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가해자 신상 털었던 폭로 유튜버들…'베테랑2' 해치의 현실 [영.실.이]

차유채 기자 2024. 9. 1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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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영화보다 현실은 더 혹독하고 잔인하다고들 합니다. [영.실.이]는 영화 같은 실화 이야기, 영화나 드라마의 모티브가 된 실화 사건을 다룹니다.

영화 '베테랑2' 속 가해자들의 신상을 폭로하는 데 앞장섰던 폭로 유튜버 박승환 역의 배우 신승환 /사진='베테랑2' 측 제공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베테랑2'는 사적 제재를 하는 '해치'라는 인물과 관련해 등장인물들이 겪는 정의와 신념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주차 시비 끝에 임산부를 밀어 넘어뜨려 목숨을 앗아갔음에도 회개했다며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전석우(정만식 분). 서도철(황정민 분) 팀은 경찰이기에 원치 않게 전석우를 보호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막내 형사 박선우(정해인 분)를 만난다.

박선우는 전석우를 향해 달려드는 폭로 전문 유튜버를 제압하고, 서도철은 "왜 말렸냐. 그러다가 (전석우가) 다치면 오히려 좋지 않냐"고 묻는다.

영화 '베테랑' 스틸컷 /사진='베테랑' 측 제공


물론 서도철은 형사로서 정의감이 투철한 인물이다. 다만 그도 어쩔 수 없는 한 사람의 '인간'이기에 사법 그 이상으로 악인들을 처벌하는 '해치'에 대해 복잡한 심경을 느낀다.

"좋은 살인, 나쁜 살인이 어디 있냐. 살인은 살인"이라면서도 그 역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범죄자들을 대할 때는 "확 죽어버렸으면"하는 마음이 새어 나오는 것이다.

전과도 안 남은 밀양 사건…"신상 공개해달라" 누리꾼 폭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 '한공주' 스틸컷 /사진='한공주' 측 제공

지난 6월, 한 유튜버가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의 신상을 잇달아 공개하면서 해당 사건이 재조명됐다.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은 2004년 경남 밀양시에서 44명의 남학생이 여자 중학생을 집단으로 성폭행한 사건이다. 사건에 연루된 고등학생 44명 중 10명은 기소됐으며 20명은 소년원으로 보내졌다. 합의로 공소권 상실 처리를 받은 학생은 14명이었다. 이들에게 전과 기록이 남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해당 사건은 전국민적 공분을 샀다.

처음 한 유튜버가 밀양 사건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했을 때 누리꾼들은 "마지막 한명까지 낱낱이 신상을 공개해달라", "(유튜버) 파이팅이다. 후원하고 싶다", "가해자가 잘 먹고 잘 사는 건 말이 안 된다"라며 공분했다.

이 유튜버가 화제를 모으자 여러 유튜버들이 가세해 가해자 신상 털기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사건과 무관한 일부 사람이 피해를 입었다. 밀양 사건 가담자로 신상이 폭로된 A씨 등 9명은 지난 6월 24일 밀양경찰서를 찾아 "사건과 무관하다"며 집단 진정서를 제출했다. 집단 진정서 제출 외에도 무분별한 신상 폭로에 반발한 고소·진정이 110여건에 이른다.

심지어 밀양 사건의 피해자가 유튜버들의 폭로에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확산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의 일상 회복, 피해자의 의사 존중과 거리가 먼, 갑자기 등장한 일방적 영상 업로드와 조회수 경주에 당황스러움과 우려를 표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진실 검증 없는 '자극 추구' 사적 제재의 결말
창원지방검찰청 /사진=뉴시스

정의로 시작한 사적 제재가 점점 무고한 피해자들을 양산해 내자 누리꾼 여론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폭로 유튜버들을 향한 맹목적 응원 틈바구니에서 "사적 제재는 옳지 않다", "처벌을 해도 피해자가 해야지 우리가 나설 건 아닌 것 같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베테랑2' 역시 이러한 모순을 함께 담아냈다. 학교 폭력 가해자들을 처단하고, 가짜뉴스 고충에 숨진 여대생을 위해 복수에 나서던 '해치'는 보험금 때문에 남편을 죽였다는 억울한 누명을 쓴 베트남 여성을 타깃으로 삼았다. 본인의 신념에 사로잡혀 있기에 이 여성의 해명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폭로 유튜버가 주장한 "10억원에 달하는 보험금 때문에 직접 운전해 남편을 죽였다"는 말만 따랐다.

누군가는 사적 제재가 통쾌하다고 할 수 있지만, 현실 '해치'들의 결말은 그러지 못했다. 창원지검 형사1부는 밀양 성폭행 사건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한 후 협박·강요한 한 유튜버와, 공무원 신분으로 개인정보를 조회한 후 해당 유튜버에게 정보를 제공한 이 유튜버 배우자를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밀양 사건 관련자들뿐만 아니라 무고한 시민들의 이름, 사진, 주소, 전화번호 등을 공개한 것과 관련해 명예훼손 혐의를 받는다. 또 일부 사건 관련자들에게 자료를 보내지 않으면 가족들의 신상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해 사진과 사과 영상을 전달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유튜버 개인의 수익 창출이 목적임에도 사적 제재라는 명분으로 포장해 오히려 범죄 피해자의 잊힐 권리를 침해하고 피해자 및 그 가족은 물론 무고한 시민들에게까지 고통을 주는 악성 콘텐츠 유포 사범에 대해 엄정히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베테랑2'는 나쁜 놈은 끝까지 잡는 베테랑 서도철 형사(황정민 분)의 강력범죄수사대에 막내 형사 박선우(정해인 분)가 합류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연쇄살인범을 쫓는 액션범죄수사극이다. 지난 13일 개봉했다.

차유채 기자 jejuflow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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