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도 시장이…미군부대·DMZ 시장 여성상인들 [장다르크 이야기④]
독특한 위치와 환경 속에서 전통을 이어온 이색적인 시장은 단순한 장터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는 이곳에서 시장만의 ‘색’을 잃지 않기 위해 열정과 헌신으로 빛내고 있는 여성 상인들이 있다. 개인의 성공을 넘어 시장의 전통과 가치를 지키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기획취재반은 평택과 파주로 향했다.
■ 일곱 번째 場(장)다르크. 평택의 ‘우즈벡 전통빵 장인’ 구르보노바 딜바르 대표(45) 이야기
평택국제중앙시장 입구에는 ‘어서오세요’ 대신 영어로 적힌 ‘HELLO’라는 인사가 기획취재반을 맞이했다. 시장 내 건물 벽에는 락카로 그린 벽화가 가득해 외국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지난 2005년 문을 연 평택국제중앙시장은 오산 미군부대에서 불과 300m 거리에 위치해 있어 한국뿐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점포들이 총 183곳 입점해 있다. 이곳에서는 미국의 대표적인 축제인 ‘할로윈’ 축제도 열리며, 한국인들과 외국인들의 교류의 장소로, 활기가 넘치는 전통시장이다.
이곳에서 만난 구르보노바 딜바르씨(45)는 자신의 이름을 딴 가게인 ‘딜바르빵’ 앞에서 유창한 한국어로 “대한민국 전통시장에서 우즈벡 전통 빵을 드셔보세요”라면서 손을 흔들었다.
딜바르씨가 이곳에 오게 된 사연은 마치 영화와도 같다.
8년 전 이곳 시장에서 여동생이 운영하던 우즈벡 음식점을 대신 맡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때만 해도 세 아이를 데리고 낯선 땅에 오며 설렘과 걱정이 교차했다고 한다. 특히 음식점이 한국의 전통시장 안에 있어 언어에 대한 걱정은 더욱 컸다.
그러나 평택국제중앙시장에 발을 딛자, 모든 걱정은 사라졌다. 가게의 간판은 대부분 영어로 돼 있어 언어 장벽도 쉽게 넘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군부대 근처라 그런지 다양한 외국 음식점과 전통시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타투샵, 바버샵 등 가게들이 많아요. 손님들도 대부분 외국인이라 한국 같지 않더라고요”라며 “이곳은 한국이지만, 다국적 문화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에게 이곳 전통시장이란 사랑과 인연을 맺어준 소중한 장소다. 여동생 가게를 방문한 한국인 손님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이 싹텄고, 결국 결혼까지 이어졌다.
“당신의 자식이 내 자식”이라고 말해준 이 남성과 함께 그는 한국의 전통시장에서 어릴 적 잊고 있던 꿈을 다시 펼쳐보기로 했다.
딜바르씨는 “어릴 적 우즈벡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시절 간직했던 요리의 꿈을 다시 펼치게 됐어요. 우즈벡 사람들이 바쁠 때 먹는 전통빵을 바쁜 한국인들에게도 팔아보자는 마음으로 장사를 시작한지 벌써 2년이 됐어요”라며 “첫째 딸은 지금 24살인데 여기 전통시장에서 미군과 결혼했어요. 저에겐 정말 고마운 곳이에요”라면서 밝게 웃었다.
시장 특성상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오가며, 딜바르씨는 이들과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며 친구로 지내고 있다.
딜바르씨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이 한국의 전통시장 안에 있는 우즈벡 전통 빵집에서 한국어로 소통하고, 서로의 문화를 나누는 게 참 신기해요”라고 끝을 맺었다.
한국이지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정’을 느낄 수 있는 이곳에서 딜바르씨는 자신의 꿈을 이뤄 가고 있다.
■ 여덟 번째 場(장)다르크. 파주의 ‘터줏대감’ 김공자 대표(76) 이야기
대형버스와 군용차량들이 오가고 있는 도로를 건너 들어선 파주 문산자유시장. 입구에서부터 일반 전통시장에선 볼 수 없는 단어들과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바로 가게 곳곳마다 붙어 있는‘DMZ(비무장 지대)땅굴관광’ 포스터다.
문산자유시장은 대한민국 최북단에 위치한 전통시장, DMZ와 가장 가까운 전통시장으로 불린다. 현재 116곳의 점포가 들어서 있으며, 오랜 전통과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1964년 자연스럽게 가건물로 시장이 형성돼 운영됐다가 2017년 문산자유시장으로 탈바꿈됐다.
최전방 군사분계지역과 근접한 지리적 특성을 반영해 제3땅굴, 도라산전망대, 통일촌을 경유해 관광하는 ‘DMZ 지역연계 관광’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북한의 도발에도 하나도 안 무서워. 여기 상인들은 모두 강해.”
이곳에서 만난 김공자 풍년상회 대표(76)가 서글서글한 얼굴로 뱉은 첫 마디였다.
시장 주변이 허허벌판인 밭일 때부터 40년 넘게 장사를 한 김 대표는 문산자유시장의 살아있는 역사다.
장사를 함께 시작한 청과와 수산 가게는 “무섭다”며 모두 시장을 떠날 때도 김 대표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굳건히 장사를 이어갔다.
김 대표는 “여기서 조금만 가면 북한이야. 북한이 미사일 쏜다고 했을 때 다들 무서워서 도망갔어”라며 “근데 여기서 오랫동안 장사하다 보니까 이제는 북한 소식은 옆집 소식과 마찬가지야”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사람 사는 곳이 모두 그렇듯 다른 시장과 다를 건 없지만 생산품 품질 하나는 다르다는 김 대표. 그가 판매하는 쌀과 잡곡은 모두 북한 인근에서 가져오고 있다.
그는 “개풍구역(개성의 한 구역)과 인접한 민통선 이북 마을, 장단면에서 나는 장단콩이 우리의 자랑이야. 장단면은 예전에 북한이었어”라며 “토지도 좋고 물도 맑은 남북한 접경지역에서 나온 콩은 우리 시장의 정체성이야”라고 표현했다.
과거 전쟁으로 인해 이곳에는 실향민들이 고향의 향수를 느끼기 위해 많이 방문한다고 한다. 그래서 김 대표는 처음 보는 손님이면 DMZ 땅굴 관광을 소개하는 건 당연한 일상이 됐다고 한다.
김 대표는 “나랑 친한 언니는 어릴 때 인민군을 따라 잠깐 넘어와서 80년 넘게 고향에 못 돌아가고 있어. 전망대에서 자신이 어릴 적에 살았던 집이 보인다고 하더라고”라며 “시장에 올 때마다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라고 말했다.
이제는 오다가다 만나는 이북 사람이 정겹다는 그는 “발전이 느리고 구색도 안 갖춰진 시장이지만 이 안에서 만큼은 남한과 북한이 통일된 것 같아. 서로 다독이고 함께 살아갈 힘을 줘”라고 말하며 밝게 웃었다.
이곳 상인들에게 통일은 염원이다. 통일이 되면 유동 인구가 늘어 상권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슴 한편에 품고 살고 있다.
특별한 사정을 품은 문산자유시장에 특별한 추억이 깃들어 있는 사람들. 고향이 어디든 서로를 의지하며 오늘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기획취재반
이호준 기자 hojun@kyeonggi.com
이대현 기자 lida@kyeonggi.com
이지민 기자 easy@kyeonggi.com
금유진 기자 newjeans@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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