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에는 먹지만 말고…” 부모님댁 10가지 체크리스트
명절 연휴에 부모님 댁까지 가는 길은 멀고 정작 머무는 시간은 찰나처럼 짧다. 잔뜩 준비한 음식을 맘껏 먹인 부모님은 또 자식들이 돌아갈 길 걱정부터 하신다. 잘 먹고 잘 쉬었음에도 돌아서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 않았다면, 이번 추석 이 리스트를 주목해 보자. 집정리부터 안전사고 예방 그리고 스마트폰 피싱 예방까지. 연로한 부모님이 간과할 수 있는 10가지 체크리스트를 전문가와 함께 작성했다.
약, 앱, 냉장고… 비워드리고 채워드리자
전문가와 함께 전하는 효자·효녀 10대 체크리스트는?
1. 식탁 위 약봉지 정리하기
부모님 댁의 특징 중 하나. 식탁 위에 언제 조제했는지 알 수 없는 약봉지와 먹다 남은 영양제가 그득하다.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약에도 엄연히 소비기한이 존재한다. 조제약의 소비기한은 보통 2개월이다. 언제 지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조제약이라면, 폐기하는 것이 옳다. 안약은 오염 가능성이 높아 개봉 후 1개월 이내 사용하고, 연고류는 알레르기가 생기지 않도록 개봉 후 6개월 이내에 소진해야 한다.
김재환 나라온누리약국 약사는 “병원에서는 DUR(의약품 안전사용 서비스)을 통해 중복 약에 대해 검수하지만 간혹 집에 있던 약과 새로 처방받은 약을 같이 먹는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노년층에게 가장 자주 발생하는 약물 오남용 사례로 진통제를 꼽았다. 감기약에 든 해열진통제(소염진통제)와 이곳저곳 아파서 정형외과에서 처방받아 둔 진통제를 같이 복용하는 경우 진통제 용량이 합쳐져 최대상한량을 넘겨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노년층이 주로 찾는 전립선비대증약과 요실금약은 콧물, 코막힘 감기약과 같이 복용해선 안 된다. 감기약 성분이 전립선을 둘러싸고 있는 요도의 평활근을 수축시키거나 배뇨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 항히스타민제 역시 요실금약과 복용하면 증상을 더할 수 있다.
김재환 약사는 부모님께 사드릴 만한 영양제에 대해서는 “사실 꼭 필요한 영양제라는 개념은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질병 때문에 드시고 있는 약물이 우리 몸에서 어떤 성분을 부족하게 만드는지 파악하고 그것을 보충하는 방법과, 약점을 가지고 있는 질병에 도움이 될만한 영양 성분들을 채워 넣는 방법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특별한 질병이 없으신 경우 노년층은 육류의 섭취가 줄어들고 실외활동이 줄어들기 때문에 단백질 보충과 함께 미네랄 섭취(칼슘, 마그네슘, 아연, 망간, 크롬 등)와 비타민D, 항산화 영양제(비타민A,C,E, 셀레늄, 아연, 아스타잔틴, 피크노제놀) 등을 추천한다고 덧붙였다.
2. 손잡고 스마트폰 완전 정복
부모님의 스마트폰 바탕화면을 들여다보자. 주인도 모르는 사이에 깔린 각종 앱이 버젓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쓰지 않는 앱은 말끔히 정리하는 것이 보기에도 좋다.
가족, 친구와 소통하기 위해 ‘카카오톡’ 이모티콘은 능란하게 쓰시지만, 세부 사용법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유선상으로 알려드리기 힘들었던 조작법을 이번 명절에 함께 익혀보자. 시니어도 쉽게 알 수 있도록 쉬운 말과 그림으로 설명한 ‘더 쉬운 카톡설명서(talktips.kakao.com/easyread)’가 도움이 될 것이다.
요즘 웬만한 자식 못지않게 궁금증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이 유튜브다. 하지만 망가진 알고리즘은 언제 악당으로 돌변할지 모른다. 페이크뉴스나 유해한 콘텐츠에 오염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고 ‘신고’ ‘차단’ 기능을 동원한다. 더불어 스마트폰 속 유튜브 영상을 큰 TV 화면으로 볼 수 있는 ‘미러링’도 알려드리자. 임영웅을 큰 화면으로 볼 수 있게 됐다며 좋아하실 것이다.
택배 알림이나 경조사 문자로 위장한 신종 보이스 피싱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해킹에 취약한 안드로이드폰이라면 폰을 해킹하는 앱이 깔리지 않도록 차단 기능을 활성화한다. 설정에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One UI 6.0(안드로이드 기준) 이상이어야 설정이 가능하다. 이후 설정→보안 및 개인정보 보호→ 보안 위험 자동차단→사용함으로 바꾸고 동의하면 설정이 완료된다.
3. 안전 위협하는 청소 사각지대는 이곳!
노년층은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에 청소가 더욱 중요하다. 침대나 가구 밑, 높은 수납장 위 등 어르신의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쌓인 묵은 먼지와 곰팡이 제거에 힘을 써보자. 묵은 먼지나 티끌은 화재로 이어질 수도 있다. 각종 콘센트나 멀티탭의 먼지도 확인해야 한다.
살균, 소독, 곰팡이 제거에는 염소계 표백제(락스)만 한 것이 없지만 희석해서 써야 하고 또 유독가스 흡입 우려가 있다. 한태호 한국청소협회 강사는 호흡기가 약한 노년층에게 친환경 세제가 이롭다고 말한다. 세정력은 떨어지더라도 베이킹소다를 50~60도의 따뜻한 물과 섞어 분무기로 분사하거나 걸레에 묻혀 닦아내도 살균은 충분하다.
4. 확인하자! 집 안 곳곳 낙상주의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쓴 전애원 유품정리사가 “화장실 앞에 미끄러짐 방지 매트만 있었어도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사례를 많이 봐왔다”고 할 정도로 어르신 안전사고 중 상당수가 미끄러짐에 의한 낙상이다. 부모님의 댁 욕실이나 베란다 바닥에 미끄러짐 방지 테이프를 붙이거나 매트를 깔고 이동을 돕는 손잡이 등을 설치해두면 한결 마음이 놓일 것이다.
또한 안전사고 발생 시 구조 활동이 용이하도록 집 안 동선을 확보해둔다. 현관이나 계단과 마당에 늘어선 화분과 잡동사니는 평소 이동에 방해가 될뿐더러 구조를 지체시킬 수 있다.
5. 오래되고 방치된 조명, 전자기기 손보기
눈이 침침하면 만사가 귀찮아진다. 오래된 형광등은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LED 조명으로 교체한다. 먼지와 죽은 벌레들이 쌓인 조명등만 청소해도 한층 밝아진다. 방치된 고장 난 가전제품도 처분하고, 화재 위험성이 있는 오래된 전기 콘센트도 교체한다.
최근 세종시 한 아파트에서는 리콜 대상이던 김치냉장고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한국소비자원은 리콜 대상 제품 중 수거나 수리가 되지 않은 제품이 아직 1만대 넘게 남은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0년 썼는데 별일 없었다” 하시더라도, 2005년 이전 제조된 위니아 딤채 리콜 대상 제품인지 직접 확인하고 조처하자.
6. 냉장고 블랙홀 정리
부모님의 냉장고를 열어보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검은 봉지, 발효와 부패 사이 어중간한 상태인 각종 절임, 몸에 좋다지만 정체 모를 각종 가루가 몇년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방앗간에서 직접 갈아온 가루의 경우 가공된 제품처럼 살균처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1년 이내 소비해야 해요. 또 콩이나 곡류에는 유지(oil) 성분이 있어 쉽게 산화되기 쉽고 영양가가 줄어들거나 우리 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칩니다. 오랜 시간 보관하다 보면 수분 함량이 자연스레 높아져 미생물 번식 위험도 있어요.”
윤희주 영양사에 따르면 꿀에 절인 음식도 마냥 보관해선 안 된다. 꿀은 수분 함량이 낮은 고당도 음식이라 잘 상하지 않지만 마늘이나 다른 음식이 섞였다면 6개월 이내 소비하는 것이 안전하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았더라도 이취(이상한 냄새)가 나거나 곰팡이가 있다면 폐기해야 한다.
‘어디서 샀는지’ ‘누가 줬는지’ 기억나지 않는 내용물이라면 100% 버려도 된다. 먼저 냉장고 문 선반을 가득 채운 소스와 양념은 유통기한이 지났다면 폐기한다. 냉장고 문을 여닫는 동안 자주 상온에 노출되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특히 달걀이 들어간 마요네즈, 유제품 기반의 소스는 냉장 보관 2개월이 지나면 버리는 것이 원칙이다.
저온성 세균이나 박테리아에 오염될 수 있으니 냉동실이라고 방심하면 안 된다. 꽁꽁 얼어 있는 육류와 생선도 유통기한이 있다. 냉동 돼지고기의 소비기한(유통기한 경과 후 소비가 가능한 기한)은 6개월 정도고, 소시지나 햄 같은 가공육은 3~4개월로 더 짧다. 생선은 생물인 경우 3개월, 익힌 것은 최대 6개월 보관할 수 있다. 냉동만두는 개봉하지 않은 경우 1년, 개봉했다면 한 달이 지난 것은 버려야 한다. 다만 포장재의 종류나 포장 방법, 포장 손상 여부 등에 따라 제품의 오염이나 상태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확인해 섭취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
7. 정리 수납, 본격적인 덜어내기
“친정, 시댁까지 싹 다 정리해 본” ‘정리의 신’ 길세정씨(47)는 “부모님의 집을 정리할 때는 욕먹을 각오로 시작하라”고 말한다.
“부모님들은 ‘쓰냐, 안 쓰냐’가 아니라 ‘쓸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물건을 보유해요. 대부분 ‘쓸 수’는 있는 물건이기에 버리지 못하시는 거죠. 집 안 전체를 뒤집다 보면 실랑이하기 마련이니, 먼저 허락받은 곳, 이를테면 부엌 수납장이나 냉장고부터 정리하는 것이 좋아요. 물건을 비워낸 뒤 상쾌한 기분을 경험하셔야 이후 정리가 수월합니다.”
정 타협이 안 된다면 ‘보류 상자’를 만들어 쓰지 않는 물건들을 넣어놓는다. 추석에 담은 물건을 설날까지도 쓰지 않는다면 버리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집은 쉼터다. 물건이 적어야 청소와 관리도 쉽다.
정리수납업체 ‘정리의 기쁨’ 정진효 대표는 “고령자의 집은 기본 3~4명이 다 같이 반나절은 해야 정리가 된다. 혼자는 엄두조차 나지 않는 양이라 자녀의 개입이 꼭 필요하다”며 “정리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손자손녀들이 제일 좋아한다. 정리는 정서적·심리적 안정 효과를 준다. 부모님 설득이 안 된다면 손주들 핑계를 대보는 것도 경험상 한 가지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8. 무거운 생필품 채워드리기
너무 버리기만 했다간 기껏 땀 빼고 불효자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세제나 휴지 등 평소 무겁거나 부피가 커서 어르신들이 사들이기 어려운 생필품 내역을 확인한 뒤, 연휴 이후 받으실 수 있도록 주문해드리자.
9. 과거를 보며 미래를 이야기하기
일본의 신경정신과 의사 요네야마 기미히로는 어머니를 잃은 뒤 나이 든 부모의 건강 관리와 임종 준비 방법을 정리한 <부모님 살아계실 적에>를 썼다. 그는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부모님과 미리 유언장, 유산에 대한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부모님의 빚, 연금, 보험에 대해서도 파악해둘 것을 권한다. 또한 부모님이 앓고 있는 소소한 병들, 단골 병원, 그들이 원하는 간호 방법, 요양시설에 대한 생각, 나아가 장례 방법에 대해 미리 청취해두라고 이른다.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 쉽지 않다면 집 안을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진첩을 펼치고 추억을 되짚으며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10. 장수 사진 찍어보기
넉넉한 햇빛이 좋은 계절이다. “잘 나온 사진 한 장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부모님을 모델로 세울 수 있는 좋은 핑계다. 스튜디오에서 찍은 경직된 사진이 아니라, 명절마다 자연스러운 가족 사진을 촬영하면서 개인 사진을 남겨보는 것도 좋은 리추얼이 될 수 있다. 이성원 사진작가는 “창가 쪽이나 집의 가장 밝은 곳에서 부모님과 마주 본 상태에서 카메라를 고정한 다음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셔터를 누르라”고 조언한다.
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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