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분야를 지키는 '쟁이'들] ①대구 동문사 조용달 대표

김민규 2024. 9. 1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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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쟁이 인생, 이젠 가족 같은 가죽이죠…3대가 가죽업에 자부심"

가죽 수선업을 43년째 이어온 조용달(60) 씨가 손잡이가 헤진 명품 가방을 수리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정품 가죽과 동일한 가죽으로 제작한 손잡이는 본래 가죽과 차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만들어졌다./대구=김민규 기자

사회가 급변하면서 다양한 직업이 사라지고 있다. 그중 특정 분야의 경우 '더 이상 기술을 배울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일부는 장인들을 통해서 힘겹게 기술의 명맥이 유지되고 있지만 옛 명성은 사라진 지 오래다. 대구는 한 때 '섬유 도시'라고 불렸지만, 이면에는 '기술의 도시'라고도 불릴 만큼 다양한 기술자들이 존재했다. 한때 대구 지역에서 가죽수선부터 구두수선, 시계수리, 맞춤양복, 열쇠 등의 기술로 명성을 날렸던 숨은 고수들을 만나 역사와 현재 상황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더팩트ㅣ대구=김민규 기자] "일본 사람이 '싸이코(?)'라고 하길래 싸움까지 날 뻔했었죠."

대구 중구 구두 골목 한편에서 '동문사'라는 이름으로 가죽 수선업을 43년째 하고 있는 조용달(60) 대표. 매장의 크기는 100㎡가 채 되지 않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그는 '가죽장인 신의 손'으로 통한다. 그의 매장에는 늘 백화점이나 전문 매장 등 전국에서 찾아온 가죽 제품이 줄지어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45년 전 그는 가정형편 때문에 일찌감치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기술을 배운다는 명목에 월급은커녕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할 때는 손찌검까지 당하기 일쑤였다. 새벽까지 바느질하며 일을 배웠지만 매장을 여는 건 언감생심이었고 월세 낼 돈조차 없었다.

그러다가 매장이나 업체 물건만 주로 취급하는 '나까마(중간 수리업)' 수선을 전문적으로 맡으면서 숨통이 트였다. 다른 매장보다 꼼꼼하고 실력이 있다는 소문이 나자 그의 매장에는 일거리가 끊일 날이 없었다. 대학 문턱에도 간 적이 없는 그였지만 '조 박사'라고 불리며 그의 매장은 '조 박사집'이라고 알려졌다. 일거리는 점점 늘었고 방송 출연까지 하면서 유명 인플루언서 사이에서나 SNS에서 '조 박사'로 통한다.

'조 박사' 조용달 대표의 손을 거치면 해어진 가죽이 복원까지 가능해 SNS에서 '찐장인'으로 통한다./대구=김민규 기자

'동문사'는 대구 경상감영공원 인근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코스로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붐비는 곳이다. 하지만 조 대표의 매장에 외국인이 손님으로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찢어진 가방을 든 여성이 매장에 들어온 날은 예외였다. 그녀의 표정에서 이미 상황이 드러났지만, 말없이 가방만 내밀었다. 한눈에 봐도 고급 가죽 가방이었지만 오래된 탓에 가죽 자체가 찢어져 있었다. 뒤따라온 여성은 자신이 가이드라고 소개하고 가방을 준 여성은 일본 관광객이라고 설명했다. 뜯어진 부분의 실밥을 제거하고 동일한 가죽으로 바꾸면 되는 상황이었다. 이틀 만에 수선을 해주자, 관광객은 조 대표에게 '싸이코'라는 말을 했다.

"처음에는 '싸이코'라고 들렸는데 싸이코가 아니라 싸이코오(さいこう) 즉 일본어로 최고의 칭찬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실컷 고쳐줬더니 욕을 하는 줄 알고 당황했는데 일본인에게 최고라는 말을 들으니 어깨가 으쓱해지더라고요."

한번은 이탈리아 본사에서 수선이 불가능하다는 명품 가방을 8만 원에 수선해 업계로부터 '저렴하고 솜씨 있는 곳'이라고 알려지기도 했다.

SNS에서는 이미 조 대표의 실력은 소문난 지 오래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은 가방이나 지갑을 리폼까지 하는 실력에 전국에서 택배가 밀려든다. 30여 년을 아내와 함께 지킨 매장 한쪽에는 딸과 사위가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분주했다.

손재주가 남달랐던 딸은 학생 때부터 수선업에 관심을 가지더니 이젠 제법 수준급이란 소리를 듣는다. 몇 년 전부터는 사위까지 가세해 가족 전체가 수선업에 종사하고 있는 만큼 이들의 기술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

"가죽이라는 게 참 묘해요. 같은 가죽이라도 가공 방법에 따라 사용처와 내구성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죠. 가공을 오래 한 것처럼 한길만 보고 살아온 만큼 수선업에 대한 자부심을 버리지 않고 3대가 가죽업을 했다는 '동문사'로 남고 싶은 것이 현재 유일한 바람입니다."

아내와 생업을 이어오던 동문사에 딸과 사위가 합류했다. 조 대표는 "가족 기업으로 거듭나 100년 가게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대구=김민규 기자

tktf@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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