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가 화장실에서 연설문을 쓴 까닭은[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미국 전당대회 최고의 연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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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ald Trump is an unserious man. But the consequences of putting Donald Trump back in the White House are extremely serious.” (도널드 트럼프는 가벼운 사람이다. 하지만 그를 다시 백악관에 들여놓는 대가는 매우 무겁다) |
93분 동안 마이크를 잡은 트럼프 대통령은 역사상 가장 긴 전당대회 연설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40분 동안 연설했는데 내용은 더 낫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검사 출신답게 마치 법정 드라마에 나오듯이 말의 강약을 조절할 줄 알았습니다. ‘serious’를 ‘심각한’이라는 뜻으로만 알면 안 됩니다. ‘중대한’ ‘무거운’ ‘진짜’ 등 다른 뜻으로 더 많이 씁니다. 내가 하는 말이 진짜라고 강조하고 싶을 때 “I’m dead serious.” “I’m not joking”이라는 뜻입니다. 해리스 부통령이 말한 ‘unserious’는 트럼프 대통령을 ‘하찮은’ ‘무시해도 될만한’ 존재라고 비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를 대통령으로 뽑으면 하찮지 않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는 경고입니다.
전당대회(national convention)의 정식 명칭은 ‘presidential nominating convention.’ 민주 공화 양당의 대의원들이 대통령 후보를 지명하는 행사입니다. 당이 주인공인 행사이기 때문에 당의 개념이 없었던 미국 건국 때는 전당대회라는 행사도 없었습니다. 전당대회가 생긴 것은 건국 50여 년 후인 1820년대부터입니다. 4년마다 대선이 있는 해에 열리는 것이 전통입니다. 전당대회에서 지명한다지만 사실상 그 전에 열리는 프라이머리(예비경선)에서 후보는 결정됩니다. 전당대회는 이미 결정된 후보를 공개적으로 추대하는 요식 행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별것도 아닌 전당대회를 미국 TV가 생중계까지 하며 떠받드는 것은 연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4일간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30∼40명의 연설자가 무대에 오릅니다. 그중에는 탁월한 연설력으로 스타가 된 정치인들이 많습니다. 전당대회를 수놓은 특급 연설들을 알아봤습니다.
I pledge you, I pledge myself, to a new deal for the American people.” (여러분과 나 자신에게 미국인들을 위한 새로운 정책을 맹세한다) |
1932년 민주당 전당대회는 여러 가지 기록이 있습니다. 선출된 후보가 처음으로 현장에서 수락 연설을 한 전당대회입니다. 이전까지는 전당대회에 오지도 않았습니다. 점잖은 정치인이 시끌벅적한 대의원 행사에 오는 것을 품위 없는 행동이라고 여겼습니다. 당시 뉴욕 주지사였던 루즈벨트 대통령은 소아마비로 거동이 불편했음에도 자신을 뽑아준 대의원들에게 감사를 전하기 위해 전당대회에 왔습니다. 장소는 2만 명을 수용하는 시카고 스타디움. 지팡이를 짚고 연단에 올라가 책상 양옆에 설치된 손잡이를 잡고 연설하는 모습을 관중들은 지켜봤습니다. 박수가 터졌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감사를 전했습니다. “You have nominated me, and I am here to thank you for the honor.”(여러분들은 나를 지명해줬고, 그 영예에 감사를 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
후보가 처음으로 비행기로 이동한 전당대회이기도 합니다. 비행기는 위험하다는 인식 때문에 지도층 인사들은 탑승하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바쁜 유세 일정 때문에 뉴욕에서 시카고 전당대회장까지 비행기를 이용했습니다. 부인 엘리너 여사와 아들 2명도 동행했습니다. 비행기는 얼마 가지 않아 악천후를 만났습니다. 비행기가 하도 흔들려 탑승객들은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습니다. 조종사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White-knuckled passengers could only cling to the upholstered arms of the aluminum chairs. In the turbulence, acceptance speech sheets slid off the desk,”(탑승객들은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보일 정도로 의자 손잡이를 꽉 잡았다. 비행기가 흔들리는 바람에 연설 원고가 탁자에서 쏟아졌다)
원래 6시간으로 예정됐던 비행은 8시간이 걸렸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겨우 늦지 않게 대회장에 도착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I regret that I am late, but I have no control over the winds of heaven.”(늦어서 유감이다. 하지만 하늘의 바람은 나도 어쩔 수 없어)
It is the voice of the great majority of Americans, the forgotten Americans, the non-shouters, the non-demonstrators.” (그것은 위대한 다수의 미국인, 잊혀진 미국인, 목청도 높이지 않고 시위도 하지 않는 미국인들의 목소리다) |
6년 뒤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1968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선출됐습니다. 닉슨의 후보 수락 연설은 인간적인 매력이 부족하다는 단점을 보완해 공감형 정치인으로 거듭났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반전 운동으로 시끄러웠습니다. 반전 구호를 외치며 길거리로 나선 젊은이도 많았지만, 다수는 침묵했습니다. 그들은 잊혀진 존재였습니다. 닉슨은 잊혀진 미국인들을 위한 목소리가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Forgotten Americans Speech’(잊혀진 미국인 연설)라고 합니다. 이 연설은 그해 대선에서 승리하는데 원동력이 됐습니다.
닉슨은 연설에서 경적이 울리는 시끄러운 기찻길 옆에서 살았던 가난한 어린 시절에 관해 얘기했습니다. 이후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물러나기까지 기차 경적(train whistle)은 닉슨의 상징이 됐습니다. 밥 돌 상원의원은 닉슨 대통령 장례식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He was a boy who heard the train whistle in the night and dreamed of all the distant places that lay at the end of the track. How American.”(그는 밤마다 울리는 경적을 들으며 기찻길이 끝나는 먼 곳을 꿈꾸는 소년이었다. 이 얼마나 미국적인가)
Suddenly it dawned on me; they will know whether we met our challenge.” (갑자기 분명해졌다. 그들은 우리가 도전을 이겨냈는지 알 것이다) |
포드 대통령과 레이건 주지사는 프라이머리에서 충분한 대의원을 확보하지 못해 전당대회 투표로 승자를 결정했습니다. 포드 대통령이 이겼습니다. 하지만 이날의 주인공은 패배한 레이건 주지사였습니다. 원고도 없이 8분간의 즉석연설을 통해 워터게이트 스캔들 이후 정체성 혼란에 빠진 공화당의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time capsule speech’(타임캡슐 연설)로 불립니다. 지인으로부터 100년 뒤 공개될 타임캡슐에 넣을 편지에 현재 미국이 당면한 문제를 적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미국과 소련의 미사일 경쟁, 자유경제에 대한 정부 간섭 등을 당면한 문제로 꼽았습니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고 합니다. 100년 뒤 세대는 현재 세대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했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미래 세대가 사는 세상은 현재 세대의 책임이므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이 있는 공화당을 선택해 달라는 결론입니다. ‘dawn’은 새벽을 말합니다. ‘dawn on’은 동사로 ‘새벽이 찾아오다’ ‘생각이 명료해지다’라는 뜻입니다. 뭔가 번쩍 생각이 난다는 의미이므로 ‘suddenly’와 함께 쓸 때가 많습니다.
이 연설의 장점은 딱딱한 정치 메시지를 쉽고 서정적인 타임캡슐의 이미지에 실어 전달한 것입니다. 레이건을 위대한 소통가의 위치에 올려놓은 명연설입니다. 4년 뒤 대통령이 됐습니다. 반면 포드 대통령은 대선에서 민주당의 지미 카터 후보에게 패했습니다.
명언의 품격
전당대회에서 인지도 높은 연설자들은 저녁 시간에 집중 배치됩니다. ‘프라임타임 스피커’라고 합니다. 이 중에서 기조연설자가 결정됩니다. 기조연설은 전당대회의 주제와 맞는 사람을 골라 맡깁니다. 유명 정치인에게 돌아가는 것이 관례입니다. 무명의 오바마가 결정된 데는 민주당 존 케리 대선 후보의 일리노이 유세가 계기가 됐습니다. 일리노이 주민들이 오바마를 높이 평가하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 찬조 출연한 오바마의 연설을 듣고 감동했습니다. 오바마 연설을 함께 들은 선거 책임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This guy will be on the national ticket someday.”(이 사람 언젠가 전국 무대 정치인 꼭 된다)
오바마는 직접 원고를 쓰기로 했습니다. 흑인으로 살아온 개인의 역사를 미국의 역사와 엮는 작업을 스피치라이터에게 맡길 수 없었습니다.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필기용 노란색 공책(yellow legal pad)을 가지고 다니며 시간이 날 때마다 손글씨로 원고를 썼습니다. 당시 일리노이 주의회가 회기 중이라 의사당 건물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조용해서 집중하기 좋은 화장실 휴게실이 주된 집필 공간이었습니다. 화장실에서 오바마를 봤다는 목격담이 많이 나왔습니다. 연설의 핵심 구절입니다.
It’s the hope of a skinny kid with a funny name who believes that America has a place for him. The audacity of hope!” (자신을 위한 자리가 미국에 있다는 믿는 웃긴 이름을 가진 비쩍 마른 소년의 희망이다. 담대한 희망이다!) |
단어는 뜻밖의 효과를 내며 대히트를 쳤습니다. 이후 ‘audacious’(어데이셔스)는 오바마 대통령의 별명이 됐습니다. 오바마는 연설문 초고를 완성한 뒤 데이비드 엑셀로드 언론 고문에게 처음 보여줬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휴가를 보내던 엑셀로드 고문은 팩스로 한 장씩 도착하는 원고를 읽은 뒤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This is an incredible speech. This is really literature.”(믿을 수 없게 훌륭한 연설문이다. 문학 작품이다)
실전 보케 360
It was a gut-check moment.” (현실 직시의 순간이었다) |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19년 2월 12일 소개된 존 딩걸 하원의원에 관한 내용입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문제가 뜨거웠습니다. 고령에 따른 인지력 저하는 심각한 문제지만 고령에도 존경받는 정치인이 있습니다. 2019년 92세를 일기로 타계한 딩걸 의원입니다. 그가 타계하자 당적을 막론하고 추모 메시지가 밀려들었습니다.
▶2019년 2월 12일자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90212/94063078/1
60년 동안 하원의원을 지낸 고인은 최장수 의정활동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추모사에서 “의회를 거쳐 간 주요 법안 중 딩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은 별로 없다”라고 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금은 희귀종이 됐지만,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정치인의 소명을 워싱턴에서 가장 충실히 수행한 인물”이라고 평했습니다.
The skies must be safe.” (하늘은 안전하구나) |
You’re not important. It’s what you can now do to help others that’s important.” (당신은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당신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
I don’t know about you, but I’m feeling 92.” (당신은 어떤지 모르지만 나는 92세 먹은 느낌인데) |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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