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야구한 것만으로도 축복" 굿바이 '니퍼트 형', 단순한 '외인 그 이상' 압도적 존재감 [잠실 현장]

잠실=안호근 기자 2024. 9. 15.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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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 잠실=안호근 기자]
두산 선수들이 14일 KT전 이후 진행된 니퍼트의 은퇴식에서 니퍼트를 헹가래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낭만 가득했던 그 시절에 함께 야구했던 것만으로도 너무 축복이었다."

정수빈(34)이 더스틴 니퍼트(43)를 떠나보내며 남긴 한마디다. 그와 함께한 선수들 모두 행복했고 영광이었고 즐거웠다는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니퍼트라는 존재를 수 많은 외국인 선수 중 하나로 여길 수 없는 이유다.

니퍼트는 14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KT 위즈와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홈경기에서 은퇴식을 가졌다.

경기 전 추첨을 통해 뽑힌 70명의 팬과 사인회를 통해 만났고 시구자로 나선 뒤에 클리닝타임 땐 양 팀 선수들과 두산 고영섭 사장, 김태룡 단장에게 기념패와 선물을 건네받았다. 1회초 수비가 끝난 뒤엔 현역 시절처럼 불펜 앞에서 야수들 하나하나를 반기며 독려해 팬들의 추억을 자극했다. 경기 내내 더그아웃에 앉아 동료들에게 조언을 건넸고 용기를 전했다.

은퇴식에 나서는 선수를 위한 '특별 엔트리'에 등록돼 경기에 출전도 가능했고 공을 던지고 싶다는 열망을 나타냈지만 시즌 막판 치열한 순위 다툼이 이어졌고 경기가 끝까지 팽팽하게 흐르며 끝내 실전 무대에 오르지는 못했다.

니퍼트가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만원관중 앞에서 손을 흔들며 화답하고 있다.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그럼에도 경기 후 니퍼트는 "양 팀 모두 승패를 떠나 멋진 경기를 했다. 더그아웃에 앉으니 그때 그 시절이 떠올랐다. 멋진 경기를 펼친 양 팀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며 "그리고 잠실야구장을 가득 채워주신 두산 베어스 팬분들과 KT 위즈 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이날 잠실구장은 매진을 이뤘다. 단순한 순위 싸움 때문만이 아니었다는 게 경기 후 확인됐다. 경기가 종료된 뒤 15분 후 니퍼트의 은퇴식이 진행됐는데 대다수의 관중들이 자리를 뜨지 않았다. 니퍼트의 마지막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은퇴식은 니퍼트의 두산 시절 활약과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영상과 옛 동료들과 기념 촬영, 동료들의 메시지 공개 등으로 이어졌다.

경기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외국인 선수로는 첫 은퇴식이라는 소식을 처음 알게됐다는 니퍼트는 "용병, 외국인이라고 따로 구분지어 생각지는 않는다. 좋은 팀 동료였다고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며 "그렇기에 이런 기록들을 가질 수 있었다. 8년 동안 좋은 시즌을 보낼 수 있었다. 외국인 선수라든지 가리지 않고 하나의 선수로 기억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팬들은 물론이고 동료들 중 누구도 그를 외국인 선수로 여기지 않았다. 팬들은 그를 '니느님(니퍼트+하느님)'이라고 신격화할 정도로 극진히 대우하며 존중했고 동료들은 '(니)퍼트형'이라는 친근한 호칭으로 그를 따스히 대했다.

니퍼트(오른쪽)가 시구를 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결승타를 때려 승리를 선사한 정수빈은 "(니)퍼트 형이 왔는데 다행히 이겼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은퇴식을 할 수 있게 돼 기분 좋다"며 "은퇴 후 몇 년이 지나 두산 유니폼을 입었는데 여전히 두산 유니폼이 잘 어울렸다. 오늘 은퇴식 너무 축하하고 앞으로도 니퍼트 형이 하는 모든 일을 응원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관중들에게도 공개된 영상에서 다시 나타난 정수빈은 "낭만 가득했던 그 시절에 함께 야구했던 것만으로도 너무 축복이었다"고 말했다.

니퍼트는 2011년부터 2017년까지 두산에서 뛰며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KT에서 뛴 2018년까지 총 8년을 KBO리그에서 보낸 그는 역대 최장수 외국인 선수이자 유일한 100승-1000탈삼진 기록의 보유자다. 2022년엔 외국인 투수 중 유일하게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에 선정될 만큼 KBO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다.

뛰어난 실력은 물론이고 그 이상의 워크에식과 팀과 팬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로 타의 모범이 됐기에 더 많은 동료들이 그를 존중하고 따를 수 있었다. 2001년 이후 14년 만에 두산에 우승을 안겼고 2016년엔 22승을 챙기며 최우수선수(MVP)와 함께 2연패를 선사하기도 했다.

두산의 왕조 시절을 함께 한 정수빈(왼쪽부터), 허경민, 니퍼트, 김재호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김재호는 "내 야구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을 함께 했던 멋진 형이 이렇게 멋있게 떠난다고 하니까 감회가 새롭다"고 전했고 허경민은 "항상 건강하고 두산 팬분들게 항상 변함 없는 사랑을 받는 선수로 기억돼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재환은 "(니)퍼트 형 Don't cry. 울지마. 울고 있는 것 다 안다"며 "같이 있는 동안 너무 멋있었고 앞으로 니퍼트의 인생도 항상 그랬던 것처럼 응원할게"라고 힘을 보탰다.

그의 단짝인 포수 양의지는 "그라운드는 떠났지만 항상 응원하고 있었고 멀리서 지켜봤는데 은퇴식에 이렇게 나도 포수로서 다시 공을 받는다는 게 너무 기분 좋다"며 "내 마음 속에 항상 영원한 1선발 니퍼트 항상 응원할게 사랑해"라고 특별한 애정을 보였다.

은퇴식 내내 니퍼트는 수 차례 눈물을 훔쳐내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는 동료들과 팬들, 양 구단 관계자, 가족 등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특히나 동료들이 자신을 생각하는 것만큼 자신도 남다른 애정을 전했다.

니퍼트는 "여러분은 저의 전부입니다. 첫날부터 저를 두 팔 벌려 환영해줬고, 가족처럼 대해줘 감사합니다. 제 등 뒤를 지켜주며 허슬 넘치는 플레이만을 보여준 점에 감사합니다. 제가 최고의 투수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라며 "제 투구가 여러분 모두를 자랑스럽게 만들었길 바랍니다. 팀원들이 없었다면 저는 아무 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제가 등판할 때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저는 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니퍼트(오른쪽)와 양의지가 눈시울이 붉어진 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잠실=안호근 기자 oranc317@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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