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랑 GDP가 무슨 상관인데? [사이공모닝]
태풍이 휩쓸고 간 베트남에 상처가 가득합니다. 최근 30년 사이 가장 강력했던 슈퍼 태풍 ‘야기’ 말입니다. 최대 풍속 시속 166㎞의 태풍은 베트남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총 26개 지역에 피해를 입혔습니다. 베트남 전체 인구의 40%가 거주하는 곳이지요. SNS에는 태풍으로 피해당한 사람들의 영상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집을 잃고 망연자실한 사람들, 자식을 잃고 쓰러져 우는 부모들까지요.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이 고입니다.
태풍은 베트남의 올해 GDP 성장률에도 피해를 끼쳤습니다. 지난 2분기 말, 예상됐던 올해 GDP 성장률(6.8~7%)이 0.15%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베트남만이 아닙니다. 태풍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큽니다. 세계기상기구(WMO)가 작년 내놓은 ‘2022년 아시아 기후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태풍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해당 시점부터 최소 20년간 지속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2022년 태풍으로 인한 아시아 국가의 경제 피해 규모만 360억 달러로 추산됐습니다. 이를 현재 원화 가치로 환산하면 47조9520억원에 달하지요.
◇무너지고 폐허가 된 터전
태풍이 베트남 주민들의 삶에 끼친 피해는 심각합니다. 베트남 기획투자부에 따르면 태풍으로 무너진 주택만 25만7000채, 학교 1300곳과 제방 305개도 태풍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먹고 살 일도 막막합니다. 농지 26만2000ha가 뻘밭으로 변했습니다. 양식장 2250곳도 피해를 입었지요. 돼지, 닭 등 230만 마리가 죽었습니다. 뿌리째 뽑힌 나무도 31만 그루에 달하죠.
“하롱베이에 가지 않았다면 베트남에 대해 논하지 마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관광지 하롱베이는 폐허로 변했습니다. 관광객을 태우고 바다를 떠다니던 유람선들은 서로 부딪혀 부서지고, 바람에 뒤집히면서 침몰했습니다. 시장과 술집, 호텔들까지 피해를 당하였죠.
베트남 보험 회사들은 태풍 피해로 인한 손해 배상 요구에 직면했습니다. 지금까지 들어온 배상 요청 금액이 2조7600억동(1498억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쓰러진 나무에 부서진 공장이나 차량에 대한 피해를 배상해달라는 내용입니다. 베트남 보험 역사에서 이제까지 없었던, 역대 최대 금액인 거지요.
하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인명 피해일 것입니다. 며칠 전, 저의 SNS에는 슬픈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관광지이자, 베트남의 스위스라 불리는 사파에서 관광객들의 트랙킹을 돕던 슈라는 여성의 집이 산사태로 무너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수 민족인 ‘흐몽족’ 출신인 그와 그의 남편 등 다른 가족들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갓 태어난 그의 딸은 여전히 실종 상태라는 것입니다. 사파를 사랑하는 많은 관광객들이 기적을 기도했지만 결국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지난 13일 기준, 태풍 야기가 일으킨 홍수와 산사태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262명, 부상자와 실종자는 각각 820명, 83명이었습니다.
◇위기 앞에서 뭉치는 국민성
위기 앞에 똘똘 뭉치는 베트남 국민의 단합력은 자연의 위협 앞에서도 드러납니다. 산사태로 40명 이상이 사망하고, 50명 넘는 실종자가 발생한 사파에서는 군인 300명과 경찰 80명, 수백명의 자원 봉사자가 실종된 주민들을 찾아나섰습니다. 살아남은 이들은 집도, 농장도 망가진 슬픔을 딛고 사망한 이웃의 장례를 돕고 나섰지요. 사파 뿐만이 아닙니다. 하노이 시내에서도, 하이퐁에서도 수해 복구를 위한 군인과 경찰, 자원봉사자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효율적으로 도움을 주기 위한 다양한 방법도 고안됩니다. 베트남 북부 옌바이에서는 식량 배급과 인명 대피를 위한 ‘보트’가 등장했습니다. 침수 지역을 오가며 도시락과 먹을거리를 전달하고, 위험 지역에 있는 주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한 것이었지요. 한 베트남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차량 호출 서비스인 그랩에 ‘보트’ 호출 서비스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입니다.
물에 젖지 않도록 음식을 진공 포장해 전달하기도 합니다. 빵과 계란, 맥주와 담배까지 구호품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물에 잠긴 집에서 기꺼이 국수를 말아 내어주는 어머님들도 있지요.
4만 그루 이상의 나무가 쓰러진 하노이에서는 현지인과 외국인들이 힘을 합쳐 커다란 나무를 세우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나무들로 차량이 다니는 도로도, 상인들이 가게를 열던 시장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나무들로 아침 출근길이 더 고단해지기도 했습니다. 하노이에서 가장 넓은 도로 중 하나인 탕롱-짠 두이 흐엉 길은 시속 80~100㎞로 달리게 되어 있지만 누구 하나 달릴 수 없이 멈춰 서 있는 상태가 지속됐습니다.
베트남에 사는 외국인들도 일손을 보탭니다. VN익스프레스 등 현지 언론들은 수해 복구에 동참한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보도했습니다. 영국인으로 하노이에 거주한 지 7년째인 네이선 키어스씨는 북부 타이 응우옌 지역에 전달할 빵과 우유 200인분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홍수 피해를 본 사람들을 위해 쌀과 국수, 비누 등을 살 수 있는 돈도 기부했지요. 휴가를 수해 복구 봉사로 전환하거나 학생들을 위한 학용품을 기부하기도 합니다.
태풍 야기 피해 기사에 베트남 사람들은 이런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 무엇도, 슈퍼 태풍조차도 베트남 사람들을 막을 순 없다.” 이들이 자연의 위협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6년 전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야말로 우당탕탕거리며 베트남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게 취미입니다. <두 얼굴의 베트남-뜻 밖의 기회와 낯선 위험의 비즈니스>라는 책도 썼지요. 우리에게 ‘사이공’으로 익숙한 베트남 호찌민에서 오토바이 소음을 들으며 맞는 아침을 좋아했습니다. ‘사이공 모닝’을 통해 제가 좋아하던 베트남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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