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낫?”...한화는 어떻게 8년 만에 우승했나 [여기힙해]
지난 8일 경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4 LCK 서머 결승전’에서 ‘한화생명e스포츠(HLE)’가 페이커의 T1과 스프링 리그 우승팀 젠지를 연파하고 결승컵을 들어올렸습니다. HLE 창단 이후 8년 만에 첫 우승, 모태가 된 ‘락스 타이거즈(ROX)’ 이후 두 번째 우승입니다.
ROX 시절 막내였던 피넛(한왕호)은 한화의 주장이 돼 팀을 이끌었습니다. 당시 MZ세대 월드컵으로 불리는 ‘롤드컵(리그오브레전드 월드챔피언십)’ 갈 비용도 못 구해 쩔쩔맸던 그들은 한화그룹의 든든한 후원 속에 비행기를 탑니다. LCK는 MZ세대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의 국내 리그입니다. 한 해에 두 번, 스프링(봄) 리그와 서머(여름) 리그가 열립니다. 이 곳에서 우승한 팀들은 ‘롤드컵’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한화는 e스포츠계의 ‘맨시티’로 불립니다. e스포츠를 인수한 후 전폭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투자를 많이 한다고 우승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투자하지 않고는 우승하기 어려운 것이 프로 스포츠입니다. 한화는 어떻게 8년 만에 LCK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었을까요? 돈이 되는 여기 힙해 스무번째 이야기입니다.
◇외인구단 락스 타이거즈
2015년 창단한 ROX는 선수 생명이 짧은 e스포츠계에서 베테랑(사실은 한물 갔다고 평가 받던)들로 구성된 팀입니다. LCK 우승자인 프레이와 롤드컵 경험자인 고릴라, 아마추어 출신 중 가장 잘했던 피넛 등으로 이뤄졌습니다. 제대로 된 후원사도 없어 매 경기마다 고생했지만, 창단 2년 만에 롤드컵 준우승과 LCK 우승이라는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의지할 곳 없던 ROX는 LCK 우승 후 공중 분해됩니다.
2018년 4월 ROX를 인수한 곳이 한화생명입니다. 당시만 해도 삼성·CJ 등 대기업들이 LCK에서 발을 빼던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한화생명은 “MZ세대를 잡겠다”며 e스포츠 진출을 선언했습니다. 금융권 최초이기도 합니다. 당시 한화생명은 “선수단과 팬이 함께 즐기는 문화를 조성하겠다”며 “선수들에게는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안정적 환경을 조성하고, 복지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제공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화생명은 ‘의리의 한화’ 답게 이 약속을 100% 실천했습니다.
◇아낌없는 후원 ‘LOL의 맨시티’
5년 만에 LCK에 등장한 대기업 한화는 비주류로 인식되던 e스포츠업계를 주류로 성장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먼저, 기존에는 보지 못했던 ‘선수단 전용 버스’가 등장했습니다. LCK 선수들은 대부분 승합차로 이동합니다. 그러나 한화는 45인승 버스를 17인승으로 개조해 자체 인터뷰를 진행하거나 모니터링하는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2019년 국내 e스포츠팀 중 최초로 경기도 고양시에 e스포츠 전문 트레이닝 센터인 ‘캠프원’도 오픈했습니다. 1091㎡(약 330평) 규모로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구성된 이 곳은 연습실, 카페테리아, 체력단련 시설, 휴식 공간 등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시설 만큼 내실도 튼튼해, 이 곳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선수단의 식사를 책임지는 이모님 ‘백종순 여사’입니다. 진정한 한전드(한화 레전드)로 불리는 백 여사는 한화에 인수되기 전부터 선수들의 식사를 책임져 왔습니다. 그 외에도 챔프원에서는 ‘프로의식 함양을 위한 인성교육’, ‘전문 헬스 트레이닝’, ‘금융 소양교육’ 등을 진행합니다.
가장 많은 돈을 쓴 것은 선수 영입입니다. 2021 롤드컵 우승자인 ‘바이퍼(박도현)와 2022 롤드컵 우승자인 ‘제카(김건우)’, 2023년 LCK 전시즌 우승팀인 젠지에서 ‘피넛(한왕호)’, ‘도란(최현준)’, ‘딜라이트(유환중)’ 등을 동시에 영입하며 대권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바이퍼와 제카의 연봉은 30억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화가 ‘LOL계의 맨시티’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미국 게임매체 ‘도트e스포츠’는 “한화생명은 자유 계약 시장에서 차세대 한국 거함을 구축했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올 시즌 슬로건은 ‘와이 낫(why not·왜 안 돼?)’. 그리고 결국 이들은 우승을 이뤄냈습니다.
◇한국에 이어 베트남 MZ까지
한화생명은 e스포츠 인수 효과를 제대로 뽑는 중입니다. 최근 국내 보험 업계는 몇 년간 장기적인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등 복합적인 요인에 따라 지속적인 성장 정체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롤드컵의 경우 동시 시청자수가 약 1억 명에 달하며, 그들 대부분이 MZ세대입니다.
한화생명이 e스포츠와 연계해 작년 12월에 내놓은 저축보험 상품 가입자의 68%가 20~30대였습니다. 또한 가입자의 44.5%가 다른 보험 상품에도 가입하는 등 성과를 냈습니다. e스포츠 게임단은 해외에서도 한화생명 브랜드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HLE가 올해 6월에 베트남에서 개최한 팬 페스타에는 약 1500명이 참석했습니다. 해당 행사에 지원한 팬은 참석자의 열 배인 1만 5000여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한화생명은 계열사인 ‘더 플라자’와 협업하여 국내 최초로 e스포츠 호캉스 패키지 상품도 출시했습니다. LCK 경기 티켓과 더 플라자 호텔 숙박권을 결합한 상품으로 더 플라자 상반기 패키지 매출의 82%를 차지했습니다.
이를 주도한 것은 김승연 회장의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최고글로벌책임자(CGO) 사장입니다. e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그는 경영일선에 본격적으로 나선 뒤부터 젊은 세대를 겨냥한 마케팅과 상품 전략에 공을 들였습니다. 올해 4월엔 아버지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함께 한화생명e스포츠팀을 만나 사기를 북돋아주기도 했습니다. e스포츠 팬들에게 그는 우승을 가져다준 ‘한화 왕자님’으로 불립니다.
이렇게 반전의 우승을 이뤄낸 한화는 드디어 전 세계 MZ들의 축제인 ‘롤드컵’에 진출합니다. 그 외에도 서머리그 준우승으로 ‘골든로드(그랜드슬램)’가 한화 때문에 막힌 젠지, T1과 악연을 끊어내고 물이 오른 디플러스기아, 올 시즌 계속 고전했지만 결국은 롤드컵에 진출한, 영원히 지지 않는 왕조이자 전 롤드컵 챔피언인 T1이 마지막 티켓을 거머쥐었습니다.
한화생명은 올해 LCK 우승의 신화를 롤드컵까지 이어갈 수 있을까요? 올해 롤드컵의 우승팀은 누가 될까요? 오는 25일 독일 베를린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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