닥터헬기에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등 응급처치가 가능한 의료진이 탑승해 이송하면서 처치할 수 있도록 의료기기가 갖춰져 있다.
상황의사는 환자가 닥터헬기에 탑승해 이송 중인 것을 확인하고 나서 한숨을 돌렸다. "그래도 이송되고 최종적으로 처치될 때까지 마음을 못 놔요. 3시간 뒤에 다시 전화해서 후속 상황을 확인하기로 했어요."
추석 연휴 2일 차인 이날 상황실에 띄워진 현황판에는 다행히 '병상 과밀화'를 뜻하는 빨간불이 켜진 지역은 없었다. 다만 '진료 제한' 메시지를 다량으로 띄운 병원이 많아 요원들은 해당 병원의 종합상황판을 계속 띄워두고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정형외과, 감염내과, 혈액종양내과…전부 다 인력 부족으로 인한 진료 제한이네요. 이런 곳이 여기뿐만이 아니라 걱정이 큽니다."
이날 중앙상황실과 각 광역상황실까지 전국으로 요청된 전원 건수는 오후 6시 30분 기준으로 51건이었다. 연휴 첫날인 전날에는 55건으로, 전주 주말인 7일에 46건, 8일이 38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늘어난 숫자다.
상황실에 따르면 연휴가 시작되고 이틀 동안 예초기 칼날에 베여 중상을 입은 환자, 고라니를 피해 운전하다 사고가 난 환자,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서 신장에 피가 고인 소아 환자 등이 보고됐다.
상황요원 A씨는 "평소보다 환자가 늘었고 외상 환자가 좀 있었는데, 명절이어도 응급실에서 잘 협조해 주셔서 오늘은 모두 전원이 완료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차명일 상황실장은 "추석을 앞두고 한달 반 전부터 광역상황실장님들과 회의하며 연휴에 상황요원을 최대한 더 많이 배치하는 등 대응책을 준비했다"며 "이번 연휴에는 처음으로 네이버, 다음 등 포털과 협력해 '명절에 문여는 의원·약국' 정보를 온라인에 띄운 것도 효과가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은 전국 재난상황을 감시하고 중증 응급환자의 최종 전원을 지원하는 콘트롤타워다. 2교대 또는 3교대로 돌아가는 상황실에는 중증환자 치료 경험이 풍부한 1급 응급구조사 또는 간호사와 상황의사 등 4명이 근무한다.
지난 4월에는 이러한 업무를 권역별로 수행하는 '광역응급의료상황실' 4곳이, 7월에는 2곳이 추가로 문을 열었다. 광역상황실에서 기본적으로 각 담당 구역의 응급환자 전원을 처리하고, 특별히 중증인 경우에는 최종적으로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이 담당하도록 절차가 체계화됐다.
환자를 이송하는 119구급대와 소방 상황실만으로는 대응이 힘든 경우 광역상황실로 연락하면 광역상황실의 전문의가 직접 환자 정보를 받아 일일이 병원에 전화하며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원을 찾는다.
이렇게 권역별로 각 지역 사정에 밝은 상황실이 전원을 받쳐 주면서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은 콘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재난상황 감시 업무에 주력한다는 방침이지만, 이제 막 광역상황실이 걸음마를 뗀 만큼 갈 길은 멀다.
차명일 실장은 "무엇보다 인력 부족이 가장 큰 문제다. 이번 추석 연휴를 앞두고 당직의를 구하는 데 큰 애를 먹었다"며 "당직의는 응급의학과 또는 응급 처치에 대한 판단이 가능한 타과 전문의로 구성되는데, 전체적으로 필수과 인력이 줄어드는 만큼 갈수록 충원이 힘들다. 처지를 아는 의사들끼리 알음알음 '얼굴을 봐서' 당직을 서주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상황에 따라 공중보건의와 군의관이 파견돼 상황실에서 근무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당직의 확보는 담보하기 힘든 상황이다.
당직의들은 상황실 전담 의사가 아니라, 국립중앙의료원 또는 근처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인 만큼 소속 병원의 여건이 악화하면 당직이 어렵다. 상황은 긴박한데 근 10년째 당직수당이 동결돼 보상도 미약한 상태다.
차 실장은 "열악한 상황에서 응급실 의료진들의 협조와 헌신으로 매일매일을 버텨내는 상황"이라며 "광역상황실이 막 문을 연 만큼 인력 보강을 통한 조직 안정화가 가장 시급해 이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fa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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