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발레 스타 전민철 “발레는 인생의 숙제 같아요”…첫 전막 발레 데뷔 앞두고 구슬땀

이강은 2024. 9. 1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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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발레단, 27∼29일 ‘라 바야데르’ 공연 마지막 무대 장식…주인공 솔로르 역 출연
꿈꾸던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에 내년 상반기 입단…아시아 남성 무용수로 김기민 이어 두 번째
솔로르 역 정통한 김기민에게 과외 받기도…“모든 동작에는 이유가 있다”는 조언 기억에 남아
솔로르의 복잡한 감정과 내면 연기 위해 막장 드라마 ‘부부의 세계’ 등 보며 연구하기도
“오래도록 좋은 영향력 끼치는 세계적 무용수가 되고 싶다”

“발레라는 예술은 100% 완벽해지기 어려워서 앞으로 계속 노력해야 하는 인생의 숙제 같아요.”

세계적으로 이름난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이 점찍는 등 한국 발레의 차세대 스타로 떠오른 전민철(20)에게 발레란 이런 것이었다. 완벽한 답을 찾기는 어렵겠지만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은 발전시켜서 잘 풀어나가야 하는 숙제. 그래도 춤을 출 때 가장 행복할 만큼 사랑하는 게 발레라고 했다. ‘라 바야데르’로 생애 처음 전막 발레 데뷔를 앞둔 지난 12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발레단 회의실에서 만난 전민철은 “발레에선 끈기와 열정이 중요한데, 제 성격과 맞는 듯하다”며 수줍게 웃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라 바야데르’에서 주인공 솔로르 역으로 처음 전막 발레에 도전하는 전민철이 포즈를 취한 모습.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라 바야데르’는 유니버설발레단이 창단 40주년을 기념해 27~29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이는 작품(안무 마리우스 프티파)이다. 프랑스어로 인도의 무희를 뜻하는 ‘라 바야데르’는 힌두 사원을 배경으로 무희 니키아와 용맹한 전사 솔로르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 대작 발레다. 막강한 권력자인 공주 감자티가 솔로르와 약혼하고 니키아를 적대시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전민철은 솔로르 역으로 29일 마지막 공연(5회차) 무대에 올라 유니버설발레단 솔리스트 이유림(니키아 역), 수석무용수 홍향기(감자티 역)와 호흡을 맞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3학년에 재학 중인 그는 “학생 신분이라 이런 기회가 올 줄 생각도 못했는데, 정말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인 ‘라 바야데르’를 하게 돼 좋다”며 유니버설발레단 문훈숙 단장에게 감사의 뜻을 내비쳤다. 

‘라 바야데르’의 솔로르 역할을 연습 중인 전민철.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발레단이 운영하는 줄리아발레아카데미와 선화예중·예고에서 단단하게 기초를 다진 전민철의 성장 과정을 지켜본 문 단장은 “민철이는 일찍 세계 무대에 진출할 수 있는 재목이었다. 국내에서 볼 일이 많지 않을 것”이라며 “민철이와 국내 관객 모두에게 의미있는 시간이 되도록 유니버설발레단의 전막 작품에 데뷔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 올 여름 마린스키발레단 오디션에 합격한 전민철은 내년 상반기 중 입단해 솔리스트로 활동한다. 아시아 남자 무용수로는 2011년 아시아 출신 최초로 들어가 2015년 최연소 수석무용수가 된 김기민(32)에 이어 두 번째다. 

전민철은 첫 전막 공연 도전인 데다 주역인 것에 대한 부담감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자신감이 묻어났다. “주역 무용수로서 3막까지 극 전체를 힘 있게 이끌어야 한다는 게 가장 부담됩니다. 그러지 못하면 주역 무용수로서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이 ‘얼마나 잘하나’ 하고 지켜볼 것 같은데, 그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관객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라 바야데르’에서 솔로르 역을 맡은 전민철이 니키아 역의 이유림과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라 바야데르’ 공연을 직접 본 적 없다는 전민철은 유니버설발레단이 채택한 마린스키발레단 작품 등 공연 실황 영상을 자주 보면서 연구하고 매일 5시간가량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 중이다. 지난달에는 마린스키 간판 스타이자 그가 본보기로 삼는 김기민을 만나 개인 지도까지 받았다. 김기민은 고전발레를 좋아하는 전민철이 어려서부터 꿈꿔온 마린스키 입단에 도움을 준 고마운 선배다. “솔로르 역에 정통한 형이 첫 등장 때부터 어떻게 하는지 설명하다 ‘연습실로 가자’고 하더니 직접 시범을 보여줬어요. ‘모든 동작에는 이유가 있다. 연기를 할 때 손 하나 꺾더라도 그 동작을 왜 하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는 조언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그후로 동작 연습을 하는 게 수월해졌어요.”

공교롭게 김기민은 전민철의 또다른 본보기인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수석무용수 박세은과 짝을 이뤄 10월30일 개막하는 국립발레단의 ‘라 바야데르’(안무 유리 그리고로비치) 공연에 출연한다. 

“솔로르 역으로 이미 높은 평가를 많이 받은 무용수라 완벽한 솔로르를 보여줄 기민이 형에 비할 수 없겠지만 지금 제 나이에 할 수 있는 솔로르를 표현하려고 최대한 노력하려고 합니다. 기민이 형에게도 처음이 있었을테니까요.(웃음) 저의 첫 발걸음을 기대하고 보러 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요즘 많이 신경쓰는 건 감정 연기다. 어린 나이에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 경험도 없는데 두 여성과 삼각관계에 놓인 솔로르의 복잡한 심경을 실감나게 연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1막 중 니키아와 솔로르가 오랜만에 만나 춤 추는 ‘사랑의 파드 되’ 장면이 대표적이다.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추고 있었는데 문 단장님이 더 많은 감정을 담아야 한다고 주문하셨어요. ‘사랑이 행복하기만 한 게 아니다. 둘은 비밀스러운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달콤하지만은 않고 오랜 그리움과 불안함, 안타까움 등 여러 감정이 섞여 있다’는 거였죠.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내가 사랑을 1차원적으로 생각했구나’ 싶어서 연습 때마다 다양한 감정을 끄집어 내려 애쓰고 있습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과거 ‘라 바야데르’ 공연 장면.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부부의 세계’ 같은 막장 드라마를 비롯해 남녀 간 안타까운 사랑과 미묘한 감정을 다룬 드라마와 영화를 틈틈이 챙겨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7년 전 SBS ‘영재발굴단’ 출연 당시, 무용수의 길을 반대하던 아버지에게 “춤 출 때 가장 행복하다”며 눈물로 호소할 만큼 발레를 좋아했던 전민철이지만 고비도 있었다. 선화예중으로 편입했지만 발레를 제대로 배운 시기가 늦어 또래보다 실력이 떨어지자 의욕을 잃은 것이다. 그러다 중3 때인 2019년 미국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YAGP) 콩쿠르 주니어 부문에 참가한 후 확 달라졌다. “입상은 못했지만 최종전까지 나가고, 콩쿠르에 나온 친구들의 열정을 보면서 깨달은 게 많았어요. 세계적인 무용수가 되고 싶다는 꿈도 생겼습니다.”

전민철은 이후 정말 열심히 춤을 췄다고 한다. 큰 키(184㎝)와 균형 잡힌 몸매에 끈기와 열정을 더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지난해 YAGP 콩쿠르 시니어 파드되 부문 우승으로 군 면제 혜택을 받은 데 이어 그토록 그리던 마린스키발레단에 들어가는 겹경사를 맞았다. 

“(기량만) 세계적인 무용수가 아니라 관객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면서 오래도록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세계적 무용수가 되는 게 꿈입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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