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 남은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제2의 채 상병 사건' 될까

박준규 2024. 9. 15.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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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청문회까지 실시했지만 의혹 소강
당사자 극렬 부인하나 스모킹건 적어
하지만 거짓 치부하기엔 성급한 상황
공수처 및 경찰 수사 결론 관심 높아져
지난달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의 '세관 연루 마약 밀반입 사건 수사 외압 의혹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김찬수 대통령비서실 지방시대비서관실 행정관(전 영등포서장)이 신문에 답하는 백해룡 강서경찰서 화곡지구대장(전 영등포서 형사과장)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세관 연루 마약 밀반입 수사외압'(이하 세관 마약 수사외압) 의혹이 지난여름 정치권을 달궜다. 의혹은 백해룡 화곡지구대장(경정)이 지난해 영등포서 형사2과장 재직 시절 이끌었던 세관 마약 수사가 경찰 상부의 개입으로 방해를 받았다는 것이다. 배후로는 대통령실이 지목됐다.

야권은 사건을 제2의 '채모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으로 몰고 갔다. 청문회까지 개최하는 등 공세를 퍼부었다. 하지만 의혹 당사자들은 완강히 부인했다.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도 떠오르지 않았다. 현재 의혹이 소강상태로 잠잠해진 이유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언제든 의혹이 다시 점화될 수도 있다고 한다. 불씨가 다 꺼진 건 아니라는 얘기다.


갑작스러운 언론 브리핑 연기 지시... 왜?

사건 내용부터 다시금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본보가 10일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등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종합하면 영등포서 형사2과는 지난해 여름 74㎏ 상당의 필로폰이 국내로 밀반입되는 과정에서 인천 세관 직원들이 공모했다는 혐의를 포착했다. 마약 운반책들이 경찰 조사 과정에서 세관 직원들이 협조를 해줬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이다. 필로폰 74㎏은 한 번에 약 246만 명이 투약할 수 있는 분량으로 시가가 2,220억 원 상당이었기 때문에 경찰 지휘부는 많은 관심을 쏟았다고 한다.

사건은 지난해 9월 20일 밤부터 꼬였다. 김찬수 당시 영등포경찰서장(현 대통령비서실 지방시대비서관실 행정관)이 백 경정에게 전화를 걸어 22일 예정됐던 언론 브리핑 연기를 지시한 것이다. 백 경정은 세관 내용을 뺀 채로 언론 브리핑을 한 뒤 현장검증을 나가려고 했으나 김 전 서장은 증거인멸 우려 등을 문제 삼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백 경정과 경찰 지휘부는 충돌했다. 백 경정은 10월 5일 서울청 지휘부로부터 연기된 언론 브리핑에서 '세관 내용을 제외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이튿날에는 서울경찰청 광수단 마약수사대로 사건을 이관하는 논의까지 하게 됐다. 결국 백 경정은 10월 10일 세관 관련 내용을 뺀 채로 언론 브리핑을 했다. 다만 사건 이관은 무산돼 영등포서 형사2과에서 수사를 이어나가게 됐다.


백 경정 수사 외압 폭로...근거는?

우종수(왼쪽) 국가수사본부장이 지난달 2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열린 마약수사 외압 의혹 관련 청문회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오른쪽은 조지호 경찰청장. 고영권 기자

백 경정은 이런 과정에서 수사외압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특히 김 전 서장이 언론 브리핑 연기를 지시하면서 "'용산(대통령실)에서 사건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는 외압의 정황도 뚜렷하다고 얘기한다. 주요 사건을 요약하면 ①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이 김 전 서장과의 전화 이틀 전인 9월 18일 비공개 오찬을 하면서 이태원 참사 관련 얘기를 했고 ②관세청 고위 관계자들이 직접 찾아와 언론 브리핑 자료에서 세관 내용이 빠지는지 확인했으며 ③지휘라인이 아닌 조병노 전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도 10월 5일 백 경정에게 전화를 걸어 세관 내용 제외 여부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특히 백 경정은 "조 전 생안부장이 전화에서 세관 내용이 빠진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야당 도와줄 일이 있느냐. 올바른 스탠스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백 경정은 수사 방해도 얘기했다. 사건이 실제로 서울청에 이첩됐다가 다시 형사2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수사팀이 해체됐고, 이후에는 사건을 담당하는 검찰 수사팀도 교체된 뒤 비협조적으로 돌변했다는 것이다.

백 경정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①대통령실이 배후에서 관세청에 유리하게 또는 모종의 이유로 사건 축소 또는 은폐를 지시했고 ②경찰 지휘부가 이를 따라 수사를 무마하려고 했다는 얘기가 된다. 여기다,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김 전 서장은 대통령실 비서관으로, 김봉식 전 서울청 수사부장은 서울경찰청장으로 부임하는 등 '승진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반면 백 경정은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


외견상으론 분명 채 상병 수사외압과 유사한데...

이 사건은 그래서 '제2의 채 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으로 주목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특히 사건에 주목하는 이유다.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지난해 7~8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어기고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소장)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인정한 채로 수사기록을 경찰에 이첩했다가 오히려 항명죄로 기소를 당하면서 불거졌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가 있었거나 임 전 사단장을 구하기 위해 김건희 여사 등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개입했다는 게 핵심이다. 즉 두 사건은 ①수사 책임자의 폭로로 ②최고 권력이 누군가를 구하거나 모종의 이유로 개입해 ③수사를 방해받은 의혹이 생겼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임성근 구명로비설'에서 등장하는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세관 마약 수사무마 의혹에도 나온다. 이 전 대표가 지난해 8월 9일 김규현 변호사와의 통화에서 조 전 생안부장을 언급하며 '승진에 관여하고 있다'는 취지로 언급한 녹취록이 공개됐다. 이 전 대표는 김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피고인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공통점에 김 여사와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전 대표까지 나오며 두 사건 간의 연결성은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청문회까지 열었는데...당사자들은 극구 부인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가 보직 해임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리는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7차 공판 출석에 앞서 기자회견에 참석해 있다. 뉴시스

야권은 지난달 20일 이런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청문회를 열었으나 힘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가장 주요한 이유는 의혹의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문회에서 백 경정의 폭로는 내내 반박을 받았다. 외압 의혹의 핵심인 김 전 서장은 대통령실 얘기는 꺼낸 일 자체가 없다고 주장했다. "백 경정이 지난해 10월 말 김 전 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실을 언급하지 않았냐'고 말하자 침묵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화를 냈었다"고 반박했다. 김 전 서장은 특히 "진짜 용산에서 부탁을 받았다면 언론 브리핑 연기 지시뿐만 아니라 모든 걸 깔끔하게 처리해야 됐었지 않겠나"라며 "백 경정을 (다른 곳으로) 발령시키고 압수수색도 못 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항변했다.

각 기관도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우선 경찰과 관세청 모두 수사외압 및 로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경찰 측은 함부로 세관이 연루된 정황을 발표했다가는 피의사실 공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언론 브리핑에서 관련 내용을 빼라고 지시한 건 정당했고, 사건 이관은 검토만 했을 뿐 실제 이관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관세청 측은 백 경정을 찾아가서 세관 관련 내용이 언론 브리핑에서 빠졌는지를 확인한 건 맞지만 정당한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주요 사건에서 증언이 꽤 다른 부분도 많았다. 예컨대 김 전 서울청장은 오찬 당시 이태원 참사를 얘기한 적이 없다고 했다. 백 경정은 지난해 10월 5일 서울청의 지시를 받고 언론 브리핑 내용을 협의했다고 주장했으나 서울청 간부들은 하나같이 백 경정이 먼저 브리핑 협의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정리하면, 백 경정이 주장하는 기초적 사실관계는 일부 사실로 확인됐으나 수사외압 의혹의 핵심적 내용에 대해서는 입장이 판이하게 달랐던 것이다.


부재한 스모킹건...의혹 뒷받침할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

그에 반해 스모킹 건은 나오지 않았다. 백 경정은 김 전 서장이 대통령실을 언급했다는 녹취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조 전 생안부장이 지난해 10월 백 경정과의 통화에서 "대통령실에서 또 전화가 왔어요?"라고 말은 했지만 '또'가 두 번째를 의미하는 것인지, 대화 도중 흔히 쓰는 부사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관세청 측이 백 경정을 직접 찾아온 사실 외에 대통령실 또는 경찰 고위 간부와 접촉했다는 의심은 현재로서는 근거가 희박하다. 백 경정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뒷받침할 자료가 아직은 넉넉지 않은 것이다.

백 경정이 정황 증거를 다수 확보해 여론전을 펼칠 방법도 묘연하다. 채 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의 경우 박정훈 대령 측이 군사법원 재판부를 통해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임기훈 전 대통령실 국방비서관 등 주요 외압 의혹 당사자의 통신기록을 얻어낸 덕에 대통령실이 정말로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개입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한층 거세졌다. 하지만 백 경정 사건에서 이런 공식이 통하기는 쉽지 않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관련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나 수사기관으로부터는 수사 중인 자료를 받을 수 없다. 백 경정이 관련해 따로 재판을 받고 있는 게 아니라 다른 기관을 통해 통신기록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그 이상의 증거는 당연히 수집이 어렵다.

의혹을 뒷받침해줄 백 경정의 편도 부족하다. 박 대령은 초반에 항명 혐의를 받았을 당시 해병대 수사단 부하들이 박 대령을 두둔하는 취지의 진술도 군검찰에 많이 했었다. 하지만 그나마 백 경정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경찰들은 입을 닫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이 21명의 증인이 출석한 청문회에서 백 경정을 두고 "20대 1로 싸우고 있다"고 말한 건 허언이 아닌 셈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의 한 민주당 의원은 "백 경정을 도와주는 증언이 한 명이라도 있거나 자료라도 좀 나와서 의혹이 짙어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불씨는 남아 있다...공수처 수사에 주목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지만 의혹이 거짓이라고 단정 지을 상황은 아니다. 수사가 진행 중인 데다 백 경정이 굳이 직을 던져가면서까지 권력과 맞서 싸울 이유를 상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사외압의 정황에 관한 진술도 나름대로 일관성이 있다. 또 다른 민주당 의원은 "처음에는 백 경정 진술밖에 없어서 긴가민가했지만 청문회를 할수록 수상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어느 수준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검찰과 관세청 등을 움직인 보이지 않는 손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외압 의혹을 전면 부인한 김 전 서장에 대해서는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청와대에 불려가는 사람이라 당연히 그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다"며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변수는 언제든 등장할 수 있지만 현재로서 이 사건은 공수처 수사가 가장 중요해 보인다. 단기적으로는 통신기록 확보가 관건이다. 통상 수사 초기에는 참고인 조사와 통신기록 확보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데, 이 작업이 더뎌지면 실체적 진실 발견이 쉽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지금처럼 통신기록 보존 기한(1년)이 조만간 만료되는 상황에서는 통신기록 확보 여부가 더욱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는 결론을 예단하지 않은 채 신중하게 진실 규명에 나설 필요가 있다.

공수처 수사와는 별개로 경찰의 세관 마약 수사 결과도 주목을 받는다. 경찰은 마약 밀반입범들은 송치했고 일부는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아직 세관 직원들에 대해서는 수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경찰은 세관 직원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진술을 더욱 강화할 물증을 아직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청문회에서 "수사가 1년 정도 지났고 아무래도 여론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으니까 결과를 빨리 내겠다"고 말했다.

만약 경찰이 세관 직원들을 불송치하면 외압 의혹은 한풀 꺾인다. 백 경정이 강하게 밀어붙였던 수사의 정당성이 약화되는 반면 고위 간부들이 언론 브리핑을 연기하거나 및 세관 내용을 빼라고 한 지시는 오히려 타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송치를 할 경우엔 반대의 효과가 발생한다.

채 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도 처음에는 박 대령이 강한 의심과 공격을 받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판국은 확연히 달라졌다. 많은 장애물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세관 마약 수사 무마 의혹도 어떻게 전개될지 모른다. 김 전 서장과 백 경정은 각각 '둘 중 한 명은 위증을 하는 것'이라는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면서 서로를 위증범으로 지목했다. 현재로선 단순한 스캔들인지, 실체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수사기관이 철저하게 수사해서 진실을 밝혀낼 필요성이 커진 것은 맞다. 온 국민의 시선이 다시 한번 공수처에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준규 기자 ssangkk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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