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공연 뭐 볼까] 90년대를 추억하며 ‘굿모닝 홍콩’, 친구끼리 조선 클러버 ‘금란방’

이태훈 기자 2024. 9. 14. 11:1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웃음 눈물 감동 다 있다 ‘킹키부츠’ … 클래스가 다른 21세기 클래식 ‘하데스타운’
뮤지컬 '하데스타운' 2024년 공연. /에스앤코

연휴는 길고, 극장은 쉬지 않습니다. 추석 연휴 공연, 친구끼리 연인끼리 혹은 가족과 함께, 세대 따라 취향 따라 맞춤형 공연 추천.

◇우린 모두 장국영의 시대를 살았다 : 연극 ‘굿모닝 홍콩’

/국립 정동극장

먼저 연극. 예전에 세실극장이라고 불렀던, 서울 중구 정동의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공연 중인 연극 ‘굿모닝 홍콩’ 이야기입니다.

1987년 한국에 개봉한 전설적인 영화 두 편 기억하시나요. 5월엔 ‘영웅본색’, 12월엔 ‘천녀유혼’이 극장 개봉했습니다. 진짜 그 때 남자애들은 다 주윤발(저우룬파·周潤發·69) 따라 하느라 입에 성냥개비를 물고 다니고, 왕조현(왕쭈셴·王祖賢·57) 사진이 들어간 책받침이나 연습장 없는 애들이 없었죠. 짧았던 홍콩영화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이 두 작품, 공통점은 배우 장국영(張國榮·레슬리 청·1956~2003)입니다.

연극 ‘굿모닝 홍콩’은 장국영이 세상을 떠난 만우절, 장국영의 흔적을 따라 ‘성지순례’ 중이던 ‘장사모(장국영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이 홍콩 민주화 시위에 휩쓸리면서 겪는 이야기입니다. 연극은 아예 ‘영웅본색2′의 마지막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오우삼(존 우) 감독 영화 특유의, 권총에서 끝없이 총알이 나가고 총을 맞으면 온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다가 쓰러지는 총격전. 그리고 장국영이 전화부스에서 주윤발의 품에 안겨 죽는 그 장면을, 장사모 회원들이 추모영상이랍시고 홍콩에서 재연하다가 경찰한테 걸립니다. 별 생각없이 왔는데, 장사모 회원들은 계속해서 중국 공산당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의 저항, 우산혁명 시위대와 얽힙니다.

사실 홍콩영화의 전성기는 1997년 홍콩 반환에 대한 홍콩인들의 두려움과도 맞물려있죠. 우산혁명 시위는 중국 정부가 ‘반환 뒤 50년간 일국양제를 유지하겠다’는 약속을 깨고 홍콩을 중국의 억압적 권위주의 체제에 복속시키려는 데 맞섰던 홍콩인들의 마지막 저항이었고요. 그리고 이제 홍콩은 그 시절 홍콩영화 팬들에겐 더 이상 예전 모습으로 만날 수 없는 도시가 돼 버렸죠. 이 연극엔 그런 진한 페이소스가 있어요. 장사모 회원들이 천녀유혼을 무대 위에 재연하는 장면은 연극적 상상력이 기발합니다. 박장대소하고요. 한국에서 온 지지 시위대로 오해했던 홍콩 사람들과 장국영의 ‘월량대표아적심’을 부를 땐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27일까지고 전석 2만원, 부담 없죠. 1990년대의 추억, 홍콩영화와 장국영을 사랑했던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연극 ‘굿모닝 홍콩’입니다.

◇여기선 누구나 꿈꿔도 좋아 : 창작가무극 ‘금란방’

금주령과 이야기 금지령이 내려진 시대, 술과 이야기가 허용된 금란방의 조선 최고 인기 전기수(이야기꾼) 이지상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아슬아슬 수위를 넘나드는 이야기 퍼레이드. /서울예술단

두 번째 연휴 추천 공연은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금란방’인데요. 시대 배경이 조선 영조의 금주령이나 정조의 문체반정처럼, 술과 이야기가 금지된 시대예요. ‘금란방’은 그 모든 금기가 허물어진, 모든 게 허용되는 비밀스런 공간입니다. 금주법 시대 시카고의 밀주(密酒) 펍 같은 느낌일까요.

서울 남산 국립극장 하늘극장 앞에 가면 매 공연시작 약 30분쯤 전부터 배우들이 극장 앞에 나와 관객들과 신나게 이야기를 합니다. “어지러운 나라의 기강을 잡기 위해 백성들에게 금욕을 명한다! 특히 마음을 들뜨게 하는 술, 헛된 꿈을 꾸게 하는 이야기책을 금한다!” 그러면 관객들이 “우~” 하고 야유를 보내요.

몽둥이를 든 단속반 관리들이 “술 먹지 마세요!” 외치며 뛰어다니는데, 세련된 한복 차림 배우들이 ‘금란주’라며 달콤한 주스를 따라 주고요. 그러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웬걸, 여긴 마치 클럽입니다. 화려한 조명과 EDM(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이 눈과 귀로 쏟아져 들어와요. 음악은 클래식, EDM, 우리 전통 가락을 넘나들고, 신분 뿐 아니라 성별까지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들이 극중극으로 얽히고 섥히며 이어집니다.

객석 앞자리의 LED조명잔을 들어올려 배우들과 함께 건배도 하고, 극중극 주인공이 누구와 이어지도록 끝 맺을 것인가를 놓고 엽전을 걸어서 투표에 참여할 수도 있어요. 한 번 사는 인생, 신분의 한계나 운명의 속박 따위 떨쳐버리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하라고 말하는 작품입니다.

공연은 서울 남산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28일까지인데, 이거 중요하죠. 30% 할인 예매하고 한복 또는 한복 소품 착장하고 가서 ‘조선 클러버’로 인증 받으면 있고요. 40% 할인도 있는데 청소년은 본인 플러스 1장까지 되고, 또 ‘함께 할인’이라고 3매 이상 한꺼번에 사도 40% 할인됩니다.

◇네가 힘들 때 곁에 있을게 : 뮤지컬 ‘킹키부츠’

뮤지컬 '킹키부츠' 2022년 공연 중 '찰리'의 구두 공장에서 모든 배우들이 함께 춤추며 노래하는 컨베이어 벨트 댄스 장면. CJ ENM

관객이 대극장 뮤지컬에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갖춘 작품이라고 자신있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이 뮤지컬로 여성 최초 토니상 작곡상 수상자가 된 1980년대 팝스타 신디 로퍼가 신나는 디스코 음악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블링블링’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의상과 무대, 강렬한 춤은 기본. 아버지의 긴 그림자를 극복하고 끝내 꿈을 이루는 젊은이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에 따뜻한 우정과 풋풋한 사랑까지 함께 담았죠. 이 뮤지컬에 미국은 토니상 6개 부문, 영국은 로런스올리비에상 3개 부문 상을 안겼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오래된 신사 구두 공장을 물려받게 된 ‘찰리’. 저가 공세에 밀려 매출은 악화일로, 가족 같은 직원들을 위해 공장을 살리려 동분서주하다 여장 남자 드랙퀸 친구 ‘롤라’를 만나게 돼요. “남자가 신어도 끄떡없는, 끝내주는 부츠를 만들자!” 사람들의 몰이해, 사회의 편견, 못난 아집과 싸우며 찰리와 롤라는 새 브랜드 ‘킹키부츠’의 이탈리아 밀라노 패션쇼 데뷔를 준비합니다.

올해 한국 라이선스 10주년, 6번째 시즌 공연입니다. 역에 그동안 무대에 섰던 한국 대표 뮤지컬 배우들이 총출동합니다. ‘찰리’ 역에 김호영, 이석훈, 김성규, 신재범, ‘롤라’ 역엔 박은태, 최재림, 강홍석, 서경수가 무대에 섭니다. 안무와 연출을 맡은 제리 미첼을 개막 전에 만났는데요. “뉴욕에서 통한 이야기가 런던에서 안 통하거나 그 반대일 때도 있는데, 킹키부츠는 뉴욕과 런던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모든 다른 나라 관객들이 한마음으로 사랑해줬다”고 하더군요.

“이 공연의 무대는 구두 공장, 한 마을과 같아요. 관객은 인물들 속에서 각자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죠. 가족의 기대에 버거워하는 구두 공장 사장 ‘찰리’, 늘 사랑에 실패하는 실수투성이 직원 ‘로렌’, 자신안의 예술가 기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과 싸워온 ‘롤라’…. 심지어 마초 남자 직원 ‘돈’에게서도 누군가는 남자다워야 한다는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자신을 볼 테니까요.” 그 ‘마초남’까지도 이 뮤지컬의 마지막 패션쇼 장면에선 모두 함께 화려한 롱 부츠를 신고 런웨이에서 함께 춤추고 노래합니다.

명절 스트레스 해소에도 딱 좋습니다. 흥 넘치는 디스코 리듬의 노래와 강렬한 춤에 어깨를 들썩이다 보면 피로와 짜증은 저 하늘 멀리로! ‘네가 힘들 때 곁에 있을게 /삶이 지칠 때 힘이 돼줄게….’ 마지막 노래에 눈물이 핑 돌지도 모릅니다.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11월 10일까지, 8만~17만원. 이후 부산 드림씨어터로 넘어갑니다.

◇클래스가 다르다 : 뮤지컬 ‘하데스타운’

/에스앤코

‘넌 또 출근해, 또 출근해, 퇴근은 없어….’ 마녀들이 부르는 이 복장 터지게 애절한 노래 속에, 지옥의 왕 하데스가 지배하는 하데스타운의 사람들은 고향도 잊고 이름도 잊은 채 고된 노동의 춤을 춥니다. 지금 극장에서 꼭 봐야 할 뮤지컬 한 편을 추천한다면 단연 이 작품, 21세기의 새로운 고전이 될 ‘하데스타운’입니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를 뉴올리언스풍의 재즈와 포크 록에 실어 대공황기를 연상시키는 스팀펑크 분위기의 현대적 서사로 재해석했습니다. 초연부터 “완벽하게 천국 같은 작품”(버라이어티)이자 “현대의 우화가 된 그리스 신화”(가디언)로 극찬받았고, 브로드웨이에서 벌써 1억8900만달러(약 2600억원) 매출을 올렸어요. 우리나라에선 코로나 팬데믹 와중이던 2021년 초연에 이어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라이선스 재연이 진행 중입니다.

무대 위에 펼쳐지는 이야기가 먼 나라의 일,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면 아무도 보지 않겠죠. 이 작품 ‘하데스타운’이 관객을 사로잡는 힘의 요체는 신화를 지금 우리 이야기로 다시 풀어낸 동시대성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술가 오르페우스(조형균·박강현·김민석)는 가혹한 겨울을 보내고 봄을 불러올 노래를 완성하려 발버둥치느라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연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에우리디케(김수하·김환희)는 배고픔과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하데스가 내민 ‘노예 계약서’에 서명합니다. 젊은이들 앞에 펼쳐진 세상이 황량하고 신산한 것은 신화 속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인 거죠.

고된 불황기를 연상시키는 지상 세계는 자유로운 대신 춥고 배고프고, 하데스타운에선 허기를 채우기 위해 하데스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인간들이 녹슨 기계를 돌리며 장벽을 쌓아 올립니다. 이 설정은 이민을 막기 위해 국경 장벽을 쌓았던 트럼프 시대의 미국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리스 앞바다에서 ‘안티키테라’라 불리는 기원전 고대의 기계가 발견됐던 일 기억하시나요? 이 뮤지컬은 마치 그런 ‘로스트 테크놀로지(lost technology·SF 등에서 현대에 재현하지 못하는 실전(失傳)된 고대 기술을 가리키는 말)’로 만들어진 신화 속 기계 같아요. 배우·음악·무대장치 등 무대 위 모든 것이 우아하게 세공된 톱니바퀴처럼 쉬지 않고 움직이며, 그 전체가 어우러져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이룹니다. 비록 끝이 정해져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꿈과 사랑,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지옥 끝까지라도 가보는 것이 젊음이겠죠. 신화의 결말을 알면서도, 무대 위 젊은이들은 비극의 끝에서 다시 처음부터 노래를 시작합니다.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10월 6일까지, 8만~17만원. 그 뒤 부산 드림씨어터로 넘어갑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