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밥상 민심 있다? 없다?

이유진 기자 2024. 9. 1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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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이 13일 공개한 ‘추석 대국민 인사 영상’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명절 인사를 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추석 밥상에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올리기 위한 정치적 술수로 판단한다.“
- -지난 9일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
“야당을 끌어들여서 중재자 한동훈을 명절 밥상에 올려놓고 싶은 게 아닌가.”
- -지난 11일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

추석 연휴를 앞두고 국회에선 추석 밥상머리 민심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여야의 샅바 싸움이 치열하다. 급기야 민주당이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12일 본회의 강행을 꾀했던 김건희 특검법·채 상병 특검법·지역화폐법을 두고는 ‘추석밥상법’이란 별칭이 붙었다. 이들 법안의 상정은 우원식 국회의장이 의정갈등 해소가 우선이라며 만류해 추석 이후로 미뤄지게 됐다.

국민의힘도 밥상 민심 주도권을 잡기 위해 분주하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의료 불안 해소를 위한 여야의정협의체 구성에 사활을 걸었다. 국민의힘은 지난 11일 당 대표 명의로 의협 등 의료계 단체 15곳에 협의체 참여 요청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주요 단체가 불참을 통보하며 추석 전 출범은 어렵게 됐다.

명실상부 올 추석 밥상 민심의 주인공은 김건희 여사가 될 전망이다. 김 여사는 명품가방 수수 사건에 대해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불기소 권고 결정을 한 뒤 광폭 행보에 나섰다. 대통령실은 지난 10일 김 여사의 마포대교 도보 순찰 사진을 공개했다. 지난 13일 공개된 ‘추석 대국민 인사 영상’에도 윤석열 대통령과 김 여사가 함께 등장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지난 9일 대정부질문에서 언급한 “김건희 대통령, 윤석열 영부남”은 정치권 유행어가 됐다.

밥상머리 민심 “있다”···공론장 기능은 ‘글쎄’
지난 7월25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방송장악법 거부 피켓을 들고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민주당 의원들이 순직해병특검법 표결 찬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포털사이트 네이버 뉴스 검색 기준 ‘밥상머리 민심’이 맨 처음 등장한 건 2008년 9월 첫 주, 추석 연휴를 앞둔 시점이다. 언론은 “청와대가 추석 밥상머리 민심을 다잡기 위해 서민형 대책을 무더기 발표했다”고 했다. “흉흉한 추석 민심에 어청수 경찰청장 경질론이 여권 내에 급부상하고 있다”고도 했다. ‘명절’과 ‘민심’이 함께 언급된 보도는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밥상머리와 민심이 결합한 신조어의 등장은 이맘때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밥상머리 민심은 실존하는가. 전문가들의 답은 “그렇다”이다. 다만 그 영향력이 날로 줄어들고 있다는 게 공통의 진단이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명절 때마다 ‘민족 대이동’이 일어나 전국 곳곳에서 만남의 광장이 열렸다”며 “진영을 떠나 한자리에 모인 이들이 정치 이슈를 포함해 여러 대화를 나누게 되면 그걸 밥상머리 민심, 설·추석 민심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는 여전히 유효한 동시에 ‘옛말’이 된 측면이 있다”며 “노년층도 유튜브를 통해 정치 이슈를 상시로 접하게 돼 자녀에게 새롭게 들을 정보가 없게 됐다. 제사 문화가 쇠퇴하고 일일생활권이 구축되면서 자녀 세대가 고향에 머무르는 시간도 줄었다. 밥상 민심이 형성될 물리적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교통·통신의 발달 이외에도 심화하는 극단의 정치가 밥상머리 민심의 쇠퇴를 가져왔다는 분석도 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87년도 민주화 이후엔 정치 이슈를 부담 없이 서로의 공론장에 올려 이야기할 수 있던 시절이 있던 건 사실이다. 명절 제사상, 밥상 앞이 공론장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엔 식구끼리 정치 이야기를 해도 상대방 의견을 수용하며 일정 정도의 상호작용이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홍 소장은 노무현 정부를 기준으로 밥상머리 민심의 공론장 기능이 쇠퇴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전후로 진보와 보수가 극단으로 나뉘게 됐다”며 “탄핵 사건이 있었고, 퇴임 이후 검찰 수사로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게 되면서 여야 공론의 장에서 각 진영이 자기들끼리만 대화하는 구도로 바뀌게 됐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밥상머리 여론이 진영 내 공론장에만 영향을 미치는, 논리 강화의 장으로 변질이 됐다”며 “요즘도 토론이 있긴 하지만 진영 논리만 강화하다 보니 실제 계량적으로 나타나는 지지율 변화는 크지 않다. 중도층을 움직여 균형을 깨뜨릴 만한 표심 변화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론 프레임으로 재생산···미래에도 쓰일까
설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2월8일 서울역 KTX 승강장에서 귀성객들이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에 탑승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정치 양극화로 가족·지인 간 정치 이야기를 꺼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종합교육기업 에듀윌이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20∼40대 성인남녀 114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13.2%는 명절 갈등 유발 소재로 ‘정치적 견해’를 꼽았다. 8명 중 1명꼴로 구성원 사이에 지지 정당이 다르거나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점이 가족의 갈등 요인이 된다고 답한 셈이다.

명절에 고향을 찾는 이도 점차 줄고 있다. 한국 갤럽이 지난해 1월 설 연휴를 앞두고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 연휴 이동 계획’을 물은 결과 응답자의 약 59%는 고향 방문과 여행 모두 계획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특히 18~29세와 30대는 10명 중 4명 이상이 설 연휴 이동계획이 없었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밥상머리 민심이 여전히 주요한 화두다. 한 정당 관계자는 “실제로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느냐 아니냐 문제보다는 언론이 밥상머리 민심, 명절 민심을 키워드로 이슈를 재생산한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명절 민심’이란 프레임을 통해 이슈 주도권을 쥐는 게 목적이란 것이다. 다른 정당 관계자는 “정치인들은 여론에 민감한데 언론에서 밥상 민심을 언급하며 프레임을 잡으니 당연히 이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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