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포럼에서 드러난 '남성 편중'... 尹 정부 '성평등' 거꾸로 간다[문지방]
지난해 강연자 전원 남성, 패널 25명 중 여성 4명
해외서는 남성 패널 일색 비판 신조어 '매널' 등장
윤석열 정부 이후 성평등 퇴행...국제사회 우려 ↑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각 세션 주제에 맞는 국제사회 한반도 문제 전문가를 초청하기 위해 해 불가피하게 다수의 남성 연사로 구성됐다."
통일부
최근 남성 일색 포럼 참여자 구성으로 비판에 직면한 통일부의 해명입니다. 지난 3일 통일부 주최로 열린 국제한반도포럼(GKF)에 앞서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대사는 불참을 통보했습니다. "패널 구성이 성평등하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처음 발표 내용을 기준으로 전체 연사 21명 중 1명만이 여성이었습니다. 비판이 일자 통일부는 급하게 여성 패널을 7명으로 보강했습니다. 이로써 포럼 패널 중 여성 비율은 5%에서 26%로 늘었습니다.
통일부는 이번 논란의 원인을 '일정 조율' 문제로 돌렸습니다. '의도된 성차별'이 아닌 '일시적인 우연'이라는 취지입니다. 그러면서 "젠더 다양성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성별과 관계없이 국제 회의에 능력과 실력이 있는 전문가를 초청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남성 일색 패널 구성, 일시적 현상이었을까
올해 GKF는 2010년부터 통일부가 매년 개최해온 한반도국제포럼(KGF)을 확대한 것입니다. 사실상 해마다 명칭을 조금씩 바꾸며 14년째 이어져오고 있는 연례행사인데요. 과연 과거 포럼에서는 참석자들의 성별이 균형 맞게 구성됐을까요.
우선 지난해 8월 말 '북핵, 인권, 그리고 통일'이라는 주제로 이틀간 열린 KGF는 이동선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소장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축사로 개회됐습니다. 기조연설은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맡았습니다. 모두 남성입니다.
기조 강연 2개와 특별 강연 1개도 남성의 몫이었습니다. 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대 정치학과 교수,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장이 기조 강연을 맡았고, 탈북민의 삶을 증언하는 특별 강연조차 남성으로 채워졌습니다.
간헐적으로나마 여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6개의 토론 세션뿐이었습니다. 그마저도 5, 6명으로 구성된 하나의 조에 여성 한두 명을 포함한 수준입니다. 이튿날 '한반도 통일을 위한 국제협력' 세션 참가자는 전원 남성이었습니다. 전체 세션에 참여한 좌장과 발표자 25명 중 여성은 4명(중복 제외)뿐이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도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2년 전 권영세 장관 시절 이 포럼은 '한반도국제평화포럼(KGPF)'이라는 이름으로 개최됐습니다. 당시 단체 사진을 보면 32명 중 여성은 3명뿐입니다.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18 한반도국제포럼' 단체 사진에는 17명 중 3명이 여성입니다. '불가피한 일정' 때문이라는 통일부의 해명보다는 '의지의 문제'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입니다.
WEF가 공동 의장을 모두 여성으로 채운 이유
일찌감치 '젠더 다양성'을 활발하게 논의해온 서구권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비판하는 '매널(manel)'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어요. '남성(male)'과 '패널(panel)'의 합성어로, 여성 참여자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남성 중심 행사를 의미한답니다. 한 유럽연합 회원국 대사관 관계자는 "행사 개최 시 참가자 성비는 가장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사항"이라며 "단체 사진을 찍었을 때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를 고려하면 답이 나온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보스포럼의 공동의장 7명을 모두 여성으로 지명한 2018년 세계경제포럼(WEF)이 통일부에 귀감이 될 것 같습니다. 매년 1월 정치·경제·학계의 거물들이 모여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다보스포럼은 남성 중심 행사라는 오랜 비판을 받아왔는데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승부수를 던진 겁니다. 48년 포럼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 밖에도 여성 전문가를 공개토론에 섭외하도록 돕는 '펨패널(fempanel)'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지요.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윤석열 정부 성평등 인식
최근 국제 사회에서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윤석열 정부 아래에서 퇴행하는 한국의 성평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한국대사관 앞에는 국경 불문 여성 100여 명이 모여 성차별을 묵인하는 한국 정부와 딥페이크 성범죄를 규탄하는 연대 시위를 열었습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도 성명을 내고 "한국 정부의 무대응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어요. 지난 6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방침에 우려를 표명하고 부처 기능 유지를 권고했지만 여가부 장관은 반 년 넘게 공석입니다. 이번 통일부 포럼 성비 논란은 이 모든 경고를 내포하는 하나의 징후일지도 모릅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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