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4억 지방의료원은 의사 없는데, 못 벌고 힘든 국립대병원엔 있는 이유 아나”

강지원 2024. 9. 14. 10: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년 봉직 충북의대 떠난 배장환 전 교수] 
환자가 있어야 의사 있다는 점 직시해야
의대 증원, 지역·필수 의료 강화 대책 아냐
'압도적' 지역의료기관 키우는 게 최선책 
서울 상급종합병원으로 환자 쏠림 막아야
“연봉 4억 원을 줘도 지방 의료원에 안 갑니다. 대신 보수가 훨씬 적고 일은 많은 인근 국립대병원에는 의사가 있어요. 왜 그럴까요. 지방 의료원에는 진료할 환자가 없습니다. 환자가 없으면 의사는 존재가치가 없으니까 안 가는 겁니다.”
-배장환 전 충북대 의대 심장내과 교수
20년간 지역에서 환자를 돌보다 지난 7월 사직한 배장환 전 충북대 의대 교수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지난 20년간 충북대병원에서 환자를 돌봐온 배장환 전 충북대 의대 심장내과 교수는 7개월째 지속되는 의료공백 원인을 이같이 짚었다. 충북권역응급의료센터장 등을 역임하며 지역·필수 의료 선봉에 서 있던 그가 지역·필수 의료를 강화하겠다며 의대 증원을 추진하는 정부와 대학에 반발해 지난 7월 사직해 부산의 민간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올해 상반기에만 전국 국립대병원 교수 223명이 사직했고, 전공의(1만2,000명)와 의대생(1만8,000명) 대부분이 병원과 학교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전공의 부재에 응급 의료 시스템 붕괴는 초읽기에 들어갔다. 뒤늦게 정치권이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 논의에 착수했지만 ‘의대 2,000명 증원’을 둘러싼 입장 차로 진척이 없다. 의정갈등 해결 실마리를 찾기 위해 배 전 교수를 11일 만났다.

12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 의료진 인력부족 관련 안내문이 띄워져 있다. 연합뉴스

-사직 이유는.

"충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1994년 충북대병원에서 인턴을 했다. 수련 기간에 우리 병원에서 할 수 없는 시술과 수술 때문에 서울로 가는 환자들을 숱하게 봤다. 그들이 지역 병원에서 잘 치료받을 수 있게 하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짧은 의대 교수 생활을 거쳐 2005년 모교로 돌아왔다. 학생들을 가르쳐서 좋은 의사로 키우고, 전공의들을 양성해 후배 교수로 함께 일하면서 지역필수 의료 인력이 늘어났다. 이 세 가지 사명(환자 치료, 학생 교육, 전문의 양성)을 낙으로 살았는데 정부가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을 발표하면서 학생들이 휴학하고, 전공의들이 사직했다. 이들이 없으니 환자들을 돌볼 수 없게 됐다. 내가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정부는 지역·필수 의료를 강화하기 위해 의대 증원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역·필수 의료 강화는 의대 증원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학생이 늘어나면 우선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 정원이 4배로 늘어나는 충북대 의대는 3, 4학년부터 임상실습을 한다. 지금은 100명이 병상 800개가 있는 충북대병원에서 실습한다. 1인당 8명의 환자를 본다. 그런데 4배로 증원돼 400명이 임상실습을 하려면 산술적으로 3,200병상이 필요하다. 국내 최대 규모인 서울 아산병원(2,784병상)보다 더 큰 병원이 필요하다. 충북대병원에만 2조4,000억 원(2,400병상 추가분)이 필요하다. 교수도 늘려야 한다. 충북대 의대 교수를 4배 늘려 400명을 채용하면 인건비는 수백억 원이 든다. 32개 의대에 2030년까지 5조 원, 그마저도 의대에는 2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정부안으로는 어림도 없다. 설령 인력과 시설을 확보한다고 해도 지역 인구를 따졌을 때 입원할 환자가 없다."

-정부가 의료계에 과학적 근거를 갖춘 대안을 요구했다.

"정책을 의사가 만드나. 정부가 의료계에 단일안을 요구하는 것은 배임이다. 의료계는 3월부터 일관되게 의대 증원 정책 백지화 등 8대 요구안을 제시했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에 문제가 왜 없겠나. 문제가 있으면 정부가 데이터에 기반해서 문제를 파악하고 논의해서 정교하게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2,000명을 던져놓고 값을 흥정하듯이 1,500명으로 줄였다가 의료계가 반발하니까 ‘밥그릇 지키기’ 프레임으로 의사 집단을 악마화했다. 정부가 의사에게 환자들을 볼모 삼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 환자를 지키는 건 잠도 못 자고 일하는 의사들이다."

채희복 충북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장 등이 지난 9일 오후 충북대 의대 본관 앞에서 의대 증원 반대 입장을 표명한 뒤 삭발식을 열고 있다. 청주=연합뉴스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그걸 정부가 노린 거다. 의료계에 책임을 미루면서 6개월을 버틴 거다. 하지만 아직 정부가 선택할 기회는 있다. 의대 증원으로 수험생 혼란을 겪을 것이냐, 응급실 뺑뺑이 등 의료 혼란을 겪을 것이냐의 기로에 있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천재지변이 발생했을 때 대입전형을 조정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누구는 천재지변이 아니라고 하지만 국민 생명이 달린 일 아닌가. 코로나19로 2020년 수능이 12월로 연기된 적이 있고, 2017년 수능 전날 경북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수능 시행이 미뤄진 적이 있다. 일본에도 유사 사례가 있다. 1968년 도쿄대 의대생들이 의사법 개정에 반대해 수업을 거부했다. 대학 총장단과 갈등이 길어지면서 전교생이 유급 위기에 처했다. 결국 도쿄대는 1969학년도 입시를 하지 않았다.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가 안 되면 2026학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는 더 힘들다. 이미 교수도 뽑았고 시설도 지었으니 의대 증원은 돌이키기 어렵다고 할 게 뻔하다. 정부는 의정갈등에 수험생과 학부모까지 끌어들인 꼴이 됐다."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철회하면 사태가 해결될까.

"해결을 위한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 의대 증원이냐 감원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의대 증원이 필요한가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하고, 그렇다면 얼마나, 어떻게, 어디에 늘려야 하는지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따져봐야 하지 않나.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2035년 의사 1만 명이 부족하다고 치자. 그러면 증원 시기나 규모, 배분 등을 의료계와 치열하게 논쟁해야 한다. 정부는 5년간 의대 정원 2,000명을 늘리면 2031년부터 신규 의사가 매년 2,000명씩 배출돼 지역·필수 의료가 개선된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정부는 의료계와 120회가량 논의했다고 하지만 의대 증원이 제대로 논의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근본 대책 없이 정치적 득실만 따져서 해결하려고 하면 의사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지난 6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앞으로 의료진들이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지역·필수 의료 강화를 위한 근본 대책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지역에 압도적인 의료기관을 만드는 거다. 의대생을 2,000명 늘리는 게 아니라 권역책임의료기관에 막대한 투자와 지원을 아낌없이 해야 한다. 지역 병원에서 대동맥 분리 수술 등을 할 의사들이 없다. 훌륭한 의사와 시설을 갖춰야 한다.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린다고 훌륭한 지역 의사가 배출되는 게 아니란 얘기다. 두 번째는 전 국민이 건강보험을 갖고 있는 국가 중에서 상급종합병원으로 갈 때 환자와 보호자가 결정하는 구조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지역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자가 무조건 서울 상급종합병원으로 가는 구조를 막아야 한다. 생색내기용 정부 예산 투입이나 경증환자의 응급실 이용 제한 등 단기 조치로는 부족하다. 지역에서 환자가 잘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부터 갖춰야 한다. 의대 증원은 일본처럼 복지부 산하 의사 수급 추계기구를 별도로 만들어서 논의해야 한다. 15년간 점진적으로 의사를 늘린 일본조차도 오히려 의료비만 증가되는 결과가 나오자 방문 진료, 재택 진료 등의 시스템을 도입했다."

-의정갈등 해결을 위한 첫 단추는.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사과가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가 됐다.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고 의대 증원 정책을 돌이키지 않으면 해결은 어려울 거다. 그렇지 않으면 전공의나 의대생은 돌아오지 않을 거고, 남아 있는 교수들도 떠날 거다. 당장 우려되는 추석 연휴 의료 대란은 남은 의료진이 어떻게든 막아서 버틸 거다. 하지만 연말이 되면 의료 현장에 남은 이들은 더 이상 없을 거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