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오면 섭섭하고, 오면 반갑고, 가면 또 섭섭하지”[신문 1면 사진들]
※신문 1면이 그날 신문사의 얼굴이라면, 1면에 게재된 사진은 가장 먼저 바라보게 되는 눈동자가 아닐까요. 1면 사진은 경향신문 기자들과 국내외 통신사 기자들이 취재한 하루 치 사진 대략 3000~4000장 중에 선택된 ‘단 한 장’의 사진입니다. 지난 한 주(월~금)의 1면 사진을 모았습니다.
■9월 9일
월요일자 1면 사진은 경향신문사와 대한육상연맹이 주최하는 제54회 대통령기 전국통일구간마라톤대회 사진입니다.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를 출발해 파주 임진각까지 46.8km를 여섯 구간으로 나눠 선수들이 이어 달리는 대회지요. 1971년 남북적십자회담 개최를 계기로 창설된 마라톤입니다. 대회명에 낀 ‘통일’이라는 익숙한 단어가 낯설게 읽혔습니다. 경색된 남북관계 탓인지 선수들의 뛰는 모습도 무겁게 느껴지는 것 같았고요. 대회가 열리는 동안 북한에선 오물 풍선을 띄웠습니다. 임진각에서 선수들의 골인을 기다리던 사진기자는 틈틈이 북쪽 하늘에 시선을 던져 풍선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통일마라톤’과 ‘오물 풍선’…어울릴 수 없는 사건이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난 날이었습니다.
■9월 10일
파리 올림픽 후 이어서 패럴림픽이 열릴 때, 지면이든 온라인이든 관련 사진을 자주 노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국내외 이슈에 끌려가다가 패럴림픽을 놓쳤습니다. ‘보치아’라는 종목에서 대회 10연패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지만, 경향신문은 1면 메인사진으로 쓰지 못했습니다. 앞서 파리 올림픽 여자 양궁 10연패 때를 생각하면, 장애인 경기는 지면에서도 차별을 받았습니다. 폐회식 사진을 1면에 썼습니다. 때늦은 반성문 같은 사진입니다. 대회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은 금메달 6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4개로 종합 순위 22위의 성적을 거뒀습니다.
■9월 11일
‘가을 폭염’이 장난이 아닙니다. 아니나 다를까 서울에 ‘사상 첫 9월 폭염경보’가 발령됐습니다. 기자들은 ‘사상 첫’ 같은 단어에 사족을 못 씁니다. 사진 회의에서 추석 앞둔 우체국물류센터 사진이 1면에 배정됐지만, 폭염경보 속보를 보는 순간 1면 사진을 바꿔야하나 고민에 빠져들었습니다. ‘찍을까 말까’ ‘할까 말까’ 할 땐 일단 하는 게 대체로 맞습니다. 어디 가서 뭘 찍을 건가를 정하고, 해 지는 시간을 확인했습니다. 해 저물고도 어두워질 때까지 긴 시간을 한강공원에서 뻗친 사진기자는 강변에서 더위를 식히는 시민들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흔히 보는 사진이지만 ‘사상 첫’이라는 타이틀이 사진을 달리 보이게 합니다. 한강 다리의 분수쇼와 조명이 시원함을 더했습니다.
■9월 12일
어떤 뉴스는 일찌감치 1면 사진 자리를 꿰찹니다. 미국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와 도널드 트럼프의 첫 TV토론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몇 주 전 토론 예고기사를 보자마자 ‘토론하는 날 1면 사진 걱정은 없겠다’고 생각했더랬습니다. 국내 대부분의 공중파 방송사와 뉴스채널들이 이 토론을 생중계했습니다. 국내 대선 토론도 이 정도였나 싶을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외신을 통해 관련 사진들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1면이 명확한 토론 사진 중에 어떤 사진을 고를지 고민합니다. 분위기로 갈 것인가, 표정으로 갈 것인가. 한 장으로 쓸 것인가, 두 장을 붙일 것인가. 결국 해리스와 트럼프의 ‘표정과 제스처’를 맞춰서 썼습니다. 다음날 본 타 일간지의 1면 사진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사진 중에서 고르고 골랐을 눈들이 비슷하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차별화하지 못한 것은 게으름이 아닌가 하고 돌아보게 됩니다.
■9월 13일
신문사진도 유행을 탑니다. 10년, 20년 전에 흔하던 사진들이 보기 드물어졌거나 아예 안 보이기도 합니다. 서울에 기반을 둔 일간지의 사진기자들은 큰 사건·사고가 아니면 서울을 잘 벗어나지 않습니다. 서울과 수도권 중심의 사진이 대부분의 지면을 채웁니다.
명절이 가까우면 사진기자들이 시골의 오일장을 많이들 찾았습니다만, 요즘은 사진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유행에 뒤처진 소재가 된 것 같습니다. 어느 선배는 “대부분이 도시에서 나고 자라고, 사진기자나 편집기자들도 세대가 바뀌면서 시골과 그 정서로부터 멀어져서”라고 일리 있는 진단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명절 앞둔 시골 오일장 같은 소재는 새롭지는 않더라도 매년 기록해야 할 가치를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역에서 고향가는 열차에 오르는 귀성객들의 사진을 ‘서울에서의 시선’이라고 한다면 시골 오일장은 ‘지역에서의 시선’이겠지요. 지역에서의 시선은 사진을 좀 더 풍요롭게 하는 것 같습니다. 오일장에서 이른 아침 장을 보고 집으로 향하는 ‘할매들’의 모습에서, 자식 손주 기다리는 설렘과 고향의 정이 읽혔으면 좋겠다며 준비한 사진을 1면에 썼습니다. 넉넉한 추석 연휴 누리시길 바랍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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