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주 "현실엔 사이다 없죠"…고구마들의 연대 '백설공주' [인터뷰M]
"이 세상에는 단 한 번도 사이다가 있던 적이 없어요. 고구마들이 버티니 세상이 달라지는 거라 믿어요."
'백설공주'가 날아올랐다. 입소문을 타고 시청률이 상승하는 요인에는 분명 연출자 변영주의 지대한 역할이 있다는 평이다. 그를 직접 만나 드라마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최근 변영주 감독은 서울 상암MBC 사옥 인근 카페에서 MBC 금토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블랙아웃'(극본 서주연·연출 변영주, 이하 '백설공주') 관련 iMBC연예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백설공주'는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살인 전과자가 된 청년 고정우(변요한)이 10년 후 그날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담은 역추적 범죄 스릴러 드라마. 고정우를 중심으로 형사 노상철(고준), 톱스타 최나겸(고보결), 대학생 하설(김보라)의 치열한 진실 추적기를 그린다.
작품에는 훈풍이 불고 있다. 9회 시청률은 6.5%(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하며 5주 연속 상승세에 올랐다. '매주 금요일에 개봉하는 기분'으로 시청률을 확인한다는 변 감독. 나날이 늘어나는 호평에 "배우들에게 고맙다는 생각뿐"이라며 "무거운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들 덕분에 시청자들이 버텨주며 본다고 생각한다"고 감사를 전했다.
2년 전 촬영을 마친 '백설공주'는 표류 끝에 MBC에 편성돼 가까스로 시청자들을 만나게 됐다. 변 감독은 "공개되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했었다. 다른 생각은 없었다. 배우들의 멋진 모습에 만족했었고, 빨리 시청자들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14부작인 '백설공주'는 어느덧 5회만을 남겨두고 있다. 앞으로의 시청률 기대도 있을 터. 변 감독은 조심스럽게 "두 자리는 보고 싶다. 그게 억지일지언정. 반올림하더라도 두 자리가 나온다면 신기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사이다' 장르가 주류가 된 드라마 시장 한가운데, '백설공주'는 스릴러 장르다운 긴 빌드업으로 우직하게 제 갈길을 가는 작품이다. 답답하다는 뜻으로 '고구마' 전개라는 일부 시청자들의 이야기에, 변 감독은 당연하다는 듯이 순응했다.
변 감독은 "이 장르는 몇 년전부터 영화에서도 외면받아왔던 장르다. 어느 순간부터 불호 장르가 됐지 않나. 마지막까지 안 보면, 통쾌함을 가질 수 없는 장르다. 미스터리 스릴러는 '고구마'를 필연적으로 동반할 수밖에 없다"며 "사건을 한 번에 해결해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엉키게 하고,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마지막에 해결하는 통쾌함을 준다. 채널이나 투자사에서도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고 가장 잘할 수 있기에 걱정과 고민도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꿀고구마'라는 반응도 따라왔다. 고정우가 진범의 흔적을 찾으며 자신의 누명을 서서히 벗어나가는 과정이 마냥 '고구마'처럼 답답하지 않고 흥미롭게 다가온다는 반응이었다. 변 감독은 "난 장르와 상관없이 인간으로서도 사이다를 좋아하지 않는다. 들을 때나 맛볼 땐 통쾌할지 몰라도, 이 세상은 사이다로 해결된 적이 없지 않나. 고구마들이 버티기 때문에 세상이 달라지는 거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8화에서 건오가 끝내 자백을 하지 않았을 때, 시청자 분들이 많이 답답하셨을 거다. 그렇지만 건오가 자백을 한다고 이 모든 죄인이 처벌받게 할 수 있을까. 자백으로 사건이 해결되는 게 정말 재밌을까? 이 사건은 건오가 아닌 상철과 정우, 하설이 해결해줘야 한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이미 유명한 동명의 독일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만큼, 결말을 알고 보는 시청자들도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 작품의 숙제. 변 감독은 "결말을 모르기 때문에 궁금한 작품이 아닌, 결말을 찾아가는 과정의 재미가 있어야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영화 감독으로서 '백설공주'를 드라마 첫 연출작으로 택한 그다. 영화와 드라마의 문법이 서로 달라, 어려웠던 지점이 분명했다고. 예컨대 매 회 엔딩을 '쫄깃하게' 만들어 배치하는 일이 영화 감독으로서 생소했던 작업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변 감독은 "'백설공주'에서 내가 제일 못한 거였다. 정말 어려운 일이고, 기능적인 공부가 필요했다. 시청률이 오르면 너무 고맙지만, 동시에 반성의 시간도 가졌다. 내게 어려운 방식의 이야깃거리가 필요한 매체구나 다시금 느꼈다"며 "엔딩을 모르는 상태에서 작품을 한다는 것도 첫경험이었다. 대사를 바꿨는데 결말에 큰 영향을 미치면 어떡하지, 고민도 했었다"고 설명했다.
원작의 사건 해결 스토리와 비교해서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일 터. 변 감독은 "이렇게 방어벽을 완벽하게 쌓아 올린 사람들 속에서, 정우와 상철은 어떻게 실마리를 잡을 것인지, 누가 사건을 은폐하고 조작했는지. 결국 다은이의 사체는 어떻게 찾았고 수오는 뭘 봤는지 주목해달라. 그리고 노상철은 생각보다 유능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결말에 대해서도 기대를 당부했다. "어떤 악인도 빠져나가지 못할 거다. 그리고 정우네도 다시 행복해지려고 애를 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요한의 연말 연기대상 수상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변 감독은 "당연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렇게 매 회마다 맞고 끝나는 애는 없지 않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배우들이 상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한 명이 몰고가는 드라마이지 않나. 고정우의 동선에 따라 모든 게 이뤄지는 드라마다. 변요한이 칭찬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전했다.
스릴러 장르 대가로 손꼽히는 변 감독에게 '백설공주'는 긴 휴식기 끝에 내놓은 소중 작품이기도.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한 시점은, 배종옥 배우와 이야기를 나눠을 때였다. 연기를 너무 잘하신다. 저 사람의 긴 리즈시절 중에 이제야 겨우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분하고 억울하더라. 난 사실 게으른 사람이다. 노는 걸 제일 좋아하고, 방송 출연을 한 것도 먹고 살기 위한 거였다. 하다 보니 재밌어진 경우다. 이 날 처음 반성했고, 다르게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그 이후로 어디서 제안이 오는 걸 다 받았다. 적어도 3년에 두 작품은 해야겠다 싶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다른 장르에 대한 욕심도 있다고. "개인적으로 옛날부터 드라마를 하고 싶었다. 특히 사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귀띔했다.
'백설공주'가 배우들에게 '출세작'으로 대표되는 드라마이길 바란다고도 밝혔다. "시청자들에게는 재방송도 보게 되는 드라마였으면 좋겠다. 몇몇 배우들은 출세작이었으면 한다. 그러면 내게 기쁜 일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iMBC연예 백승훈 | 사진출처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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