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해 은행예금을 편취했다면 [법조 새내기의 판사체험]
금감원 직원 사칭 후 1400만 원 편취
재판부 A씨에 징역 1년 2개월 선고
“조직적 전문적 범행, 사회적 해악”
<편집자주>
대법원 양형위원회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양형체험 프로그램이라는 게 있습니다. 국민이 직접 판사를 체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어려운 양형절차를 실제사건을 바탕으로 알기 쉽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해놨습니다. 이에 새내기 법조기자로서 직접 선고를 해보면서 독자분들과 함께 양형 판단에 대한 개념을 알아가고자 합니다.
최근 전세사기, 보이스피싱 등 조직적 사기 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재벌 3세를 사칭하며 30억원 대 사기 행각을 벌인 전청조 씨의 경우 1심에서 양형기준을 넘어선 징역 1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지난 6월에는 서울 강서·관악구 일대에서 임차인 355명에게 800억 원 규모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된 세 모녀 전세사기 주범 김 모 씨가 징역 15년을 선고 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전세사기의 경우 사회초년생인 청년들 뿐만 아니라 일부 유명 연예인들도 당할 만큼 피해자 유형이 다양했습니다. 보이스피싱 사기 또한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침투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습니다.
사기는 횡령, 배임 등 주요경제범죄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으로 차지하는 범죄로 80% 이상을 차지합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발생건수 기준으로 사기 범죄는 △2022년 32만 5848 △2021년 29만 4075건 △2020년 34만 7675건 △2019년 30만4472건 △2018년 27만 29건을 보이고 있습니다. 5년 통계 평균으로 매년 30만 건이 넘는 셈입니다. 형법 제347조 제1항(사기)에 따르면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나와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재판부는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요.
#서울경찰서는 7일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해 주부 김모씨의 예금액 1400여만 원을 편취한 혐의로 보이스피싱 운반책 A(35)씨를 체포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에 의하면 지난 달 10일 김모 씨는 자신을 금융감독원 직원이라고 소개하며, 중고거래 사기에 김 씨 명의의 통장이 이용되었다는 A씨의 말에 속아 아들의 대학 등록금으로 모아놓은 예금액 1400여만 원을 모두 인출해 A씨에게 전달했고, A씨는 그 돈을 그대로 들고 달아났다. 이 과정에서 A씨가 자신이 속해있던 보이스피싱 조직과 연락을 끊고 잠적하자, 조직의 우두머리인 B씨가 직접 경찰에 A씨를 신고하면서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다. 본인의 고향집 인근에 도주해있던 A씨는 잠복 중인 경찰에 덜미를 잡혀 체포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순순히 본인의 죄를 인정했다.
15일 대법원 양형위원회 양형체험 프로그램에서 사기 사례를 골라 판사체험을 진행했습니다. 꾸준히 언론에서 나오는 금융기관을 사칭해 보이스피싱을 한 사례였습니다. A씨가 보이스피싱으로 편취한 금액이 1400여만 원으로 상당한 점,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한 점,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 조직적 사기를 한 점을 불리한 요소로 봤습니다. 죄를 인정했다는 점은 재판부에서 유리한 양형으로 볼 확률이 높기 때문에 최초의 선택은 징역 1년 이하 실형으로 정했습니다.
법정공방으로 들어가자 검사와 변호인의 치열한 신경전이 있었습니다. 검사는 사기 조직의 일원으로서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선 주범뿐만 아니라 유인책과 운반책 등 하위 역할 분담자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검사는 “금감원 직원을 사칭한 것은 단순 가담자가 아니라 중요한 역할이다”며 “A씨는 1회 전과로 처벌을 받는 등 진심을 늬우치는 모습도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변호인은 A씨가 단순 가담자로서 양형기준상 특별감경인자를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변호인은 “실행 일부를 담당하긴 했지만 주도적인 위치에서 한 주모자가 아니고 자신의 범죄를 늬우치고 있다”며 “전과도 벌금형을 받았고 동종 전과가 없다”고 맞섰습니다.
검사는 최후 진술에서 “보이스피싱 사기 범죄는 국가기간 및 금융질서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기에 죄질이 나쁘고 사회적 해악이 커서 엄정 대응이 필요하다”며 “가담자에 대해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발본색원해야 된다”고 중형 선고를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변호인은 “범행은 인정하지만 피해자와 합의했고 피해자가 A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A씨도 “마음의 상처를 입은 피해자분께 정말 죄송하다”며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빚만 쌓인 상태에서 보이스피싱에 손을 댄 게 후회가 된다”고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치열한 공방전을 본 후 조직적 사기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살펴봤습니다. 조직적 사기의 양형은 △감경 1년~2년 6개월 △기본 1년 6개월~3년 △가중 2년 6개월~4년입니다. 단순 가담자이고 피해자가 A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 반성도 나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경요소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벌금형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기에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최초 선택과 동일한 징역 1년을 선고했습니다. 법원은 A씨에게 어떤 선고를 내렸을까요.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잘못을 반성하고 있고 피해자와 합의를 봤다”면서도 “피고가 가담한 전자금융사기 범행은 불특정 또는 다수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해 대규모 피해를 야기하며 그럼에도 피해회복이 잘 이뤄지지 아니해 사회적 폐해가 큰 범죄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치밀한 계획 하에 역할을 분담하고 조직적이고 전문적인 범행을 저질렀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번 판결에서는 피해자와 합의한 점(처벌불원)이 특별양형인자로 작용했습니다. 반성은 일반양형인자로 적용돼 양형기준이 감경요소로 반영됐습니다. 양형기준상 권고 형량범위의 특별조정을 보면 특별양형인자에 대한 평가 결과 감경영역에 해당하는 사건에서 특별감경인자만 2개이상 존재하거나 특별감경인자가 특별가중인자보다 2개 이상 많을 경우에는 양형기준에서 권고하는 형량범위 하한을 1/2까지 감경합니다. 이 사건은 특별감경인자가 1개밖에 존재하지 않아 특별조정 영역으로 가지는 않았습니다.
한편 사기범죄가 크게 늘고 있는 상황에서 양형기준이 너무 낮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세모녀 전세가기 주범에 경우에는 입법 한계 상 사기죄 경합 최고형이 15년인 관계로 그 이상의 선고는 할 수 없다는 담당 판사의 말이 있기도 했습니다. 현재 쓰이고 있는 사기 양형기준은 2011년에 처음 만들어져 수정이 한 번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양형기준을 손보기로 하고 내년 3월 사기범죄에 대한 새 양형기준을 최종 의결할 예정입니다.
임종현 기자 s4our@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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