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가야" 또 사라진 알츠하이머 아내…86세 남편은 숱하게 뛰었다
1987년 평생 지켜주자 약속한 부부, 아내 알츠하이머 진단에도 남편 "시설 못 보내"
팔순 넘어 아내 위해 요양보호사 취득 "나한테 와서 고생, 어떻게 그런 사람을"
[편집자주] 머니투데이 사회부 사건팀은 지난 4개월간 전국 각지에서 실종 가족들을 만났다. '2024 실종리포트-다섯가족 이야기'는 한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실종 가족들에 대한 기록이자 오늘날 가족의 의미를 찾으려는 우리의 이야기다.
눈을 뜨니 옆이 허전했다. 아내가 없었다.
김화선씨(86)는 신발을 구겨 신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꽃샘추위는 옷깃을 여며야 할 만큼 차가웠지만 떨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니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방배동 전체를 이 잡듯 뒤졌다. 함께 다니던 등산로부터 사람이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은 전부 다 살폈다.
"OOO 어딨어!" 답답한 마음에 이름을 소리쳐 보고, 주변 상인들에게 아내 인상착의를 설명하며 근처를 지나간 적 없는지 묻고 또 물었다. '금방 찾겠지' 스스로를 안심시켰지만 가슴은 더 뛰었다.
2시간 후인 오전 9시, 김씨는 인근 파출소·지구대에 신고하고 CCTV(폐쇄회로TV)를 봤다. 화면 속 A씨는 자정쯤 집을 나서고 있었다.
경찰에 신고한 후에도 김씨는 계속해서 A씨를 찾았다. 한밤 중에 탈진하지 않았을까, 제멋대로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팔순이 넘은 김씨는 그렇게 몇시간을 뛰어다녔다. 마음을 따라오지 못하는 두 다리가 야속했다.
1시간쯤 지났을까, 송파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아내를 찾았다고 했다. 자정에 방배동 집을 나간 A씨는 11시간 뒤 송파구 잠실역에서 발견됐다.
김씨는 한달음에 잠실역으로 달려갔다. 잠실역 1번 출구에 이르자 저 멀리 A씨가 보였다. "여보, 어떻게 여기까지 걸어왔어" 김씨 말에 A씨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였다. 간밤의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이야기하자 "내가 원래 처녀 때부터 걸음이 빨랐어"라며 미소지을 뿐이었다.
1987년 봄, 둘은 처음 만났다. 잘 아는 지인이 '믿을만한 사람들이니 한번 잘 살아보라'며 이어줬다. A씨는 처음에 눈도 잘 마주치지 못했다. 김씨는 올라간 입꼬리를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좋았다. 언뜻 보이던 아내의 눈빛은 순수하고 맑았다. 두 사람은 평생 서로의 옆을 지키자고 약속했다.
33년이 지난 2020년 어느날, 김씨는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A씨가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잊는 일이 잦아졌다. 방금 했던 이야기도 종종 기억하지 못했다. 병원에 간 A씨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A씨 실종도 올해 3월이 처음은 아니다. 일곱번도 더 애를 태웠다. 평소에도 한 눈을 팔면 A씨는 사라진다.
A씨는 기자에게 연신 친정집에 가야 한다고 했다. 방배2동에 계신 친정아버지·어머니를 봐야 한다며 동네에 친구가 많다고 했다. A씨 고향은 전남 목포다. A씨 부모님은 30년 전에 돌아가셨다.
그러면서 김씨를 '아빠'라고 불렀다. "우리 친정 아버지가 나를 정말 아껴요. 다른 남자 형제들한테는 매를 댔어도 나한테는 한 번도 매를 댄 적이 없다니깐요. 나를 정말 좋아하시나 봐." 김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김씨는 "손을 잡고 다니니 아버지 생각이 나는 것 같다. 가족이 그리운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내가 자기를 좋아해 주는 것은 알고 있네"라며 웃었다.
젊은 시절 추억은 노부부의 힘이다. "우리 아내가 요리 실력이 진짜 좋았어요. 일요일에 교회 사람들을 다 우리집으로 초대해서 아내가 한 요리를 같이 먹곤 했어요. 직접 담근 젓갈이랑 갈비찜이 기가 막혔어요. 사람들이 사서 먹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했어요." 갑자기 아내 칭찬을 하던 김씨가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김씨는 또 "예전에 아내랑 같이 금강산에 갔던 게 제일 기억에 남는다"며 "아내랑 같이 멋진 풍경을 보고 맛있는 것 먹으면서 등산하니까 참 좋았다"며 했다.
그런 그에게 주변에서 노인복지시설을 권유한다고 한다. "아내를 시설에 보내기는 죽어도 싫어요." 김씨는 이렇게 잘라 말했다. A씨 얼굴에 수줍은 웃음꽃이 피었다.
"젊었을 때 나한테 와서 고생했는데 어떻게 그런 사람을 시설로 보내나요. 시설에 들어가면 보고 싶을 때 못 보고 기력도 빨리 쇠한다고 하더라고요. 욕심일지 몰라도 남의 손에 맡기고 싶지는 않아요."
김씨는 최근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여든여섯의 나이에 학원을 등록하고 매일 공부했다. 아내를 위한 선택이었다.
지역 경찰들도 A씨를 '안다'. 서울 방배경찰서 실종팀 정우재 경장은 수차례 A씨를 찾아냈다. 지난 겨울에는 영하의 날씨에 사당역 부근 공영주차장에서 A씨를 찾았다. 마지막으로 CCTV에 찍힌 곳을 중심으로 수색 반경을 넓힌 끝에 주차장에 우두커니 있는 A씨를 발견했다.
정 경장은 "우리 할머니들 복장이 다들 비슷하다"며 "겨울에 패딩을 입고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나가시면 CCTV를 다 찾아봐도 (실종 어르신들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심 끝에 정 경장은 경찰들만 알아보는 배지를 A씨에 부착하는 방안을 추천했다. 해당 배지를 단 어르신이 혼자 방황하는 모습을 경찰들이 보면 신고가 없더라도 선제적으로 조치하라는 취지다.
정 경장은 "함부로 배지를 달 수 없다. 치매 어르신 분들이 치매라는 것을 알리기 싫어하시기 때문"이라며 "가장 좋은 방법은 시민들 제보와 신고"라고 당부했다.
김 씨는 "아내가 젊을 때 땅을 보고 다니던 습관이 있었다. 내가 그 때 아내한테 간판을 보면서 길 좀 외우라고 했더라면 치매가 늦게 오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된다"면서 "기운이 다할 때까지는 아내를 지킬 것"이라고 했다.
오석진 기자 5ston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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