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예술이 그린 회춘의 약, 젊은 피에서 찾았다
젊은 피에서 회춘 부르는 성분 찾아내
운동·단식·휴면도 생체시계 돌릴 성분 제시
젊음을 유지하며 영원히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고대 신화에 반영됐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젊음의 여신 헤베는 제우스와 헤라의 딸이다. 신들이 올림포스산에서 연회를 열 때 암브로시아를 바치고 넥타르를 따르는 일을 했다. 암브로시아는 ‘죽지 않는다’는 뜻이고 넥타르는 ‘죽음을 물리치다’라는 의미를 가진 ‘불사(不死)’의 음식이다.
중국의 진시황이 말년에 사방으로 사람을 보내 찾던 불로장생약이다. 프랑스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도 환상 소설 ‘영생의 묘약’에서 죽은 자를 살려내는 동방의 묘약을 두고 벌어진 소동을 그렸다. 아일랜드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초상화가 늙고 나는 영생을 누리는 꿈을 그렸다.
신화와 예술의 상상은 과학을 통해 현실이 되고 있다. 글로벌 학술정보 기관인 클래리베이트가 발간하는 바이오월드(BioWorld)지는 “지난달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노화 연구와 신약 개발 콘퍼런스(ARDD)’에서 예술가들이 상상하던 회춘(回春)을 분자 수준에서 실현할 최신 항노화 연구들이 소개됐다”고 지난 13일 전했다.
◇드라큐라 방식으로 쥐 회춘시켜
ARDD 콘퍼런스에 참석한 서유신 미국 컬럼비아대 유전학·발달학과 교수는 ‘개체연결법(parabiosis)’에서 드라큘라식 회춘의 답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젊은 쥐와 늙은 쥐의 몸을 연결하는 개체연결법 연구는 젊은 피가 노화된 몸에 유익한 효과를 미치는 회춘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연구를 보면 근육과 뼈는 물론 뇌, 심장, 신장, 췌장도 이런 방식을 통해 회춘할 수 있다.
과학계는 이미 160년 전부터 젊은 피를 수혈(輸血)해 회춘을 유도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늙은 쥐와 어린 쥐의 피부를 연결해 피가 통하게 하는 개체연결법은 1860년대부터 연구가 시작돼 1970년대에 봇물이 터졌다. 처음엔 혈액의 기능을 밝히는 것이 주요 목표였지만, 최근에는 노화를 막는 방법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과학자들은 늙은 쥐에 젊은 피를 수혈하거나 직접 혈관을 연결하면 늙은 쥐의 세포와 조직, 장기가 젊은 쥐처럼 향상된다는 사실을 잇따라 알아냈다. 토니 와이스-코리(Tony Wyss-Coray) 스탠퍼드대 교수 연구진은 지난 2014년 ‘네이처’에 젊은 쥐의 혈장을 늙은 쥐에게 주입해 뇌기능을 향상시켰다고 발표했다. 제임스 화이트(James White) 미국 듀크대 의대 교수는 지난해 ‘네이처 노화’에 “젊은 쥐의 피를 늙은 쥐에게 수혈해서 수명을 10%까지 연장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방법은 아직 한계가 있다. 드라큘라에 물린 사람이 목숨을 잃었듯, 젊은 동물은 자신과 연결된 늙은 동물로부터 피해를 봤다. 서 교수는 “늙은 피에는 조기 노화를 유발하거나 몸에 유해한 성분이 들어있다”며 “앞으로 이런 위험요소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서 교수 연구진은 유럽 아시케나시 유대인 중 나이가 100세를 넘은 사람들의 유전자를 분석했다. 아시케나시 유대인은 장수로 유명하다. 그 결과 장수와 관련된 유전자 113개를 찾았다. 또 사람의 섬유아세포를 늙은 소의 혈청에서 키워 노화를 유발했다. 하루가 지나자 유전자 800개에서 변화가 생긴 것을 발견했다. 다시 젊은 사람의 항체로 옮기자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서 교수는 이번 행사에서 색소상피유래인자(PEDF)가 항노화제 후보 물질로 연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PEDF는 나이가 들면서 감소한다. 서 교수는 인위적으로 노화를 유발한 사람의 섬유아세포에 PEDF를 주면 다시 원상태로 회복됐다는 실험 결과를 처음 공개했다.
◇단식, 휴면에서도 수명 연장 단서 찾아
토머스 랜도(Thomas Rando)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는 ‘줄기세포 노화, 기초 과학에서 회춘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개입에 이르기까지’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개체연결법이 세포와 조직의 나이를 재설정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개체연결법이 아니더라도 좋은 생활 습관도 줄기세포에 활력을 불어넣는다”고 발표했다.
랜도 교수에 따르면 운동은 세포 주기를 조절하는 사이클린D 단백질을 회복시켜 늙은 쥐에서 작동하지 않던 휴면 골격근 줄기세포를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운동하는 쥐의 피를 운동하지 않는 늙은 쥐에게 수혈한 결과 운동한 것과 같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랜도 교수는 “근육이 염증을 억제하고 재생을 촉진하는 물질인 마이오카인을 분비하는 내분비기관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간헐적 단식 역시 회춘을 부르는 생활 습관이다. 랜도 교수는 “칼로리 제한도 회춘에 도움이 된다”며 “쥐를 하루 반 동안 단식시키면 줄기세포의 회복력이 극적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늙은 쥐에게 먹이를 주지 않으면 늙은 쥐의 줄기세포 회복력이 젊은 쥐 수준으로 향상된다”고 했다.
모든 활동을 멈추면 생체 시계도 정지한를 늦출 수 있다. 자연에선 스트레스에 저항하고 생존하기 위해 잠시 생명 활동을 멈추는 휴면(diapause) 사례가 자주 발견된다. 아담 안테비(Adam Antebi) 독일 막스플랑크 노화 생물학 연구소장은 “휴면은 금식으로 생명 활동이 극단적으로 정지된 상태”라며 “이런 상태는 매우 가역적”이라고 말했다. 먹이를 다시 먹거나 영양분을 제공받으면 재생 능력과 회춘 능력이 자극을 받아 회복된다는 것이다.
안테비 소장 연구진은 선형동물인 예쁜꼬마선충에서 발견되는 성체생식휴면(ARD)에서 수명 연장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정상적으로 활동하지만 번식은 멈추는 것이다. 연구진은 선충이 생식휴면 상태에서 정상으로 되돌아온 뒤 체세포 복구 능력과 미토콘드리아 생물 발생과 근육과 신경돌기의 성장이 활성화되는 것을 확인했다. 안테비 소장은 “성체생식휴면을 연구하면 성인의 회춘과 장수를 조절하는 새로운 보존 경로를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BioWorld(2024), https://www.bioworld.com/articles/712543-updating-oscar-wildes-visions-of-rejuvenation-at-ardd-2024
Nature Aging(2023), DOI: https://doi.org/10.1038/s43587-023-00451-9
Nature(2017), DOI: https://doi.org/10.1038/nature22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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