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10월 마비설’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김태훈 2024. 9. 1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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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인 1988년 출범한 헌법재판소는 1기 재판부 인원 구성부터 난항을 겪었다.

JP가 국회의 재판관 선출 절차를 지연시킴에 따라 헌재의 공식 출범 일정 자체가 뒤로 미뤄지는 촌극이 빚어졌다.

1994년 2기 재판부 구성 당시 야당은 "국회 몫 재판관 3명 중 2명은 여야가 1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1명은 여야 합의로 선출하자"는 주장을 폈다.

국회 몫 재판관을 선출할 시기가 되자 1988년의 전례가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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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인 1988년 출범한 헌법재판소는 1기 재판부 인원 구성부터 난항을 겪었다. 전체 재판관 9인 가운데 국회 몫으로 배정된 3인 때문이다. 당시 국회엔 여당이자 원내 1당인 민정당, 야당이자 2당인 김대중(DJ) 총재의 평민당, 3당인 김영삼(YS) 총재의 민주당, 그리고 4당인 김종필(JP) 총재의 공화당까지 4개의 원내교섭단체가 있었다. DJ와 YS는 의석수로 따져 상위 3개 정당이 1명씩 재판관을 추천하는 안에 합의했다. 뒤늦게 이를 안 JP는 강하게 반발했으나 의석수에서 밀려 어쩔 수 없었다. JP가 국회의 재판관 선출 절차를 지연시킴에 따라 헌재의 공식 출범 일정 자체가 뒤로 미뤄지는 촌극이 빚어졌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청사 전경. 세계일보 자료사진
1990년 민정당·민주당·공화당의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이 출범하며 우리 정치 구도는 양당제로 개편됐다. 1994년 2기 재판부 구성 당시 야당은 “국회 몫 재판관 3명 중 2명은 여야가 1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1명은 여야 합의로 선출하자”는 주장을 폈다. 거대 여당은 이를 묵살하고 다수당인 여당이 재판관 2명, 소수당인 야당은 재판관 1명만 각각 지명하는 방안을 고수했다. 영락없는 ‘다수의 횡포’였다. 그런데 2000년 이후 과거 야당의 논리가 여야 모두에 의해 수용됐다. 양당제 아래에서 재판관 3명 중 2명은 여야가 1명씩, 그리고 1명은 여야 공동으로 추천하는 것이 일종의 관행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2018년 양당제는 무너지고 원내에는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바른미래당 3개의 교섭단체가 있었다. 국회 몫 재판관을 선출할 시기가 되자 1988년의 전례가 부활했다. 의석수대로 상위 3개 정당이 1명씩 재판관을 추천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현 이종석 헌재소장과 김기영·이영진 재판관이 탄생했다. 그런데 이들의 6년 임기가 끝나는 오는 10월을 기준으로 바른미래당은 진작 사라졌고 국민의힘과 민주당만 남았다. 그렇다면 이영진 재판관 후임자는 누가 추천해야 할까. 2000년 이후 양당제 하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야가 1명씩 지명하고 나머지 1명은 여야 합의로 추천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2018년 10월 국회 몫 헌법재판관으로 선출된 3인이 취임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추천한 이종석 현 헌재소장, 옛 바른미래당이 추천한 이영진 재판관,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김기영 재판관. 연합뉴스
하지만 거대 야당이 주도하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권의 속내는 그게 아닌 듯하다. 170석을 가진 민주당은 국민의힘(108석)과의 의석수 격차를 근거로 ‘재판관 3명 중 2명을 민주당이 지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 원내 3당인 조국혁신당은 ‘의석수로 따져 상위 3개 정당이 1명씩 추천하자’는 논리를 들이밀 것이 뻔하다. 2000년 이후 양당제 아래에선 여야가 1명씩 낙점하고 나머지 1명은 여야 합의로 선출해 온 것이 관행이다. 조국당이 원내 3당이긴 하나 의석수가 12석에 불과해 교섭단체 구성 요건(20석 이상)에 한참 못 미친다. 1988년 이래 교섭단체가 아닌 정당이 재판관을 추천한 사례는 전무하다. 항간에는 국회 몫 재판관 선출을 둘러싼 여야 간의 극심한 정쟁으로 10월 퇴임하는 재판관 3명의 후임자를 아예 못 뽑을 것이란 관측이 파다하다. 이른바 ‘헌재 10월 마비설’이다. 헌재가 뭔가 결정을 내리려면 재판관이 최소 7명은 필요한데 6명뿐이니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순리대로 협의해 그런 사태가 결코 발생하지 않도록 막아야 할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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