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판결문에 실린 '김 여사 녹취록'…처분 영향은?

원종진 기자 2024. 9. 1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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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의 사법' 자초한 검찰…다가오는 '존재론적 딜레마'
서울고등법원은 그제(12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2심을 선고했습니다.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을 비롯한 피고인들 대부분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유죄 판결이 선고됐는데, 다른 점도 있었습니다. 1심이 단순 '전주(錢主)'로 평가해 무죄로 판단했던 손 모 씨가 주가조작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겁니다. 2심 재판부는 1심과는 시각을 약간 달리해, 손 씨는 단순히 '전주'가 아니라 주범들의 요청에 따라 매매 시점을 늦추는 등으로 관여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일찌감치 세간의 관심은 권오수 전 회장 등 주요 주가조작 세력들보다 '방조' 혐의가 적용된 손 씨의 유무죄 여부로 쏠려 있었습니다. 많은 대중들의 머릿속에서 '손 씨의 유무죄≒김건희 여사 유무죄' 라는 수식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심에서 손 씨가 '방조' 혐의 유죄를 선고받으면서, '수십억 원대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거래한 김 여사도 기소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는 형국입니다. 이런 상황은 사실 대통령실이 초래한 측면이 큽니다. 지난해 2월 도이치모터스 1심 선고 직후 대통령실이 "'큰 손 투자자' 손 모 씨의 경우에도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는데, 같은 논리라면 '3일 매수'로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관여 사실이 인정될 리 없다."는 입장을 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실이 스스로 '전주' 손 씨와 김 여사를 비교선상에 올려놓은 상황 속,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하는 검찰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 분한테 전화 들어왔죠?"…판결문에 실린 녹취록


SBS는 판사, 검사 등 법조인들의 의견과 함께 300여 쪽에 달하는 도이치모터스 2심 판결문을 상세히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2심 판결문에는 법조인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한 '특이점'이 있었습니다. 재판의 직접 피고인도 아닌 '김건희 여사' 관련 내용들이 판결문 전반에 상세하고 풍부하게 담겨있는 겁니다. 이 사건 수사에 참여한 적이 있는 검찰 관계자는 "해당 사건 선고만을 위해서라면 김건희 여사를 꼭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에도 김 여사 관련 내용이 상세히 설시돼 있는 것 같다"며 "피고인도 아닌 사람의 이름이 이렇게 많이 등장하는 판결문은 처음 보는 것 같다"고 평했습니다. 판결문을 살펴봤다는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이미 기소된 피고인들뿐만 아니라, 김 여사처럼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까지 포함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전반을 바라보는 재판부 시각이 녹아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김 여사와 증권사 직원과의 대화 녹취록 4개가 판결문 본문에 그대로 실린 것이 대표적입니다. 재판부는 특히 공소시효가 지난 기간 동안에 이뤄졌던 김 여사와 신한투자증권 직원과의 녹취록까지 판결문에 자세히 실었습니다. 해당 녹취는 여러차례 보도됐던 김 여사의 '대신증권 녹취록'과는 달리,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기도 합니다.

 

<판결문에 실린 2010.1.25.일자 신한투자증권 녹취록>

김건희 여사 : 네 지점장님.
담당자 : 아 네, 이사님 지금 4만주 샀구요. 2,439원이고 되면 정가에 더 넣도록 하겠습니다.
김건희 여사 : 네 알겠습니다. 그 분한테 전화 들어왔죠?
담당자 : 예예예.
김건희 : 네 알겠습니다.
담당자 : 예.

<판결문에 실린 2010.1.26.일자 신한투자증권 녹취록>

김건희 여사 : 네 지점장님.
담당자 : 아 네 이사님, 네네. 지금 2,440원까지 8,000주 샀구요 추가로,
김건희 여사 : 또 전화 왔어요? 사라고?
담당자 : 네네 추가로 2,440원까지 그렇게 사겠습니다.
김건희 여사 : 네 알겠습니다.
담당자 : 사지면 문자로 수량과 가격 보내겠습니다.
김건희 여사 : 네, 그러세요.



재판부는 김 여사의 녹취록들이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의 유죄 입증 근거 중 하나라고 판단했습니다. 검찰은 김 여사의 3개 증권사 (디에스, 미래에셋, 대신) 계좌들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활용됐고, 특히 권 전 회장이 김 여사 명의 대신증권 계좌의 주가조작에 관여했다고 봤습니다. 이에 대해 권 전 회장은 '김 여사 명의 계좌는 김 여사가 증권사에 일임해 알아서 매매한 것'이라며 본인과는 상관이 없다는 취지로 항변해왔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대신증권 녹취록>뿐만 아니라, 공소시효가 지난 기간에 이뤄진 <신한투자증권 녹취록>까지 상세히 제시하며 권 전 회장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김 여사가 권 전 회장으로 추정되는 '그 분'을 반복적으로 언급한 맥락을 봤을 때, 권 전 회장이 김 여사 계좌 매매에 깊숙이 관여했다고 본 겁니다.
 

김 여사 녹취록 vs 1심 '전주' 손모 씨 문자…저울질하는 검찰


재판부가 제시한 녹취록과 판결문 내용을 종합했을 때, 김 여사는 권 전 회장이 자신의 증권 계좌 거래에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알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핵심은 김 여사가 과연 '권오수 회장 등 주가조작 세력이 시세조종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았느냐'입니다. 재판부는 이 쟁점과 관련해 중요한 녹취록을 2개 더 판결문에 제시합니다. 공소시효가 살아있는 2010년 10월과 11월 이뤄진 김 여사와 대신증권 직원 사이 통화 녹취록입니다.

 

<판결문에 실린 2010.10.28.일자 대신증권 녹취록>

김건희 여사 : 여보세요.
담당자 : 예, 교수님. 저, 그, 10만 주 냈고,
김건희 : 예
담당자 : 그, 그거, 누가 가져가네요.
김건희 : 아, 체, 체결 됐죠.
담당자 : 예. 토러스 이쪽에서 가져가네요, 보니까.

김건희 : 그럼 얼, 얼마 남은 거죠?
담당자 : 이제 8만 개 남은 거죠.
김건희 : 아. 아니, 그니까 그거 나머지 금액이 어떻게 되냐고요. 지금 판 금액이요.
담당자 : 3,100원.

<판결문에 실린 2010.11.1.일자 대신증권 녹취록>

김건희 여사 : 여보세요.
담당자 : 여보세요.
김건희 여사 : 네.
담당자 : 네. 저, 김건희 고객님 되시지요?
김건희 : 예.
담당자 : 예. 여기 대신증권 목동지점 ○○○이라고 합니다.
김건희 : 네, 네.
담당자 : 네. 방금 그 도이치모터스 8만 주,
김건희 : 예
담당자 : 네. 다 매도 됐습니다.
김건희 : 아, 예 알겠습니다.



공소시효가 아직 남아있어 김 여사 처분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위 녹취록은 수사 과정에서도 첨예한 쟁점이 됐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전임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 재임 시절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수사팀은 특히 10월 28일자 녹취록에 주목했습니다. 김 여사가 자신 계좌에서 나간 10만주 대량매도 주문이 곧바로 체결되는 상황 속에서 '아, 체결됐죠'라고 대답한 대목을 의심한 겁니다. 이 녹취록은 재판과정에서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는데, 김 여사가 1심과 2심에서 모두 시세조종으로 인정된 이 거래를 사전에 알고 있었기에 '체결됐죠'라는 대답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습니다.

관련기사 링크 : [단독] '통정매매' 질의 · '제3장소 대면' 제안에 묵묵부답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7729770&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당시 수사팀은 지난해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수사 진행을 위해 김 여사 대면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하지만 잘 알려진 것처럼 이는 지난해 말 용산 대통령실과 서울중앙지검 사이 불거진 '갈등설'의 진원지가 됐고, 당시 수사팀은 김 여사에 대한 대면 조사는커녕 서면 조사 답변서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또 해가 바뀌었고, 현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7월이 돼서야 김 여사로부터 관련 부분에 대한 서면 답변서를 받고 '제3의 장소'에서의 대면조사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검찰은 김 여사가 권오수 등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세력의 시세조종을 알고 있었다는 '직접 증거'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위 녹취록처럼 보기에 따라 시세조종을 알고 있었다고 해석될 수 있는 정황 증거 외의 '물증' 말입니다. 이는 2심에서 주가조작 '방조' 혐의가 인정된 손 씨의 경우와 다른 지점이기도 한데,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 손 씨와 주가조작 세력 간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여러 개를 실어놓기도 했습니다.

 
<판결문에 실린 2012년 손 모 씨-주가조작 세력 김ㅇㅇ간 문자 메시지>
날짜 시간 발신자 수신자 메시지 내용
2012.4.2 12:06:45 김ㅇㅇ 손모씨 기관들 매수유입될꺼구요. 1차 목표가는 8천원입니다.
2012.7.9 17:41:23 김ㅇㅇ 손모씨 지금 머리를 짜고짜고있습니다. 회장과ㅡ 부사장과 ㅇㅇㅇ이와..
2012.7.13 14:17:47 김ㅇㅇ 손모씨 10분이면 다들어갈꺼에요. 종가에 조금만 쏴주세요.
2012.7.13 14:18:31 손모씨 김ㅇㅇ 몇주. 몇주정도
2012.7.13 14:20:31 김ㅇㅇ 손모씨 한 오천주만 쏴도..
2012.7.13 14:32:49 손모씨 김ㅇㅇ 언제 쏘라는거니 종가야 어디야


때문에 현재 검찰은 2심에서 '전주' 이상의 적극적 관여가 있었다고 인정된 손 모 씨와 김 여사 사이에는 여러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특히 2심 판결문에서 김 여사의 계좌 거래에 대해 '피고인 권오수 등의 의사관여 하에 거래가 이루어지고, 증권사 담당자는 그 지시에 따라 주문제출만 하였을 뿐이며, 김건희가 그 후 거래결과 및 거래금액을 사후적으로 확인하거나 증권사 담당자가 김건희에게 사후보고를 하고 있을 뿐'이라고 판단한 대목도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소용돌이의 사법' 자초한 검찰…다가오는 '존재론적 딜레마'


어제 퇴임식을 한 이원석 검찰총장은 현 시대 법조계가 '소용돌이의 사법' 상태에 빠져있다고 평했습니다. 지금은 "검찰과 사법에 사회의 모든 문제를 몰아넣고 맡겨 오로지 자기 편을 들어달라고 고함치는 '소용돌이의 사법' 시대"라는 것입니다. 이 총장 말처럼, 너무 많은 것들을 법조계에 던져놓고 끝장을 내보려는 세태가 만연하고, 이로 인해 검찰과 사법기관의 부담이 커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김 여사와 관련한 사건을 처리하는 검찰도 이 '소용돌이'가 거세지는 데 일조한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와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기 에너지를 얻어가고, '소용돌이'는 그 형성기로부터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크고 강해지기 마련입니다. 도이치모터스 수사 시작 이후 벌써 4년 넘는 시간이 흐른 상황 속에서, 검찰은 또 한 번 2심 판결 이후로 김 여사 처분을 미뤘습니다. 그렇게 미루고 또 미뤘는데, 2심 재판부는 '전주' 손 씨에 대한 방조 혐의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렇게 대중들의 뇌리 속 '손 씨 유무죄≒김건희 여사 유무죄'의 등식 회로에는 다시금 강한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현재까지의 수사 상황과 판결문들을 다시 검토하고 있는 검찰은 김 여사를 무혐의 처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이제는 가장 핫한 정치 이슈가 된 이 사건 처분을 두고 일게 될 감정의 소용돌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어쩌면 검찰은 이번 사건 처분 뒤 존재 자체에 대한 거센 질문을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퇴직한 한 검찰 간부는 "윤석열 사단이 검찰의 핵심 주류로 등장하기 이전, 검찰은 '정치 검찰'이라는 욕을 먹더라도 집권 후반기의 때를 기다려 권력 수사를 진행해 시끄러운 일들을 정리해왔다"고 말했습니다. 매번 권력의 눈치를 본다는 비판은 받았지만, 사람들은 검찰이 적당히 정치적으로 타협하는 정도 선에서 털어낼 것들을 털어낸다고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권력에도 거침없이 칼을 겨눈다'는 특수통의 문법을 신조이자 상징자본으로 삼던 이가 대통령이 되면서부터 상황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살아있는 권력에 서슴없이 칼을 들이대지 않는 검찰은 검찰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어쩌면 '살아있는 권력' 그 자체인지도 모르는 김건희 여사에 대한 검찰의 결단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안타깝지만 '법리와 원칙에 따라' 일하기만 하면 됐던 시절은 이미 저 멀리 지나가 버린 것 같습니다. 더욱 거세질 소용돌이와 존재 이유 자체에 던져질 사회적 질문들. 새로 취임하는 수장을 맞이하는 검찰 앞에 거대한 짐이 놓여있습니다.

원종진 기자 be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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