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만 있는 '이 병'…명절 때 응급실 실려 가는 의외의 이유
매년 온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즐거워야할 명절만되면 두통, 짜증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른바 스트레스성 질환인 '명절 증후군'이다.
명절증후군은 우울·불안·초조·불면·무기력·분노 같은 정신 증상뿐 아니라 어지럼증, 두통, 소화불량, 복통, 심장 두근거림, 피로감 등 신체 증상으로도 나타난다. 실제로 심정지 발생률이 평일보다 명절에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심장내과 연구팀이 2012~2016년 전국 응급실을 찾은 '병원 밖 심정지' 환자(사고·자살 제외) 9만5066명을 분석했더니 설·추석 연휴에 하루 평균 60.2명이 심정지로 쓰러졌는데, 이는 평일(51.2명), 주말(53.3명), 공휴일(52.1명)보다 많았다.
이 같은 두통, 짜증, 복통, 우울함 같은 증상은 명절 1~2주 전부터 나타난다.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서은 교수는 "오랜만에 많은 가족이 모이면서 가족 관계 이면의 갈등이 원인이 돼 다양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증가한다"며 "명절증후군 대부분은 명절이 지나고 나면 사라지지만 자칫 우울증과 같은 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명절증후군, 명절 전후 2~3일 동안 가장 심해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은 긍정적이고 즐거운 행사여야 한다. 다만, 이 과정 중 대처 능력이 떨어지거나 미숙하게 대응하고, 가족이나 친척 간의 갈등, 불협화음, 낮은 자존감, 열등감 등이 유발되면 명절은 부담스러운 연례행사가 된다.
명절증후군은 정신의학적으로 명절이라는 사건에 불편함을 보이고 '부적응 상태'를 보이는 것을 말한다. 대개 긴 연휴의 명절 전후 2~3일 동안 제일 심한 증상을 보인다. 연휴 전 1주일 정도 심하게 겪는다. 그러다가 명절을 지나고 나면 증상이 사라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명절 후 후유증이 2주 이상 계속되면 적응장애, 또는 우울증이나 신체형 장애 등을 의심해볼 수 있다. 또 주부들의 경우 명절증후군이 주부우울증으로 진행될 때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증상이 만성화되지 않도록 대응해야 한다.
조서은 교수는 "이 증후군은 전통적인 관습과 현대적인 사회생활이 공존하는 우리나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한국의 문화관련 증후군(culture-related syndrome)"이라며 "핵가족화된 가정의 구성원들이 명절에만 갑자기 공동가족군으로 합쳐짐으로써 일어나는 여러 가지 육체적, 심리적 고통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명절증후군은 많은 식구가 한자리에 모이면서 발생하는 번잡함이나 과다한 일거리, 나아가서는 남녀불평등, 고부갈등 등이 두드러져 유발한다. 또 다양한 가족들 간 이면에 감춰진 시댁에 대한 부담감, 동서 간의 경쟁의식, 형제자매간의 비협조, 생활 경제 수준의 차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심지어 명절 대목에 맞춰 치솟는 물가, 고향을 오가는 길의 교통체증까지 겹쳐 이러한 증후군의 심도를 높인다.
취업·결혼·임신·출산 계획 묻지 말아야
명절증후군은 앓는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 가족들의 배려가 반드시 있어야 극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랜만에 만난 친지에게 '취업은 했으냐?', '결혼은 언제하느냐?', '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 '둘째 계획은 없느냐'와 같은 질문은 사소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당사자에게는 예민하게 다가올 수 있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상대를 난처하게 할 수 있는 질문은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또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는 듯한 발언 역시 하지 않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명절 기간 가족 간 갈등을 유발하지 않는 방법으로는 크게 ▲가사 노동의 부담 ▲경제적 부분 조율 ▲마음을 열고 긍정적인 대화 ▲전통적 가치관의 인식 변화 등을 꼽을 수 있다.
가사 노동은 모든 가족구성원이 나눠서 분담해야 한다. 조상을 위해 차례상을 준비할 때 손 하나 까딱거리지 않는 식구들을 보면 불만이 쌓인다. 게다가 이를 표현 못하고 안으로 삭혀야 한다.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이다 보니 불편한 가족 관계 내에서 생기는 이면 속 갈등은 심리적 갈등과 압력을 가중한다.
선물이나 경비 부담 등 경제적 부분은 가족들 형편에 맞춰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사전에 조율해야 한다. 경제적인 부분은 사소한 곳에서 감정이나 자존심 상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가족 간 사전에 세심하게 이 부분은 조율하게 필요하다.
가족 간 대화는 서로 마음을 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 간 평상시의 교류가 중요하다. 대개 명절 기간 중 힘들게 모여서는 식사만 하고 교통 사정을 핑계로 곧 헤어지는 가족이 많다. 대부분 할 일이 없고 대화가 시작되면 곧 기분 나쁜 언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관계 개선을 도모하기보다는 평소 가족 개인과 개인끼리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통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혀 남녀 불평등을 주장하면 곤란하다. 기존의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현재의 세대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마찰만 일으킬 뿐이다. 가사 노동은 남녀 누구든 나눠서 한다.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강승걸 교수는 "가족끼리 오랜만에 만났다면 상대의 입장을 살펴 예의를 지키고, 취업·결혼·임신·출산 같이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주제는 가급적 삼가는 것이 좋다"며 "가족 간에는 서로 편안한 주제의 대화를 나누고, 전체 구성원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오락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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