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기원』 박정재 “기후변화에 따라서 북방의 유목 및 농경민들이 반복 이주해 한민족 이뤘다” [김용출의 한권의책]

김용출 2024. 9. 16.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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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누구이고, 이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던져봤을 질문이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이에 대해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다만, 북방계의 영향을 받아서 몽골인과 유사하다고 여겨져 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바뀌고 있다. 고유전학 발전 덕분에 아프리카에서 탈출한 사피엔스가 어떤 경로로 한반도에 이르게 되었는지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데다가, 고기후학의 데이터들은 사피엔스가 어째서 정주가 아닌 이주를 했는지 합리적인 추론을 가능하게 했다.

러시아 하바롭스키 지역의 아무르강 유역
예를 들면, 최근 고유전체 연구는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몽골인과 꽤 차이나 나며, 오히려 중국 북동부 사람이나 일본인과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인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북방계가 알타이산맥이나 바이칼 호수 주변이 아닌 남방계와 마찬가지로 남쪽에서 기원했음을 시사한다.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책 『한국인의 기원』(바다출판사)에서 고유전학과 고기후학 데이터까지 합치고 여기에 역사학, 언어학 등까지 여러 유관 학문의 데이터를 하나로 엮어서 지금까지 누구도 들려주지 못한 한국인의 기원에 대한 담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기원해 오랜 세월에 걸쳐서 한반도까지 이주해오고, 다시 반복적인 이주와 정착을 통해 마침내 한국인이 형성되는 유장한 과정을⋯.

책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출발해 동쪽으로 이동한 호모 사피엔스는 대략 4만 년 전에 동아시아에 도착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한반도에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 동아시아의 가장자리에 있고 대부분이 산지여서 먹거리를 구하기 유리한 지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 확산도
이들 수렵채집인들을 한반도로 이끈 것은 기후 변화가 야기한 기온 하강이었다. 아무르강 유역의 북방 유목민들을 비롯해 북방의 많은 유목민들이 2만 5000년 전 마지막 빙기 최성기의 극심한 추위가 찾아왔을 때, 8200년 전 온화한 홀로세 기후 속에서 갑작스럽게 한랭화가 찾아왔을 때, 홀로세 후반기 건조 한랭기가 찾아왔을 때마다 잇따라 한반도를 찾아왔다.

“⋯8200년 전 갑작스럽게 기후가 한랭해졌다. 기후 악화는 아무르강 유역에 모여 살고 있던 수렵채집민이 최성기에 그러했듯이 재차 남하하는 원인이 되었다. 비어 있던 한반도는 북방의 수렵채집민에 의해 빠르게 채워졌다. 강원도 고성과 양양, 그리고 부산의 패총에서 발견된 홀로세 초기의 덧무늬 토기 유물은 그 형태가 아무르강 중상류의 노보페트로프카와 그로마투카에서 출토된 토기와 유사하다. 이는 당시 아무르강 유역 사람들이 추위를 피해 동해안을 따라 이동해 한반도 남동부까지 내려왔음을 시사한다. ⋯한반도에 토기 문화를 처음 전파한 사람들 역시 아무르강 유역의 수렵채집민으로 추정된다.”(247~248쪽)

특히 동북아 지역이 한랭 건조해지는 3200년 전 이후 북방의 사람들이 농경에 좀더 적합한 기후를 찾아서 한반도로 꾸준히 내려온 뒤 한반도에 농경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저자는 바로 이 시기에 샤자덴 하층문화 사람들이 물리적 갈등을 피해 한반도에 유입되면서 한국 청동기 시대 중기의 대표적인 문화이자 한반도 최초의 벼 농경 집단이라 부르는 송국리의 수도작 문화를 형성했다고 추론했다.

송국리의 민무늬 토기
“3200년 전 즈음 점점 기온이 내려가고 강수량이 줄어드는 듯하더니 서북쪽에서 많은 사람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랴오시 지역의 샤자덴 하층문화 집단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애써 갈아놓은 랴오둥의 땅이 아까웠지만 손해가 큰 물리적인 갈등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한반도 서해안을 따라 남하하다가 금강 중하류, 지금의 부여, 공주, 논산, 익산 등지에 자리를 잡았다. 북방의 농민들은 따뜻한 남쪽 기후에 만족하며 노련한 솜씨로 논을 조성하고 곧 쌀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바로 우리 학계에서 한반도 최초의 벼 농경 집단이라 부르는 송국리 문화의 주인공이 아닐까 한다.”(290쪽)

결론적으로 홀로세 초기 아무르강 유역에서 내려온 수렵채집민 집단과, 홀로세 후기 산둥, 랴오둥, 랴오시 등에서 이주한 농경민 집단들이 기후 변화에 따라서 반복적으로 이주하면서 한반도의 인구 집단, 이른바 ‘한민족’을 만들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 흔적은 현대 한국인과 일본인의 유전체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실제 고인골 DNA를 조사한 결과, 중국이 자랑하는 랴오허 문명의 중심인 훙산 문화나 샤자덴 문화를 일궜던 고대인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현대인은 다름 아닌 한국인으로 조사돼, 한족보다 한반도인이 랴오허 문명의 주축이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북방의 수렵채집민이나 농경민 집단이 남하할 때마다 먼저 와 있던 주민들과 마찰을 빗으면서 한반도 사회는 갈등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새로 이주해온 이들이 가져온 새로운 문화는 순기능을 하기도 했다. 중기 청동기 저온기에는 벼 농경문화가, 철기 저온기에는 동검 문화와 원시 한국어가 차례로 한반도 남부에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화는 한반도 사회가 고대 국가 체제를 갖춰나가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모두 5부로 구성된 책의 제1부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빠져나와 유라시아 각지로 퍼져나간 뒤 지역별로 집단이 조성되는 과정을, 2부에서는 2만5000년 전 시작된 마지막 빙기 최성기부터 지금까지 북반구에서 일어난 기후변화와 이것이 유라시아 인간 사회에 미친 영향을 각각 살핀다. 3, 4부에선 본격적으로 한국인의 기원을 추적해 북방의 수렵채집민 집단과 농경민 집단이 언제 어떻게 한반도로 남하해 지금의 한국인을 형성했는지 다룬다.

한랭한 기후 조건을 이겨내고자 오랜 시간에 걸쳐 한반도에 이주를 해온 한국인들의 조상들. 그들의 후손인 한국인들은 이제 인류세의 온난화와 다시 상대해야 한다. 기상청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 대비 2100년까지 전 지구 평균 기온이 4.3도가 오를 때 한반도는 5.9도, 남한 지역은 5.4도가 오를 것으로 추정했다. 다시 말해서 지금보다 3.8도 상승한다면, 서울 평균 기온은 16.6도가 돼 서귀포의 기온과 비슷해지고 부산 평균 기온은 18.8도가 돼 중국 푸젠성 지역의 기온과 비슷해질 전망이다. 여름철의 폭염은 물론, 겨울철의 가뭄과 산불, 작물 생산량의 급격한 감소, 해수면의 상승, 태풍의 강화, 갑작스러운 폭우 등 수많은 기상 이변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1만7000년 전의 라스코 동굴벽화
저자는 한반도의 온난화 시나리오를 점검하면서 내부적으로 종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출산률 증가 및 외국인의 유입, 외부적으로는 북쪽의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확립하는 등 한반도인의 존립을 위해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인류가 맞는 위기가 심각하면 할수록 다양성이 갖는 힘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미래에 혹시 올지도 모르는 초간빙기와 같은 급격한 환경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방안은 다양성이지 획일성이 아니다. 다양성이 높은 집단이 갑작스러운 충격에 저항력이 크고 교란에 대한 회복력이 강하다는 가설은 생태계와 인간 사회를 면밀히 관찰한 여러 과학자의 혜안에서 나왔다.”(467쪽)

책은 기후라는 한 가지 원인으로 환원해 한민족의 유래를 설명했다는 점에서 다분히 환원론이나 결정론적 사고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한민족 형성 과정을 최신 과학적 연구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구체적이고 실증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담대한 연구가 아닐 수 없다. 옳고 그름을 떠나 담대한 도전에 경의를.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바다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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