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가 화장실에서 연설문을 쓴 까닭은[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정미경 기자 2024. 9. 1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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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해리스 연설의 승자는 누구
미국 전당대회 최고의 연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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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민주당 전당대회(DNC) 홈페이지
Donald Trump is an unserious man. But the consequences of putting Donald Trump back in the White House are extremely serious.”
(도널드 트럼프는 가벼운 사람이다. 하지만 그를 다시 백악관에 들여놓는 대가는 매우 무겁다)
전당대회 시즌이 끝났습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분위기는 크게 달랐습니다. 민주당은 전당대회를 흥겨운 파티로 만들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 스티비 원더 등 유명 셀럽들이 등장했습니다. 반면 공화당 전당대회는 트럼프 대통령 피격 이틀 후에 열려 분위기가 가라앉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피격당했을 때 외친 ‘USA’라는 단어가 자주 들렸습니다.

93분 동안 마이크를 잡은 트럼프 대통령은 역사상 가장 긴 전당대회 연설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40분 동안 연설했는데 내용은 더 낫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검사 출신답게 마치 법정 드라마에 나오듯이 말의 강약을 조절할 줄 알았습니다. ‘serious’를 ‘심각한’이라는 뜻으로만 알면 안 됩니다. ‘중대한’ ‘무거운’ ‘진짜’ 등 다른 뜻으로 더 많이 씁니다. 내가 하는 말이 진짜라고 강조하고 싶을 때 “I’m dead serious.” “I’m not joking”이라는 뜻입니다. 해리스 부통령이 말한 ‘unserious’는 트럼프 대통령을 ‘하찮은’ ‘무시해도 될만한’ 존재라고 비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를 대통령으로 뽑으면 하찮지 않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는 경고입니다.

전당대회(national convention)의 정식 명칭은 ‘presidential nominating convention.’ 민주 공화 양당의 대의원들이 대통령 후보를 지명하는 행사입니다. 당이 주인공인 행사이기 때문에 당의 개념이 없었던 미국 건국 때는 전당대회라는 행사도 없었습니다. 전당대회가 생긴 것은 건국 50여 년 후인 1820년대부터입니다. 4년마다 대선이 있는 해에 열리는 것이 전통입니다. 전당대회에서 지명한다지만 사실상 그 전에 열리는 프라이머리(예비경선)에서 후보는 결정됩니다. 전당대회는 이미 결정된 후보를 공개적으로 추대하는 요식 행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별것도 아닌 전당대회를 미국 TV가 생중계까지 하며 떠받드는 것은 연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4일간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30∼40명의 연설자가 무대에 오릅니다. 그중에는 탁월한 연설력으로 스타가 된 정치인들이 많습니다. 전당대회를 수놓은 특급 연설들을 알아봤습니다.

1932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하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I pledge you, I pledge myself, to a new deal for the American people.”
(여러분과 나 자신에게 미국인들을 위한 새로운 정책을 맹세한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 ‘뉴딜’(New Deal). 1932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후보 수락 연설을 하면서 처음 쓴 단어입니다. 너무 유명한 단어라서 고유명사 같지만 루즈벨트 대통령이 처음 썼을 때는 새로운(new) 합의(deal)라는 일반적인 의미였습니다. 별로 마음에 안 들었는지 연설 마지막 부분에 딱 한 번 나옵니다. ‘pledge’(플레지)는 서약한다는 뜻입니다. ‘promise’(약속하다)보다 강한 의미입니다.

1932년 민주당 전당대회는 여러 가지 기록이 있습니다. 선출된 후보가 처음으로 현장에서 수락 연설을 한 전당대회입니다. 이전까지는 전당대회에 오지도 않았습니다. 점잖은 정치인이 시끌벅적한 대의원 행사에 오는 것을 품위 없는 행동이라고 여겼습니다. 당시 뉴욕 주지사였던 루즈벨트 대통령은 소아마비로 거동이 불편했음에도 자신을 뽑아준 대의원들에게 감사를 전하기 위해 전당대회에 왔습니다. 장소는 2만 명을 수용하는 시카고 스타디움. 지팡이를 짚고 연단에 올라가 책상 양옆에 설치된 손잡이를 잡고 연설하는 모습을 관중들은 지켜봤습니다. 박수가 터졌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감사를 전했습니다. “You have nominated me, and I am here to thank you for the honor.”(여러분들은 나를 지명해줬고, 그 영예에 감사를 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

후보가 처음으로 비행기로 이동한 전당대회이기도 합니다. 비행기는 위험하다는 인식 때문에 지도층 인사들은 탑승하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바쁜 유세 일정 때문에 뉴욕에서 시카고 전당대회장까지 비행기를 이용했습니다. 부인 엘리너 여사와 아들 2명도 동행했습니다. 비행기는 얼마 가지 않아 악천후를 만났습니다. 비행기가 하도 흔들려 탑승객들은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습니다. 조종사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White-knuckled passengers could only cling to the upholstered arms of the aluminum chairs. In the turbulence, acceptance speech sheets slid off the desk,”(탑승객들은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보일 정도로 의자 손잡이를 꽉 잡았다. 비행기가 흔들리는 바람에 연설 원고가 탁자에서 쏟아졌다)

원래 6시간으로 예정됐던 비행은 8시간이 걸렸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겨우 늦지 않게 대회장에 도착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I regret that I am late, but I have no control over the winds of heaven.”(늦어서 유감이다. 하지만 하늘의 바람은 나도 어쩔 수 없어)

1968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추대된 리처드 닉슨 대통령. 리처드 닉슨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It is the voice of the great majority of Americans, the forgotten Americans, the non-shouters, the non-demonstrators.”
(그것은 위대한 다수의 미국인, 잊혀진 미국인, 목청도 높이지 않고 시위도 하지 않는 미국인들의 목소리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별명이 ‘컴백 키드’(Comeback Kid)지만 진정한 컴백 키드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 하원의원, 상원의원, 부통령 등 화려한 경력을 가졌지만 1960년 대선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 패하고 2년 뒤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도 패했습니다. 부통령까지 지낸 정치인이 주지사 선거에서 패한 것은 역대급 수치였습니다. 재기가 힘들어 보였습니다.

6년 뒤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1968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선출됐습니다. 닉슨의 후보 수락 연설은 인간적인 매력이 부족하다는 단점을 보완해 공감형 정치인으로 거듭났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반전 운동으로 시끄러웠습니다. 반전 구호를 외치며 길거리로 나선 젊은이도 많았지만, 다수는 침묵했습니다. 그들은 잊혀진 존재였습니다. 닉슨은 잊혀진 미국인들을 위한 목소리가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Forgotten Americans Speech’(잊혀진 미국인 연설)라고 합니다. 이 연설은 그해 대선에서 승리하는데 원동력이 됐습니다.

닉슨은 연설에서 경적이 울리는 시끄러운 기찻길 옆에서 살았던 가난한 어린 시절에 관해 얘기했습니다. 이후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물러나기까지 기차 경적(train whistle)은 닉슨의 상징이 됐습니다. 밥 돌 상원의원은 닉슨 대통령 장례식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He was a boy who heard the train whistle in the night and dreamed of all the distant places that lay at the end of the track. How American.”(그는 밤마다 울리는 경적을 들으며 기찻길이 끝나는 먼 곳을 꿈꾸는 소년이었다. 이 얼마나 미국적인가)

1976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오른쪽)이 연설하는 모습. 제럴드 포드 대통령(왼쪽)이 지켜보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Suddenly it dawned on me; they will know whether we met our challenge.”
(갑자기 분명해졌다. 그들은 우리가 도전을 이겨냈는지 알 것이다)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출마할 때 소속당에서는 경쟁 후보를 내세우지 않는 것이 관례입니다. 1976년 대선은 달랐습니다. 공화당의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는데 강력한 당내 경쟁자가 있었습니다. 로널드 레이건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입니다. 그만큼 포드 대통령이 인기가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포드 대통령과 레이건 주지사는 프라이머리에서 충분한 대의원을 확보하지 못해 전당대회 투표로 승자를 결정했습니다. 포드 대통령이 이겼습니다. 하지만 이날의 주인공은 패배한 레이건 주지사였습니다. 원고도 없이 8분간의 즉석연설을 통해 워터게이트 스캔들 이후 정체성 혼란에 빠진 공화당의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time capsule speech’(타임캡슐 연설)로 불립니다. 지인으로부터 100년 뒤 공개될 타임캡슐에 넣을 편지에 현재 미국이 당면한 문제를 적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미국과 소련의 미사일 경쟁, 자유경제에 대한 정부 간섭 등을 당면한 문제로 꼽았습니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고 합니다. 100년 뒤 세대는 현재 세대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했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미래 세대가 사는 세상은 현재 세대의 책임이므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이 있는 공화당을 선택해 달라는 결론입니다. ‘dawn’은 새벽을 말합니다. ‘dawn on’은 동사로 ‘새벽이 찾아오다’ ‘생각이 명료해지다’라는 뜻입니다. 뭔가 번쩍 생각이 난다는 의미이므로 ‘suddenly’와 함께 쓸 때가 많습니다.

이 연설의 장점은 딱딱한 정치 메시지를 쉽고 서정적인 타임캡슐의 이미지에 실어 전달한 것입니다. 레이건을 위대한 소통가의 위치에 올려놓은 명연설입니다. 4년 뒤 대통령이 됐습니다. 반면 포드 대통령은 대선에서 민주당의 지미 카터 후보에게 패했습니다.

명언의 품격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백악관 홈페이지
미국의 명연설은 1960∼70년대에 몰려 있습니다. 변혁기였기 때문입니다. 비교적 사회가 안정된 1980년대 이후에는 명연설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예외가 있습니다. 2000년대 버락 오바마 대통령입니다. 가장 뛰어난 연설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나왔습니다. 연설 제목은 ‘담대한 희망’(the Audacity of Hope). 당시 오바마는 초짜 정치인이었습니다. 연방 상원의원도 아닌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었습니다. 그가 전당대회 기조연설자로 결정됐을 때 나온 언론 헤드라인입니다. “Who the Heck Is This Guy?”(도대체 이 사람 누구야?)

전당대회에서 인지도 높은 연설자들은 저녁 시간에 집중 배치됩니다. ‘프라임타임 스피커’라고 합니다. 이 중에서 기조연설자가 결정됩니다. 기조연설은 전당대회의 주제와 맞는 사람을 골라 맡깁니다. 유명 정치인에게 돌아가는 것이 관례입니다. 무명의 오바마가 결정된 데는 민주당 존 케리 대선 후보의 일리노이 유세가 계기가 됐습니다. 일리노이 주민들이 오바마를 높이 평가하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 찬조 출연한 오바마의 연설을 듣고 감동했습니다. 오바마 연설을 함께 들은 선거 책임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This guy will be on the national ticket someday.”(이 사람 언젠가 전국 무대 정치인 꼭 된다)

오바마는 직접 원고를 쓰기로 했습니다. 흑인으로 살아온 개인의 역사를 미국의 역사와 엮는 작업을 스피치라이터에게 맡길 수 없었습니다.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필기용 노란색 공책(yellow legal pad)을 가지고 다니며 시간이 날 때마다 손글씨로 원고를 썼습니다. 당시 일리노이 주의회가 회기 중이라 의사당 건물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조용해서 집중하기 좋은 화장실 휴게실이 주된 집필 공간이었습니다. 화장실에서 오바마를 봤다는 목격담이 많이 나왔습니다. 연설의 핵심 구절입니다.

It’s the hope of a skinny kid with a funny name who believes that America has a place for him. The audacity of hope!”
(자신을 위한 자리가 미국에 있다는 믿는 웃긴 이름을 가진 비쩍 마른 소년의 희망이다. 담대한 희망이다!)
‘audacity’(어대시티)는 오바마가 시카고에서 지역 운동가로 일하던 시절 담당 성직자이자 오바마 결혼식 주례를 섰던 제러미아 라이트 목사의 설교에 자주 나오는 단어입니다. ‘대담함’이라는 뜻입니다. 미국인들이 즐겨 쓰는 단어는 아닙니다.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뻔뻔하게 구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How audacious of you!”(너 완전 철면피구나)

단어는 뜻밖의 효과를 내며 대히트를 쳤습니다. 이후 ‘audacious’(어데이셔스)는 오바마 대통령의 별명이 됐습니다. 오바마는 연설문 초고를 완성한 뒤 데이비드 엑셀로드 언론 고문에게 처음 보여줬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휴가를 보내던 엑셀로드 고문은 팩스로 한 장씩 도착하는 원고를 읽은 뒤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This is an incredible speech. This is really literature.”(믿을 수 없게 훌륭한 연설문이다. 문학 작품이다)

실전 보케 360

팀 월즈 민주당 부통령 후보가 1995년 음주운전에 적발됐을 때 머그샷. 네브래스카 다즈 카운티 보안관 사무소 홈페이지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쉬운 단어를 활용해 영어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한국 유명 연예인들의 음주운전이 논란이 되는 가운데 팀 월즈 민주당 부통령 후보의 30여 년 전 음주운전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1995년 네브래스카 고교에서 교사와 운동코치로 일하던 시절 친구 집에서 술을 마시고 집에 가다가 음주 과속운전으로 적발됐습니다. 200달러의 벌금과 90일 면허 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28%로 법정 한도를 넘었습니다. 미국의 한도는 0.08%입니다. 이후 네브래스카에서 미네소타로 이주했고, 정치 경력을 쌓아 주지사에 올랐습니다, 주지사 도전 때 미네소타 스타 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음주운전 경력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It was a gut-check moment.”
(현실 직시의 순간이었다)
‘gut’(것)은 용기를 말합니다. 똑같이 용기라는 뜻이지만 ‘gut’은 ‘courage’와 조금 다릅니다. 순간적인 판단에 따른 용기, 배짱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gut’은 직관을 말하기도 합니다. 상대가 거짓말을 한다는 느낌이 팍 올 때 이렇게 말합니다. “I have a gut feeling that you are lying.” ‘gut check’(것첵)은 배짱을 부리는 것을 점검한다는 뜻입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음주운전을 계기로 철없던 인생을 반성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19년 2월 12일 소개된 존 딩걸 하원의원에 관한 내용입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문제가 뜨거웠습니다. 고령에 따른 인지력 저하는 심각한 문제지만 고령에도 존경받는 정치인이 있습니다. 2019년 92세를 일기로 타계한 딩걸 의원입니다. 그가 타계하자 당적을 막론하고 추모 메시지가 밀려들었습니다.

▶2019년 2월 12일자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90212/94063078/1

2014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최고의 영예인 자유의 메달을 수여 받는 존 딩겔 하원의원. 백악관 홈페이지
한국에서 별로 유명하지 않지만, 미국에서 유명한 정치인이 있습니다. 존 딩걸 전 하원의원(민주·미시간)이 최근 92세로 별세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respect’(존경)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써가며 가슴에 와닿는 추모사를 발표했습니다. 백악관은 물론이고 50개 주 청사가 모두 조기를 달았습니다. 일개 하원의원이 왜 이런 국가원수급 의례를 받을까요.

60년 동안 하원의원을 지낸 고인은 최장수 의정활동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추모사에서 “의회를 거쳐 간 주요 법안 중 딩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은 별로 없다”라고 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금은 희귀종이 됐지만,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정치인의 소명을 워싱턴에서 가장 충실히 수행한 인물”이라고 평했습니다.

The skies must be safe.”
(하늘은 안전하구나)
한번은 딩걸 의원이 공항에서 보안검색대를 지나갈 때 ‘삑’ 소리가 났습니다. 여러 번 지나도 계속 소리가 났습니다. 젊은 시절 엉덩이 수술로 금속을 박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해도 검색요원은 믿지 않았습니다. 조사실로 데려갔습니다. 그는 거기서 바지를 벗고 수술 부위를 보여줬습니다. 수차례 검색대를 지나고 바지를 벗는 동안 의원 신분임을 밝히지 않습니다. 특혜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허허 웃으며 조사실을 나오면서 한 말입니다. 이렇게 철저히 조사하는 것을 보니 미국의 항공 보안은 안심해도 되겠다는 감탄입니다.
You’re not important. It’s what you can now do to help others that’s important.”
(당신은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당신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딩걸 의원의 동료인 테드 도이치 하원의원(민주·플로리다)의 추모사입니다. 도이치 의원은 처음 당선됐을 때 딩걸 의원에게 “이제 나도 중요한 위치에 올랐다”라고 자랑했다고 합니다. 그때 딩걸 의원이 충고한 말입니다. 도이치 의원은 이 충고를 마음에 새기며 살았다고 합니다.
I don’t know about you, but I’m feeling 92.”
(당신은 어떤지 모르지만 나는 92세 먹은 느낌인데)
딩걸 의원은 92세의 나이에 25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트위터의 달인이었습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을 재치있게 비꼬는 트윗으로 유명했습니다. 92세 생일날 그가 올린 트윗입니다. ‘I don’t know about you, but I’는 ‘나는 너에 대해 모르지만’이 아니라 ‘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다’라는 의미입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히트곡 ‘22’의 가사 ‘I don’t know about you, but I’m feeling 22’를 ‘92’로 비틀었습니다. 92세의 나이를 실감한다는 것입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를 아는 90대 할아버지는 흔치 않습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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