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탈북민 화합과 소통…푸근한 한가위
[앵커]
오늘부터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 연휴가 시작됩니다.
올해도 많은 분들이 귀성길에 오를 텐데요.
이렇듯 화목한 명절 풍경을 바라보면서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깊어간다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북녘에 고향을 두고 온 탈북민들입니다.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해 탈북민들이 지역별로 작은 모임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서로의 그리움과 아픔을 위로하고 온정을 나누는 탈북민 소모임 현장에 장예진 리포터가 다녀왔습니다.
함께 보시죠.
[리포트]
추석을 앞두고 탈북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곳에 찾아가 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웃음 가득한 얼굴로 한껏 반갑게 맞이해주는 탈북민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지역의 소모임 공동체 회원들입니다.
집 안에선 음식 준비가 한창이었는데요.
북한에선 '짝태 볶음'이라 부르는 코다리 명태 볶음과 고춧가루에 버무린 이북식 고사리 나물볶음이 입맛을 돋웁니다.
여기에 추석 대표 음식인 '송편'도 빠질 수 없겠죠.
[최경심/하남시 탈북민 소모임 공동체 회장 : "(뭐 만들고 계세요?) 입쌀(멥쌀) 송편 하려고 반죽하고 있어요. (북한에서도 추석에 송편을 만드나요?) 네, 송편 만들어요. (어떤 거 넣어서 만드나요?) 콩을 넣어서 만들어요."]
멥쌀가루를 반죽해, 소를 넣고 빚는 모습이 남녘의 송편 만드는 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요.
송편에 얽힌 속설도 익숙합니다.
[최경심/하남시 탈북민 소모임 공동체 회장 : "북한에서는 떡을 예쁘게 빚으면 예쁜 아기를 낳는다는 속설이 있어요. 예쁘게 빚는지 볼 거예요. (송편) 예뻐요. 예쁜 아기 낳을 수 있어요."]
이곳에선 맘껏 고향 사투리를 쓰고, 한껏 속내를 털어놓는다는 사람들.
함경북도 화대군 출신인 경숙 씨는 오랜 시간 애태웠던 속사정을 전합니다.
[김경숙/경기도 하남시 : "(옆에 계신 분은 누구세요?) 중국에서 헤어진 뒤 한국에서 24년 만에 만난 제 딸이에요."]
[오채은/경기도 하남시 : "(엄마하고 몇 살 때 헤어졌어요?) 제가 16살 때 중국에서 (엄마하고) 헤어졌어요."]
탈북민 이웃들은 경숙 씨가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도왔다고 하는데요.
[김경숙/경기도 하남시 : "작년에 찾아서 올해 첫 추석을 이렇게 쇠고 있는데 너무 감회가 깊어요."]
조금 더 친근한 이웃과 함께하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일상의 시름도 덜어낸다는 탈북민들.
이 작은 공동체 활동은 이들에게 큰 위로와 응원이 되고 있습니다.
6년 전 한국에 온 명학 씨.
[박명학/경기도 하남시 : "(고향에서 하셨던 솜씨를 발휘하고 계신 것 같아요?) 그렇죠. 고향에서는 농마국수 (면) 뽑는 게 힘들어요. 그래서 남자들이 힘 있게 눌러서 (면을 뽑아서) 맛있게 먹죠."]
북에 남겨둔 가족이 떠오르거나, 정착 과정에서 어려움을 맞닥뜨릴 때마다 이웃들은 큰 힘이 됐다고 하는데요.
[박명학/경기도 하남시 : "대한민국 생활이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아요. 한번 모여서 재미나게 웃고 떠들고 속마음을 털어놓고 집에 가면 쌓였던 피로가 다 풀리고."]
이런 소모임 공동체 활동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탈북민들에게 정착의 길잡이가 되기를, 최경심 회장은 바라고 있습니다.
[최경심/하남시 탈북민 : "소모임 공동체 회장 같이 도와주면서 같이 해 나가야겠다 이런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하나둘 완성된 음식과 함께, 어느새 한 식구가 된 탈북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았습니다.
["(상다리가 부러질 것 같은데요. 원래도 이렇게 많이 차려서 드세요?) 네, 그럼요."]
이러한 공동체 활동은 탈북민들 사이에 가족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요.
현재 전국 60여 곳에서 남북하나재단의 지원 아래 운영 중입니다.
[김영희/남북하나재단 대외협력실장 : "먼저 온 탈북민이 나중에 온 탈북민을 도와주고 서로 소통하고 화합하고 그러면서 은둔하고 있는 탈북민을 발굴하고 다른 기관하고 연계시켜주고 그렇게 해서 고독사, 자살 이런 것들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탈북민들은 따뜻한 정을 주고받고, 때로는 밀어주고 당겨주며 남녘 생활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는데요.
더 나아가서 소외되는 탈북민 이웃은 없는지 주위를 살피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열린 또 다른 소모임 현장입니다.
십여 명의 탈북민들이 음식을 포장하며 분주한 모습인데요.
[마순희/양천구 탈북민 소모임 공동체 회장 : "지금 북한에서 먹던 명태전, 떡갈비 이런 거 포장해서 명절 기분을 내보려고..."]
손수 만들었다는 이 음식들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탈북민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마순희/양천구 탈북민 소모임 공동체 회장 : "특히 어려우신 분들, 혼자 사시는 분들, 그런 분들한테 우선적으로 갖다 드리죠."]
노래 한 소절에도 마음이 통한다는 회원들.
["못 잊을 사람아~. 눈물 난다. 어쩌냐."]
갈 수 없는 고향, 볼 수 없는 가족 생각에 그리움이 사무칩니다.
[황옥/서울 양천구 : "(어머니는 북에 가족이 있으세요?) 네, 큰딸이 있어요. 1994년에 헤어졌는데 지금 2024년이니까 (헤어진 지) 30년 됐어요. (보고 싶으시겠어요.) 말해 뭐 하겠어요. 그냥 매일 생각하죠."]
동병상련의 마음을 담은 도시락을 들고 이웃 방문에 나섭니다.
아픈 다리 탓에, 거동이 힘들다는 영숙 씨의 집입니다.
마순희 대표가 음식을 전하며, 안부를 묻는데요.
[오영숙/서울 양천구 : "(치료받은 지 꽤 됐는데 왜 차도가 없지.) 걸을 때는 발목이 막 아파서 너무 힘들어요."]
근황을 나누다 보면 고향에 대한 향수도 조금씩 달래지는 듯합니다.
[오영숙/서울 양천구 : "눈물도 조금 덜 나고요. (공동체에서 연락이) 없으면 많이 생각나요."]
도시락은 연로한 탈북민 가정에도 전달됐습니다.
[마순희/양천구 탈북민 소모임 공동체 회장 : "어르신 이거는 떡갈비고, 이건 어르신이 좋아하시는 명태전. 북한에서 잡수던 맛이 나는지..."]
아직 북에 세 자녀가 있다는 이 할아버지는 마순희 대표의 방문으로 홀로 지내는 노년의 적적함을 달래봅니다.
[이용수/서울 양천구 : "더 말할 게 없지. 반갑지, 대단히 반갑지. 항상 3일에 한 번씩은 가정 방문 와."]
마 대표는 알고 지내던 탈북민이 집에서 홀로 숨지는, 이른바 '고독사'라는 아픈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마순희/양천구 탈북민 소모임 공동체 회장 : "제가 잘 아는 사람이 또 양천구에서 그런 사례가 발생했잖아요. 너무 마음이 아팠죠. 그렇게 될 정도까지 왜 몰랐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고."]
똑같은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주변의 탈북민과 음식을 나누고, 찾아가는 일을 계속해 나갈 계획입니다.
[마순희/양천구 탈북민 소모임 공동체 회장 : "우리 탈북민들이 혼자서 소외되거나 이런 사람 없이 주변을 보살피면서 나가겠다는 게 그게 목표고..."]
소통하고 교류하며 서로의 울타리가 되고 있는 탈북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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