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도 서울경찰청 인근 쓰레기더미 못 벗어난 할머니[이승환의 노캡]
[편집자주] 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캡은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여서 노캡은 '거짓말이 아니다'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칼럼 이름에 걸맞게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서울시 종로구 내자동 서울경찰청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이라면 누구나 아는 할머니가 있다. 서울경찰청 동문을 등지고 왼쪽으로 서른 걸음쯤 하면 이 할머니를 만날 수 있다. 빈 물병, 우산, 천막 천, 막대기, 겨울용 이불, 신문, 나뭇잎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이룬 더미 위에 할머니는 주저앉아 있거나 누워 있다.
반소매 셔츠 아래로 드러난 팔뚝은 팅팅 부어 있다. 백발의 머리카락을 묶은 할머니의 피부는 검게 그을려 있다. 폭염이 퍼붓고 거센 바람이 들이닥쳐도 할머니는 그 언저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늘 주저앉아 있거나 누워 있으므로, 할머니의 신장을 정확하게 가늠하지 못했다. 나이는 최소 60대로 추정된다.
경복궁역 7번 출구에서 나온 경찰관들과 인근 직장인, 주민들이 모퉁이 쓰레기 더미에 자리 잡은 할머니 옆을 지나간다. 할머니는 마치 비명을 지르듯 행인들에게 거친 발언을 쏟아낸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이다. 막대기를 허공에 휘두르기도 한다. 2022년 12월 서울경찰청을 출입처로 지정받고 출근하던 나는 도심에서 이따금 보던 노숙인과 같은 유형으로 할머니를 이해했다.
그러던 중 최근 서울경찰청 직원에게서 할머니의 사연을 들었다. 할머니는 비무장지대 지피(GP·감시초소)에서 군 복무하던 중 숨진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청와대 앞에서 군복을 입고 영문자 'MP'라고 적힌 군사경찰 완장을 찬 채 아들의 의문사를 규명해 달라며 시위했다고 한다. 청와대 무궁화동산 인근에서 시위하다가 사랑채 앞에서 노숙 시위를 했다는 증언도 있다. 10여 년 전 일이다. 그때만 해도 정신이 온전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현 대통령실) 외곽의 경호·경비를 했던 서울경찰청 202경비단 경찰관들은 어렴풋이나마 할머니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다.
202경비단 출신의 경찰관에게 할머니의 사연이 진짜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너무 오래전이라 가물가물하기는 한데요. 한 가지 분명한 기억은 있습니다. 딱 봐도 아들 잃은 엄마의 모습이었다는 것이죠."
최근 8년간 군에서 발생한 안전사고 피해는 총 927명이다. 이 중 사망자는 155명, 중상자는 492명, 경상자는 280명이다. 군 자살자는 2021년 78명, 2022년 66명, 2023년 58명이다. 군 내 사망 건은 줄어들고 있으나 이미 자식을 떠나보낸 유족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추석 연휴인 지난 15일 오후 4시30분쯤, 서울경찰청 동문 인근을 찾아 할머니를 취재했다. 연휴를 맞은 경복궁역 인근 왕복 8차로는 한산했고 유모차를 끄는 가족 단위 나들이객이 할머니 옆을 스쳐 갔다. 할머니는 가장자리가 닳은 '이기자 부대' 휘장, '미군 부대' 휘장, '공수부대' 휘장을 모두 상의에 부착한 채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당시 헌법재판소 앞에 몰린 인파의 사진이 실린 신문 쪼가리를 기자에게 보여줬다.
평소 행인들에게 성난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리 반달눈을 하고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좀 쉬고 있어요. 잠시 쉬고 있다가 갈 거예요."
아들을 잃은 사연이 맞는지, 식사는 제때 하시는지, 잠은 어디서 주무시는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는지, 노숙 생활은 언제부터 했는지 물었으나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다.
"나는 나라님이 하시는 일을 수거하고 있어요… 내일 아침에 저기 보이는 은행 좀 가려고… 내가 어디서 자는지 알 바 아니고… 내 친인척에 경찰이 아주 많아 나한테 유리해… 군 관계자들이 여기저기서 순찰하는데 오늘도 왔더라고…"
어떤 의미일까 싶어 말들의 조각을 맞춰보았으나 헤아릴 수 없었다. 횡설수설하던 할머니는 세 가지만큼은 뚜렷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지금이 연휴"라는 것, "내일(16일)은 월요일"이라는 것, "지난여름은 무지막지하게 더웠다"는 것을 말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는 진보 성향의 취재원과도, 확고부동한 질서를 우리 사회에 확립해야 한다는 보수 성향의 취재원과도 인근에서 식사한 후 나란히 걷다가 할머니를 맞닥뜨렸다. 지위가 높은 경찰관, 지위가 낮은 경찰관, 승진에서 매번 물먹은 경찰관, 사명감을 지닌 경찰관과도 할머니 옆을 함께 걸었고 우리는 걸으면서 때론 '우리 시대의 정의'를 논의했다.
다만 사연을 듣기 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대부분은 할머니를 무심히 바라보거나 아예 눈길을 주지 않았다. 똑똑하기로 소문난 어느 취재원은 "할머니가 행인들에게 민폐 끼친다는 민원이 많은데 저대로 두는 게 맞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사람 좋기로 유명한 어느 경찰관은 말했다. "할머니 보면 우리 엄마가 생각나… 이곳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아파요."
스치며 지나쳤던 모든 노숙인에게는 사연이 있고 이들의 삶은 우리 사회 구조의 허약한 지반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반이 무너지면 이들의 개별적인 사연도 모두 침몰해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은 곳으로 떠내려간다.
할머니의 민폐를 지적하는 것과 할머니의 사연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 중 무엇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것'인지 끝끝내 결론 내리지 못했다. 다만 할머니 곁을 지나는 사람들의 눈빛과 반응을 확인하면서 한가지 깨달았다. 연민과 측은지심과 사랑은, 이념과 배움과 지위고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섰는데 중년 여성이 할머니에게 다가가 "괜찮으세요"라고 묻고 현금을 꺼내 쥐여줬다. 추석 연휴 할머니가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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